좌측버튼
우측버튼

서울 전역·경기 12곳 '3중 규제' ...15억 넘는집 대출 4억, 25억 초과는 2억

  재건축을 추진 중인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뉴스     정부가 들끓는 수도권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예상을 뛰어넘는 초강력 규제 카드를 꺼내 들었다. 서울시 25개 구 전역과 과천, 분당 등 경기도 12개 핵심 지역을 조정대상지역, 투기과열지구,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동시에 묶는 '3중 규제'를 전격 시행한다고 15일 발표했다. 이번 대책은 16일부터 즉각 효력이 발생하며, 과열 양상을 보이는 주택 시장에 직접적인 충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 전문가들은 "상상 이상의 고강도 대책"이라며 단기적인 시장 안정 효과를 기대하면서도, 공급 대책 부재에 따른 부작용과 '거래 절벽'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동시에 내놓고 있다. 기획 기사: 10·16 부동산 대책, 시장을 얼어붙게 할 극약 처방인가 1. 배경: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다"…정부의 절박함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6·27 대출 규제, 9·7 공급 대책 등 두 차례의 부동산 대책에도 불구하고 서울 및 수도권 집값은 좀처럼 꺾이지 않았다. 특히 '한강 벨트'로 불리는 지역과 경기 남부권의 일부 단지에서는 비이성적인 가격 급등세가 이어지며 '패닉 바잉(공황 구매)' 현상까지 나타났다.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전 분기 대비 4.5% 상승했으며, 이는 지난 2021년 부동산 급등기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이러한 시장 과열이 서민과 청년층의 내 집 마련 꿈을 앗아가는 것은 물론, 자산 격차를 심화시켜 사회적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비판이 거세졌다.   정부는 더 이상 시장 자율에만 맡겨둘 수 없다는 판단하에, 수요를 강력하게 억제하는 이번 '10·16 부동산 대책'을 내놓게 된 것으로 분석된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5일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에서 "국민의 주거 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투기 수요를 근절하기 위해 동원 가능한 모든 정책 수단을 검토했다"고 밝히며 정책 추진의 강력한 의지를 드러냈다.   2. '3중 규제'의 그물망: 무엇이 어떻게 바뀌나   이번 대책의 핵심은 서울 전역과 경기도 12개 지역을 '조정대상지역', '투기과열지구',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동시에 묶어 전방위적인 규제를 가하는 것이다. 해당 지역은 사실상 주택 거래에 있어 정부의 엄격한 통제를 받게 된다.   규제 대상 지역: 서울특별시: 25개 구 전역 경기도 (12곳): 과천시, 광명시, 성남시(분당구, 수정구, 중원구), 수원시(영통구, 장안구, 팔달구), 안양시(동안구), 용인시(수지구), 의왕시, 하남시 주요 규제 내용: 강화된 대출 규제: 규제지역 내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이 현행 70%에서 40%로 대폭 축소된다. 특히 수도권 내 15억 원 초과 주택의 경우, 주택담보대출 한도가 가격에 따라 차등 적용된다. 15억~25억 원 주택은 최대 4억 원, 25억 원 초과 주택은 최대 2억 원까지만 대출이 가능해져 고가 주택에 대한 '레버리지(차입) 투자'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갭투자' 원천 봉쇄: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10월 20일 발효)은 이번 대책의 가장 강력한 카드로 꼽힌다. 해당 구역에서 주택을 매수할 경우, 구매자는 2년간 의무적으로 실거주해야 한다. 