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8-24(일)
 
  • 단순한 '원조' 논쟁을 넘어 국가 정체성과 자존심을 건 대리전(代理戰)으로 변질
  • 양국 MZ세대는 왜 온라인에서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게 되었나?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중 관계를 설명하는 키워드는 ‘한류(韓流)’와 ‘치맥(치킨과 맥주)’이었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중국 대륙을 휩쓸고, 한국의 화장품과 패션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문화는 양국 국민의 마음을 잇는 가장 부드럽고 강력한 다리처럼 보였다. 그러나 2020년대를 기점으로 그 다리는 곳곳이 끊어지고 파괴되기 시작했다. 이제 온라인 공간에서 양국의 젊은 세대는 서로를 향해 ‘문화 도둑’, ‘역사 왜곡’이라며 날 선 비난을 퍼붓고 있다.


그 중심에 ‘김치’와 ‘한복’이 있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자 민족의 정체성이 담긴 문화유산이 어느 날 갑자기 ‘중국 것’이라는 주장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이른바 ‘김치·한복 공정(工程)’. 이는 단순한 해프닝이나 일부 네티즌의 설전을 넘어, 시진핑 시대 중국의 팽창하는 문화 민족주의와 한국 사회의 불안감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거대한 전선(戰線)이 되었다. 


오늘일보는 이 문화 전쟁의 시작과 전개, 그리고 그 이면에 숨겨진 양국의 정치·사회적 욕망을 심층적으로 추적했다. 이것은 음식과 옷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정체성과 자존심, 그리고 미래 세대의 인식을 둘러싼 총성 없는 전쟁에 대한 이야기다.

 

 

 

제1부: 김치의 눈물, ‘파오차이’라는 이름의 멍에

 

  

1. 발단: ISO 인증과 환구시보의 불씨


2020년 11월, 모든 논쟁의 시작점이 된 사건이 발생했다. 중국 쓰촨성의 염장채소인 ‘파오차이(泡菜)’가 국제표준화기구(ISO)로부터 국제 표준 인증을 획득한 것이다. 문제의 본질은 파오차이의 인증 그 자체가 아니었다. ISO 문서 스스로도 “이 문서는 김치(Kimchi)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명시하며 선을 그었다.


그러나 중국의 관영매체 환구시보(環球時報)는 이를 의도적으로 왜곡, “중국 김치 산업이 국제 김치 시장의 기준이 됐다”, “한국은 굴욕을 당했다”는 식의 선동적인 기사를 쏟아냈다. 이는 곧바로 중국 최대 소셜미디어인 웨이보를 통해 확산됐고, ‘한국의 김치는 사실 중국 파오차이의 아류’라는 인식이 기정사실처럼 퍼져나갔다. 한국 언론이 팩트체크를 통해 반박에 나섰지만, 이미 불은 걷잡을 수 없이 번진 뒤였다.

 

  

2. 중국의 논리: ‘문화 동북공정’과 중화 패권주의


중국의 주장은 크게 두 가지 논리로 요약된다. 첫째, 역사적 연관성이다. 한국의 채소 절임 문화가 고대 중국에서 전래되었으며, 따라서 김치는 큰 틀에서 중국의 파오차이 문화권에 속한다는 것이다. 둘째, ‘조선족’을 고리로 한 편입 논리다. 중국의 55개 소수민족 중 하나인 조선족이 김치를 먹으니, 김치는 자연스럽게 중국 문화의 일부라는 주장이다.


이는 과거 고구려사를 중국의 지방사로 편입하려 했던 ‘동북공정’의 논리와 정확히 일치한다. 자국의 경계 안에 존재하는 모든 역사와 문화를 ‘중화(中華)’라는 거대한 용광로에 녹여 넣으려는 시도, 이른바 ‘문화 동북공정’의 서막이었다. 전문가들은 이를 시진핑 주석 집권 이후 강화된 ‘문화 자신감(文化自信)’과 애국주의 교육의 산물로 분석한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꿈꾸는 ‘중국몽(中國夢)’ 아래, 주변국의 고유문화까지 자국의 역사로 포섭하려는 문화 제국주의적 발상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3. 한국의 반박: 과학과 역사가 증명하는 김치의 독자성


이에 대한 한국의 반박은 명료하다. 김치와 파오차이는 기원, 재료, 발효 방식에서 완전히 다른 음식이다.

  

1)기원과 역사

 

: 한국의 김치는 삼국시대부터 채소를 소금에 절여 먹던 ‘저(菹)’ 문화에서 출발, 고려 시대를 거치며 다양한 향신료가 추가되었고, 조선시대 임진왜란 이후 고추가 전래되면서 오늘날과 같은 붉은 김치의 형태로 발전했다. 반면, 파오차이는 채소를 소금물에 절여 단기간에 발효시키는 쓰촨 지역의 염장채소다.