이는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갭투자'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실거주 의무를 위반할 경우 이행강제금 부과 등 강력한 제재가 뒤따른다. 세금 중과 및 요건 강화: 다주택자에 대한 취득세와 양도소득세가 중과된다. 1세대 1주택자의 양도소득세 비과세 요건 역시 기존 '2년 보유'에서 '2년 보유 및 2년 거주'로 강화되어 단기 시세차익을 노린 투자를 억제한다. 청약 및 거래 제한: 세대주만 청약이 가능하도록 자격이 제한되며, 수도권 분양권 전매 제한 기간도 3년으로 늘어난다. 또한, 재건축·재개발 조합원의 지위 양도 역시 제한되어 정비사업을 통한 투기 수요 유입을 막는다. 3. 시장 반응 및 전문가 분석: "일단 멈춤"…향후 전망은?   정부의 고강도 대책 발표 직후 부동산 시장은 즉각적인 관망세로 돌아섰다. 매수 문의가 뚝 끊기고, 일부 지역에서는 호가를 낮춘 급매물이 등장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긍정적 전망: 다수의 전문가는 이번 대책이 단기적인 시장 안정에는 분명한 효과를 낼 것이라고 평가한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서울 전역과 수도권 핵심지를 한꺼번에 규제지역으로 묶어 과거 '핀셋 규제'의 부작용으로 지적됐던 '풍선 효과'를 차단한 것이 주효할 것"이라며, "투기 수요가 위축되고 시장이 전반적인 숨 고르기 장세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으로 갭투자가 불가능해지면서 비정상적으로 과열됐던 시장이 냉각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우려 및 한계: 반면, 수요 억제에만 치중된 '반쪽짜리' 대책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시장이 기대했던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나 신규 택지 지정 등 획기적인 공급 확대 방안이 빠졌기 때문이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4천조 원을 넘어선 시중의 풍부한 유동성과 저금리 기조가 유지되는 한, 규제만으로 집값 상승 압력을 장기간 억누르기는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한 "매매 시장이 막히면서 수요가 전세 시장으로 몰려 전셋값 상승을 부추길 수 있으며, 이는 결국 서민들의 주거비 부담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거래 절벽'에 대한 우려가 크다. 대출이 막히고 실거주 요건이 강화되면서 실수요자들의 '갈아타기'마저 어려워져 시장의 건전한 순환 기능이 마비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공급 시그널 없이는 백약이 무효"…장기적 안정화는 미지수   정부의 10·16 부동산 대책은 투기 수요를 차단하고 과열된 시장을 안정시키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담은 '극약 처방'임이 분명하다. 단기적으로 매수 심리를 위축시키고 가격 상승세를 억제하는 효과는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근본적인 시장 안정을 위해서는 수요 억제와 더불어 양질의 주택이 지속적으로 공급될 것이라는 명확한 '시그널'을 시장에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민들이 "지금 '영끌'해서 집을 사지 않아도, 몇 년 뒤 합리적인 가격에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다"는 신뢰와 기대를 갖게 될 때, 비로소 부동산 시장은 안정화의 길로 들어설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대책으로 시간을 번 정부가 시장의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공급 대책을 얼마나 신속하게 마련하느냐가 이번 정부 부동산 정책의 성패를 가늠할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캄보디아發 비극, 청년들 노리는 검은 손길

  캄보디아 검찰에 기소된 한국인 대학생 살해 혐의 중국인 3명. 연합뉴스     최근 캄보디아가 한국인 청년들을 겨냥한 강력범죄의 온상으로 급부상하며 충격을 주고 있다. '고수익 보장'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속아 현지로 향했던 이들이 취업사기는 물론, 감금, 폭행, 심지어 사망에 이르는 끔찍한 범죄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아름다운 앙코르와트로 기억되던 '기회의 땅'이 어쩌다 한국인에게 '범죄의 늪'이 되었을까. 1. 비극의 서막: '월 천만 원'의 유혹   사건의 발단은 대부분 소셜미디어(SNS)에 무분별하게 퍼지는 '고수익 해외 취업' 광고에서 시작된다. '항공권·숙식 제공', '간단한 업무로 월 1000만 원 보장' 등 현실성 없는 조건을 내걸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20~30대 청년들을 유인하는 것이다.   이들은 주로 중국계 범죄조직이 운영하는 온라인 도박, 보이스피싱 등 불법 사업체에 고용된다. 막상 캄보디아에 도착하면 조직원들에게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기고 외딴곳에 감금된 채 강제 노동에 시달린다. 할당된 실적을 채우지 못하면 무자비한 폭행과 고문이 뒤따른다.   지난 8월, 캄보디아 깜폿주의 한 숙소에서 20대 한국인 대학생 A씨가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은 이러한 범죄의 참혹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A씨 역시 고수익 아르바이트 제안을 받고 캄보디아로 향했다가 범죄조직에 감금돼 고문을 당하다 끝내 목숨을 잃었다. 이 사건의 용의자들은 모두 중국인으로 밝혀져 현지 중국계 범죄조직의 심각성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2. 끔찍한 실상: 감금, 고문, 그리고 죽음   피해자들은 철저한 감시 속에 외부와의 연락이 차단된 채 생활한다. 탈출을 시도하다 발각되면 더욱 가혹한 폭력에 시달리거나 다른 조직에 팔려나가는 인신매매의 희생자가 되기도 한다. 일부 피해자들은 가족에게 연락해 거액의 몸값을 지불하고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최근에는 피해자들이 직접 나서 범죄 의심 인물들의 신상을 공개하는 온라인 채널까지 등장했다. 이곳에는 숨진 A씨가 강제로 마약을 투약하는 것으로 보이는 영상이 공개돼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다. 캄보디아 내 한국인 대상 범죄가 폭증하자, 정부의 더딘 대응에 답답함을 느낀 이들이 '자경단' 성격의 활동에 나선 것이다.   외교부에 따르면 캄보디아에서 한국인 납치·감금 피해 신고 건수는 2023년 연간 10~20건 수준에서 지난해 220건, 올해는 330건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는 공식적인 통계일 뿐, 실제 피해 사례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3. 현재 상황과 양국 정부의 대응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한국 정부는 캄보디아에 대한 여행경보 상향 조정을 검토하는 등 대응에 나섰다. 외교부는 현지 공관을 통해 피해자 구출 및 영사 조력을 제공하고 있으며, 캄보디아 당국에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와 범인 엄벌을 촉구하고 있다. 최근 캄보디아에서 검거된 한국인 피의자 60여 명에 대한 국내 송환도 추진 중이다.   캄보디아 정부 또한 훈 마넷 총리의 지시로 온라인 사기 조직 소탕을 위한 대대적인 단속에 착수했다. 최근 프놈펜 등지에서 중국인을 포함한 수백 명의 범죄조직원들이 체포되는 등 가시적인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현지 경찰의 부패 문제와 범죄조직의 뿌리 깊은 유착 관계는 근본적인 해결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양국은 1997년 수교 이래 꾸준히 우호적인 관계를 발전시켜왔으나, 이번 사태로 인해 양국 관계에 미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잇따른 강력 범죄 소식에 한국 내에서는 캄보디아 여행 취소 사태가 잇따르는 등 반(反)캄보디아 감정이 확산하는 모양새다.     한국 언론과 여론은 이번 사태를 집중 조명하며 정부의 미온적인 초기 대응을 비판하고, 재외국민 보호 시스템의 강화를 촉구하고 있다. 대학가를 중심으로 '고수익 해외취업 사기'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캠페인도 진행되고 있다.   캄보디아 현지에서는 이번 사건이 국가 이미지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관광 산업이 주요 수입원인 캄보디아로서는 '범죄 국가'라는 오명이 치명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난 7월 캄보디아 경찰이 프놈펜에서 검거한 범죄단체 조직원들. EPA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단순히 캄보디아만의 문제가 아닌, 동남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된 초국가적 범죄라는 점을 강조한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캄보디아뿐만 아니라 주변국과의 긴밀한 사법 공조 체계를 구축하고, 국제 범죄조직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등 보다 근본적이고 포괄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고수익'이라는 미끼에 현혹되지 않는 청년들의 현명한 판단이다. 정부와 사회는 청년들에게 안전한 해외 취업 정보를 제공하고, 해외에서 부당한 일을 겪었을 때 즉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시스템을 더욱 촘촘히 구축해야 할 것이다. 캄보디아에서 울리는 비극의 경고음은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될 우리 사회 전체의 과제다.    