  

2)발효 방식의 차이

 

: 김치는 젓갈과 고춧가루, 마늘, 생강 등 다양한 양념을 버무려 저온에서 유산균으로 서서히 발효시키는 ‘발효 과학’의 정수다. 이에 반해 파오차이는 소금물에 채소를 담가 젖산 발효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김치와는 발효에 관여하는 미생물군부터 다르다.

  

3)문화적 상징성

 

: 한국에서 김치는 단순한 음식을 넘어 공동체 문화의 상징이다. 이웃과 함께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김장 문화’는 201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며 그 독창성과 공동체적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이처럼 명백한 역사적, 과학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억지 주장을 굽히지 않는 것은, 사실 관계의 증명보다는 ‘문화적 종주국’이라는 이미지를 선점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깔려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제2부: 한복의 수난, ‘한푸’라는 이름의 그림자

  

 

1. 발단: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의 충격


김치 논쟁의 불씨가 채 꺼지기도 전인 2022년 2월, 더 큰 충격이 전 세계를 덮쳤다.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 중국의 국기인 오성홍기를 전달하는 퍼포먼스에 분홍색 저고리와 푸른색 치마, 즉 누가 봐도 명백한 ‘한복’을 입은 여성이 중국 내 소수민족 대표 중 한 명으로 등장한 것이다.


전 세계 수십억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중국은 한복이 자국의 55개 소수민족 중 하나인 ‘조선족’의 의상이므로, 이는 곧 중국 문화의 일부라는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각인시켰다. 한국 사회는 들끓었다. 이는 단순히 옷 한 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고유한 민족 복식을 자국의 다문화주의를 선전하는 도구로 전락시키고 그 정체성을 희석시키려는 명백한 ‘문화 찬탈’ 행위라는 분노가 폭발했다.

 

 

2. 중국의 논리: ‘영향’을 ‘기원’으로 둔갑시키다


한복을 둘러싼 중국의 주장은 더욱 교묘하다. 그들은 역사적으로 한국이 중국 왕조(특히 명나라)의 의복 양식에 영향을 받았으므로, 한복은 중국 ‘한푸(漢服)’의 아류이거나 그 영향을 받은 복식이라는 논리를 편다. 온라인에서는 한복과 명나라 시대 한푸를 비교하며 유사성을 부각하는 콘텐츠가 대량으로 유포된다.


하지만 이는 문화의 ‘상호 교류’와 ‘종속’을 의도적으로 혼동하는 전형적인 논리 왜곡이다. 역사적으로 동아시아 국가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문화를 발전시킨 것은 상식에 속한다. 이탈리아의 파스타가 중국의 면 요리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고 해서 파스타를 중국 음식이라 부르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중국의 논리는 이러한 보편적 문화 교류의 역사를 무시하고, 모든 영향 관계를 ‘중화’로의 일방적 편입 관계로 재단하려는 패권적 시각을 드러낸다.

 

 

3. 한국의 반박: 독자적 발전 계보를 지닌 민족의 옷


한복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부터 그 원형을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유구한 역사를 지녔다. 중국의 당나라, 원나라, 명나라와 교류하며 일부 유행을 받아들이기도 했으나, ‘짧은 상의(저고리)와 풍성한 하의(치마/바지)’라는 기본 구조를 유지하며 우리 고유의 미감과 생활양식에 맞게 독자적으로 발전해왔다.


특히 조선 시대에 이르러서는 넉넉하고 우아한 실루엣의 한푸와 달리, 상의는 짧아지고 하의는 풍성해지는 ‘상박하후(上薄下厚)’의 독창적인 미학을 완성했다. 저고리의 ‘고름’, 치마의 ‘허리끈’ 등 세부적인 구조와 착장 방식 역시 한푸와는 명백히 구분되는 고유한 특징이다. 한복은 단순한 옷이 아니라, 수천 년간 한민족의 희로애락과 함께해 온 살아있는 역사이자 정체성 그 자체다.

 

 

 

제3부: 심층 분석 - 왜 지금, ‘문화 전쟁’인가?

 

 

이러한 문화 논쟁이 2020년대 들어 유독 격화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단순히 양국 네티즌 간의 감정싸움으로 치부할 수 없는 복합적인 정치·사회적 배경을 담고 있다.