이스라엘-하마스, 2년 만에 휴전 전격 합의…인질 석방·군 철수 개시

      9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열린 내각 회의에 참석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오른쪽 두 번째) 스티브 위트코프 미국 중동 특사 등과 회동하는 모습. EPA=연합뉴스.     2023년 10월 7일 시작되어 2년간 수많은 사상자를 낳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의 전쟁이 마침내 중대한 전환점을 맞았다.    현지 시각 8일, 양측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재 아래 휴전 1단계 안에 전격 합의했다.   이번 합의에 따라 하마스는 억류 중인 이스라엘 인질을 석방하고,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서 군대를 단계적으로 철수하며 팔레스타인 수감자를 풀어주게 된다.    2년간 지속된 교전으로 황폐해진 가자지구에 평화의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이번에 타결된 1단계 휴전안의 핵심은 인질 및 수감자 교환과 이스라엘군의 단계적 철수다.   합의에 따르면, 하마스는 72시간 내에 생존해 있는 이스라엘 인질 약 20명을 포함한 모든 억류 인원을 석방한다. 그 대가로 이스라엘은 자국에 수감된 팔레스타인인 약 2,000명을 석방하기로 했다.   또한, 가자지구를 전면 봉쇄하고 지상 작전을 펼쳐온 이스라엘군은 합의된 특정 경계선까지 1차적으로 철수하게 된다. 이스라엘의 군사 작전도 즉각 중단된다.   이번 협상은 이집트와 카타르가 중재자 역할을 맡아왔으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발표한 '가자 평화 구상'을 바탕으로 급물살을 탔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 소셜'을 통해 "강력하고 지속적이며 영구적인 평화를 향한 첫 단계"라며 합의 사실을 알리고, "모든 인질이 곧 석방될 것"이라고 밝혔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번 합의를 "국가적 승리"이자 "역사적 성취"라고 평가하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하마스 측 역시 합의 사실을 확인하면서도, 중재국들이 이스라엘의 합의 이행을 철저히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일제히 환영의 뜻을 표하며, 양측의 성실한 합의 이행을 촉구했다.   그러나 이번 합의는 영구적인 평화로 가기 위한 첫걸음에 불과하다는 신중론도 제기된다. 하마스의 무장 해제 문제, 전쟁으로 초토화된 가자지구의 재건 및 향후 통치 방식 등 민감하고 복잡한 문제들이 2단계 협상 과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1단계 합의의 성공적인 이행 여부가 향후 중동 평화의 향방을 가늠할 중요한 척도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1C 미국을 배회하는 매카시즘의 유령, 1950년대 냉전의 광풍

      1950년대 초, 미국 사회를 휩쓴 '붉은 공포(Red Scare)'의 광풍, 매카시즘.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의 입에서 시작된 이 거대한 마녀사냥은 수많은 이들의 삶을 파괴하고 미국 민주주의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로부터 70여 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왜 다시 매카시즘의 망령을 소환해야 하는가? 오늘날의 분열과 불신의 정치 지형 속에서 매카시즘의 개념과 역사, 그리고 그 비판적 교훈을 되짚어 보는 것은 단순한 과거사 회고를 넘어, 현재와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 될 것이다.      1. 매카시즘의 탄생: 냉전의 공포가 낳은 괴물   매카시즘(McCarthyism)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소련과의 냉전이 격화되던 1950년부터 1954년까지 미국을 휩쓴 극단적인 반공산주의 열풍을 일컫는다. 이 용어는 당시 위스콘신주 출신의 공화당 상원의원 조지프 매카시(Joseph McCarthy)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1950년 2월 9일, 웨스트버지니아주 휠링의 한 여성 공화당원 클럽 연설에서 매카시는 "나는 오늘 국무장관에게 국무부에서 일하면서 정책을 만들고 있는 공산당원 205명의 명단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이 폭탄선언은 즉각 미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비록 그가 제시한 명단의 실체는 끝내 명확히 입증되지 않았지만, 그의 발언은 이미 팽배해 있던 대중의 불안감에 불을 지폈다.   당시 미국은 '중국의 공산화', '소련의 원자폭탄 실험 성공' 등 연이은 국제 정세의 변화로 인해 공산주의의 위협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매카시는 '내부의 적'을 색출하겠다는 선동적인 구호로 대중의 인기를 얻었고, 순식간에 정계의 중심인물로 떠올랐다. 그의 주장은 사실 확인보다는 의심과 공포를 기반으로 했으며, 언론은 그의 발언을 무비판적으로 중계하며 공포 분위기를 확산시키는 데 일조했다.     2. 광기의 시대: 마녀사냥의 방식과 그 희생자들   매카시즘의 광풍은 '비미(非美)활동조사위원회(House Un-American Activities Committee, HUAC)'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이 위원회는 정부, 학계, 예술계, 노동계 등 사회 각계각층의 인사들을 소환하여 그들의 사상과 충성심을 검증했다.   청문회는 피고발인의 인권을 철저히 무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명확한 증거 없이 '공산주의 동조자'라는 낙인이 찍혔고, 소환된 이들은 동료나 친구의 이름을 거론하도록 강요받았다. 증언을 거부하거나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들은 '비협조적인 증인'으로 분류되어 사회적으로 매장당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수많은 지식인, 예술가, 공무원들이 직장을 잃고 사회적 명예를 실추당했다. 특히 할리우드 영화계는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분야 중 하나였다. 영화감독 엘리아 카잔, 배우 게리 쿠퍼 등 많은 영화인이 청문회에 불려 나왔으며, '할리우드 텐(Hollywood Ten)'으로 불리는 10명의 영화인은 증언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의회 모독죄 판결을 받고 수감되기도 했다. 세계적인 희극배우 찰리 채플린 역시 공산주의 동조자로 몰려 사실상 미국에서 추방당했다.   이러한 '블랙리스트(Blacklist)'는 영화계를 넘어 학계, 언론계, 노동계로 확산되며 미국 사회 전체의 지적 토양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자유로운 사상과 표현의 자유는 위축되었고, 사회는 서로를 감시하고 불신하는 분위기에 휩싸였다.     3. 매카시즘의 몰락과 그 교훈   영원할 것 같던 매카시의 권력은 1954년을 기점으로 급격히 쇠락하기 시작했다. 그의 무분별한 폭로전이 군부로까지 향하면서 대중의 여론이 돌아선 것이다. 특히 육군과의 공방을 다룬 청문회가 TV로 생중계되면서, 증인에게 고압적인 태도로 윽박지르는 그의 모습이 전국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이는 그의 권위와 신뢰에 치명타를 입혔다.   당시 육군 측 변호사였던 조지프 웰치가 매카시를 향해 던진 "상원의원, 당신에게는 일말의 품위도 없습니까?(Have you no sense of decency, sir, at long last?)"라는 일갈은 시대의 양심을 일깨우는 외침이 되었다. 