 

 

1. 내부 결속을 위한 ‘외부의 적’: 중국의 신(新) 애국주의


시진핑 시대의 중국은 강력한 국력을 바탕으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외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역사와 문화를 국가 중심의 서사로 재편하고, 젊은 세대에게 극단적인 애국주의와 중화사상을 주입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미중 패권 경쟁 등으로 내부적 불만이 고조될 때마다, 외부의 ‘적’을 설정해 내부 결속을 다지는 것은 중국 공산당의 전통적인 통치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지리적으로 가깝고, 문화적으로도 얽혀 있으며,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은 ‘공격하기 좋은’ 표적이 되었다는 분석이다. 한류의 세계적 성공에 대한 시기와 견제 심리 또한 이러한 흐름에 불을 지폈다.

 

 

2. 악화된 상호 인식과 ‘MZ세대의 반격’


사드(THAAD) 사태와 한한령, 홍콩 민주화 시위, 코로나19 책임론 등을 거치며 한국 사회의 대중(對中) 인식은 역대 최악의 수준으로 떨어졌다. 특히 공정과 정의에 민감한 한국의 MZ세대는 중국의 불합리한 주장과 역사 왜곡에 대해 과거 세대보다 훨씬 더 공격적이고 직설적으로 반격에 나서고 있다. 이들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논쟁을 주도하고, ‘#hanbok_is_korean_traditional_clothes’와 같은 해시태그 운동을 벌이며 국제 여론에 호소한다. 이는 더 이상 당하고만 있지 않겠다는 문화적 자존감의 발현이자, 기성세대의 외교적 수사(레토릭)를 넘어선 새로운 방식의 저항이다.

 

 

3. 알고리즘이 증폭시키는 ‘디지털 민족주의’


유튜브, 틱톡, 웨이보 등 소셜미디어 플랫폼은 이러한 갈등을 증폭시키는 확성기 역할을 한다. 양국의 사용자들은 각자의 플랫폼 안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강화하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소비하며 ‘확증 편향’에 빠지기 쉽다. 알고리즘은 비슷한 성향의 콘텐츠를 끊임없이 추천하며 사용자를 ‘필터 버블’ 안에 가두고, 이는 상대국에 대한 혐오와 적개심을 극대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온라인상의 ‘사이버 전사’들은 사실 관계의 확인보다는 감정적인 비난에 몰두하며, 이는 합리적인 토론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제4부: 파장과 전망 - 상처뿐인 싸움, 해법은 없는가?

 

 

1. 깊어지는 감정의 골, 미래 관계의 암초


김치와 한복 논쟁은 양국 관계에 깊은 생채기를 남겼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양국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 세대 간의 감정의 골이 회복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깊어졌다는 점이다. 정치적, 경제적 갈등은 이해관계에 따라 봉합될 수 있지만, 역사와 정체성을 건드리는 문화 갈등은 마음속 깊은 곳에 앙금으로 남아 장기적인 관계 발전에 심각한 암초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한때 한류의 최대 소비 시장이었던 중국 시장의 문은 점점 좁아지고 있으며, 문화 교류는 단절의 위기로 치닫고 있다.

 

 

2. 정부의 딜레마와 미디어의 역할

 

양국 정부는 이러한 갈등이 외교 문제로 비화하는 것을 경계하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국민적 분노가 들끓는 상황에서 정부의 ‘전략적 모호성’은 때로 ‘저자세 외교’, ‘굴욕 외교’라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디어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자극적인 보도로 민족주의 감정을 부추기기보다는, 사실관계를 명확히 하고, 갈등의 배경을 심층적으로 분석하며, 장기적인 해법을 모색하는 공론의 장을 열어야 할 책임이 있다.

 

 

3. 전망과 제언: 존중 없는 교류는 불가능하다

 

김치와 한복 논쟁은 단기간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는 미중 패권 경쟁이라는 거대한 지정학적 구도와 중국 내부의 정치적 변화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기적인 대응과 함께 장기적인 전략 마련이 시급하다.


첫째, 학술적·논리적 대응 강화가 필요하다. 감정적 대응을 넘어, 김치와 한복의 역사적 독자성을 명확한 근거와 데이터로 정리하고, 이를 다양한 언어로 번역해 국제 사회에 적극적으로 알리는 체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둘째, 문화 교류의 패러다임 전환이 요구된다. 일방적인 한류 전파를 넘어, 상대 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한 쌍방향 교류를 모색해야 한다. 문화는 우열을 가리는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고 공유하며 풍성해지는 인류의 자산이기 때문이다.

 

셋째,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성찰이 동반되어야 한다. 외부의 도발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우리 문화의 가치와 역사를 제대로 알고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결국 김치와 한복 논쟁은 우리에게 ‘중국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총성 없는 전쟁의 끝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것은 상처뿐인 승리가 아니라, 우리 문화에 대한 확고한 자부심과 이웃을 대하는 성숙한 지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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