결국 그해 12월, 미 상원은 매카시에 대한 견책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그는 정치적 영향력을 상실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매카시즘은 미국 사회에 값비싼 교훈을 남겼다. 국가 안보라는 명분 아래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 얼마나 쉽게 짓밟힐 수 있는지를 똑똑히 보여주었다. 또한, 근거 없는 비방과 선동이 사회를 얼마나 극심한 분열과 불신으로 몰고 갈 수 있는지에 대한 생생한 증거가 되었다. 비판적 사고와 건전한 토론이 실종된 사회,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적으로 규정하는 사회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4. 21세기에 트럼프의 이름으로 부활한 유령 매카시즘은 과거의 역사로만 남아있지 않다. 그 유령은 21세기 미국 정치, 특히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집권과 그 이후의 정치 현상인 '트럼피즘(Trumpism)' 속에서 더욱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많은 역사학자와 정치 분석가들은 트럼프의 정치 스타일과 매카시의 수법 사이에 놀라울 정도의 유사성이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첫째, '내부의 적'을 설정하고 공포를 조장하는 선동 방식이다.  매카시가 '정부 내 공산주의자'라는 보이지 않는 적을 설정했다면, 트럼프는 '가짜뉴스 언론', '딥 스테이트(Deep State, 숨은 권력 집단)', '불법 이민자' 등을 적으로 규정하고 지지층의 불안과 분노를 자극했다. 근거가 부족한 주장을 반복적으로 외치며 의심을 사실처럼 둔갑시키는 모습은 매카시의 수법과 판박이다.   둘째, 충성심을 강요하고 반대자를 적으로 돌리는 행태다.  매카시는 자신에게 비판적인 인물들을 '공산주의 동조자'로 몰아세웠다. 트럼프 역시 자신에게 비판적인 언론인을 '국민의 적'으로 칭하고, 당내 반대파를 '이름만 공화당원(RINO, Republican In Name Only)'이라 비난하며 개인에 대한 충성을 노골적으로 요구했다. 이는 건전한 정책 토론 대신, '우리 편'과 '적'을 가르는 이분법적 진영 논리를 강화시켰다.   셋째, '마녀사냥(Witch Hunt)'이라는 용어의 역설적 사용이다.  본래 매카시즘의 부당한 탄압을 비판하기 위해 사용되던 '마녀사냥'이라는 용어를, 트럼프는 자신을 향한 모든 의혹과 수사(러시아 스캔들 특검, 탄핵 조사 등)를 방어하는 수사(修辭)로 전용했다. 이는 자신을 정치적 박해의 희생자로 포장하고, 사법 시스템과 언론의 정당성을 훼손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흥미로운 역사적 연결고리는 매카시의 악명 높은 수석 변호사였던 **로이 콘(Roy Cohn)**이 젊은 시절 트럼프의 멘토이자 변호사였다는 점이다. "절대 잘못을 인정하지 마라, 비난받으면 두 배로 되갚아주라"는 식의 로이 콘의 공격적인 전술은 트럼프의 정치 여정 내내 깊은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결론적으로, 현대 미국 정치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매카시즘의 단순한 반복을 넘어, 소셜미디어라는 강력한 확산 도구를 통해 더욱 교묘하고 파급력 있게 진화한 '신(新)매카시즘'의 형태를 띠고 있다.    공포를 이용한 정치, 진실을 경시하는 태도, 그리고 반대 세력에 대한 무자비한 공격은 70여 년의 시차를 두고 미국 민주주의를 다시금 위협하고 있다. 매카시즘의 역사를 올바르게 기억하고 성찰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유다.     5. 21세기에 되살아난 매카시즘   매카시즘은 과거의 역사로만 남아있지 않다. 오늘날에도 정치적 반대 세력을 악마화하고, 이념적 잣대로 상대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행태는 '현대판 매카시즘'이라는 이름으로 비판받고 있다. 특히 소셜미디어의 발달은 확인되지 않은 정보와 가짜뉴스를 순식간에 확산시키며 새로운 형태의 마녀사냥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반사회적' 혹은 '비애국적'으로 낙인찍고, 합리적인 토론 대신 감정적인 비난을 앞세우는 모습은 매카시즘의 어두운 그림자를 떠올리게 한다.   결론적으로, 매카시즘의 역사는 우리에게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그것은 바로 '공포'를 이용한 정치, 그리고 '다름'을 '틀림'으로 규정하는 intolerance(불관용)이다.    건전한 비판과 상호 존중의 자세, 그리고 무엇보다 사실에 기반한 냉철한 판단력이야말로 매카시즘의 유령이 우리 사회를 배회하지 못하게 막는 가장 강력한 무기일 것이다.    

G7도 동참,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 ‘물결’… 이스라엘 외교적 고립 심화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국제사회의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 움직임이 G7(주요 7개국)을 포함한 서방 동맹국들을 중심으로 급물살을 타고 있다. 현지시각 21일 영국, 캐나다, 호주가 전격적으로 팔레스타인을 독립 국가로 공식 인정한다고 발표했으며, 프랑스 역시 22일 동참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이스라엘의 외교적 고립이 한층 심화하고 있다.   서방 주요국들, ‘두 국가 해법’ 되살리기 위한 외교적 압박 가세   전쟁의 참상이 계속되는 중동 정세에 중대한 전환점이 될 수 있는 이번 결정은 22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 총회를 앞두고 나왔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영상 메시지를 통해 “평화와 ‘두 국가 해법’에 대한 희망을 되살리기 위해 영국이 팔레스타인 국가를 공식 인정한다”고 밝혔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 역시 성명을 내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주도의 국가를 인정하는 것은 평화로운 공존을 추구하며 하마스의 종말을 바라는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라며 ‘두 국가 해법’ 지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앤서니 알바니즈 호주 총리도 같은 날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을 공식 발표하며 국제적 흐름에 동참했다.   이들 국가는 이번 결정이 이스라엘의 안보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장기적인 평화와 안정을 위한 유일한 길인 ‘두 국가 해법’의 가능성을 살리기 위한 외교적 노력의 일환임을 강조했다. 이는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군사 작전이 인도주의적 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국제사회의 비판 여론이 높아지는 가운데, 이스라엘을 향한 실질적인 압박 수단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포르투갈 역시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 대열에 합류했으며, 벨기에, 룩셈부르크, 몰타 등 다른 유럽 국가들도 유엔 총회 기간에 관련 발표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로써 유엔 회원국 193개국 중 팔레스타인을 주권 국가로 인정한 나라는 기존 147개국에서 151개국으로 늘어났다. 특히 G7 회원국인 영국과 캐나다의 참여는 이번 인정 ‘물결’의 상징성과 파급력을 한층 더하고 있다.   2024년부터 이어진 유럽의 ‘인정 릴레이’   이번 서방 주요국들의 동시다발적 발표는 2024년부터 유럽을 중심으로 시작된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 움직임의 연장선에 있다. 지난해 5월, 스페인, 아일랜드, 노르웨이가 팔레스타인을 공식 국가로 인정하며 유럽연합(EU) 내에서 변화의 물꼬를 텄다. 이어 슬로베니아와 아르메니아 등도 같은 해 인정 대열에 합류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이스라엘 극우 연정의 강경 노선과 가자지구 사태의 장기화에 대한 유럽 각국의 비판적 시각이 반영된 결과로 분석된다. 당시 이들 국가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자결권을 존중하고, ‘두 국가 해법’을 통해서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의 평화와 안보가 보장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 이유로 들었다.   국제 사회 반응: 팔레스타인 “환영” vs 이스라엘 “테러 보상” 강력 반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는 국제사회의 잇따른 국가 인정 소식에 즉각 환영의 뜻을 밝혔다. 후삼 조믈롯 주영 팔레스타인 대표는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은 점령과 식민지화, 인종차별, 대량 학살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역사적인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이스라엘은 강력하게 반발하며 외교적 파장을 예고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번 결정을 “하마스의 극악무도한 테러리즘을 부추기는 것”이자 “테러에 대한 보상”이라고 맹비난했다. 이스라엘 외무부는 해당 국가 주재 자국 대사들을 소환하는 등 외교적 대응에 나섰다.   전통적으로 이스라엘의 입장을 지지해 온 미국 역시 이번 사태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직접적인 협상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러나 G7 회원국들을 포함한 주요 동맹국들이 독자적인 행보에 나서면서 미국의 중동 정책 또한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두 국가 해법’ 실현 가능성은 여전히 미지수   국제사회의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이 잇따르고 있지만, 이것이 곧바로 팔레스타인의 실질적인 독립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현재 요르단강 서안지구는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으며,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행정력은 제한적이다. 또한 이스라엘 내 강경파의 반대가 완고해 ‘두 국가 해법’을 위한 협상 재개는 요원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서방 동맹국들의 ‘인정 도미노’는 이스라엘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 수위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외교적 고립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어떠한 선택을 할지, 그리고 국제사회의 이러한 움직임이 중동 평화 정착에 실질적인 동력이 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주요뉴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국제

한중국제행사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칼럼

특별기고

한중이슈

중국이슈

국제이슈

역사산책

상식지식

세상만사

연예

스포츠

영화

포토뉴스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