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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비핵화를 향한 동상이몽..한중의 엇갈린 30년
- 2025년 8월, 북한이 동해상으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했다. 서울과 워싱턴은 즉각 이를 ‘유엔 안보리 결의에 대한 명백한 위반’으로 규정하고 강력 규탄하며 추가 제재를 예고했다. 며칠 뒤 열린 유엔 안보리 회의, 미국과 일본은 강력한 대북 제재 결의안 초안을 내밀었지만, 중국은 어김없이 ‘모든 당사자의 자제와 대화를 통한 해결’을 촉구하며 사실상 거부권을 행사했다. 지난 30년간 북한의 핵 개발 역사에서 수없이 반복되어 온 이 데자뷔(déjà vu) 같은 풍경이야말로, 한반도 문제를 둘러싼 한국과 중국의 근본적인 시각차, 즉 **'동상이몽(同床異夢)'**의 실체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그리고 비핵화’라는 공식적인 목표는 공유하지만, 그 목표에 도달하는 방법론과 우선순위에서 양국은 결코 만날 수 없는 강을 사이에 두고 있다. ‘오늘일보’는 북한의 핵 능력이 고도화를 넘어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굳어진 2025년 현재, 한중 양국의 대북 정책이 왜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는지 그 구조적 원인을 심층 분석했다. 이것은 단순한 외교적 이견에 대한 보고서가 아니라, 우리의 생존이 걸린 문제에 대한 냉정한 현실 진단이다. 제1부: 목표의 불일치 - '비핵화'가 먼저인가, '안정'이 먼저인가? 모든 이견의 출발점은 양국이 추구하는 최종 목표의 우선순위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에서 시작한다. 1. 한국(과 미국)의 최우선 목표: ‘선(先) 비핵화’ 서울과 워싱턴에게 북한 문제는 곧 **‘핵 문제’**다. 북한의 핵무기는 대한민국의 생존을 위협하는 실존적 위협이며, 동북아와 국제 비확산 체제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 따라서 양국의 모든 대북 정책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라는 단 하나의 목표에 수렴한다. 이 과정에서 북한 정권의 불안정성이 일부 초래되더라도, 핵 위협 제거라는 대의가 우선시될 수밖에 없다. ‘안정적이지만 핵을 가진 북한’은 최악의 시나리오다. 2.중국의 최우선 목표: ‘선(先) 안정’ 베이징의 계산법은 전혀 다르다. 중국에게 북한 문제는 ‘핵 문제’ 이전에 **‘지정학적 안보 문제’**다. 중국의 대북 정책 제1원칙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북한 정권의 급작스러운 붕괴를 막고, 한반도의 현상 유지를 통해 ‘안정’을 관리하는 것이다. 비핵화는 물론 달성하면 좋은 ‘부차적 목표’이지만, ‘안정’이라는 대전제를 위협하면서까지 추구할 목표는 결코 아니다. ‘불편하지만 안정적인 핵보유국 북한’은, ‘급변 사태로 붕괴된 북한과 그로 인해 미군과 국경을 맞대는 최악의 상황’보다 훨씬 선호되는 시나리오다. 이처럼 ‘비핵화’와 ‘안정’이라는 결코 양립하기 어려운 목표의 우선순위 차이가, 모든 대북 정책에서 양국이 사사건건 충돌하는 근본 원인이다. 제2부: 순망치한(唇亡齿寒) - 중국의 대북정책을 지배하는 1000년의 관성 중국이 왜 이토록 북한의 ‘안정’에 집착하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순망치한(脣亡齒寒)’, 즉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고사를 알아야 한다. 중국에게 북한은 자국의 핵심 이익을 보호하는 ‘입술’과 같은 **‘전략적 완충지대(Strategic Buffer Zone)’**다. 1)역사적 트라우마와 지정학적 숙명 : 중국은 역사적으로 한반도를 통해 외세의 침략을 받아온 경험이 있다. 특히 70여 년 전 한국전쟁에서 수십만 명의 인민해방군을 희생시키며 북한 정권을 지켜낸 것은, 한반도에 친미(親美) 통일 국가가 들어서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주한미군과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직접 국경을 맞대는 상황은 중국이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안보 시나리오다. 2)급변 사태의 공포 : 북한 정권이 붕괴할 경우, 중국은 두 가지 악몽과 마주하게 된다. 첫째는 수백만 명에 달하는 북한 난민이 국경을 넘어 동북 3성으로 밀려 들어오는 대혼란이다. 둘째는 북한 내 핵무기와 핵물질이 통제 불능 상태에 빠져 외부로 유출될 수 있는 위험이다. 중국은 이러한 혼란을 감수하느니, 차라리 김정은 정권이 현상 유지를 하는 편이 훨씬 비용이 적게 든다고 판단한다. 이러한 ‘순망치한’의 전략적 관성은 중국 대북 정책의 유전자(DNA)와도 같아서, 북한이 아무리 말썽을 피우고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아도 중국이 결코 북한을 포기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된다. 제3부: 제재와 뒷문 - 반복되는 ‘중국 역할론’의 허와 실 북한이 핵실험이나 ICBM 발사와 같은 대형 도발을 감행할 때마다, 국제사회는 중국을 향해 ‘역할을 하라’고 촉구한다. 북한의 생명줄(원유, 식량)을 쥐고 있는 중국이 마음만 먹으면 북한을 굴복시킬 수 있다는 ‘중국 역할론’이다. 그러나 지난 30년의 역사는 이 기대가 얼마나 허상에 가까운지를 보여준다. 중국의 대북 제재 패턴은 늘 일정했다. 1)동참 : 국제사회의 압박에 못 이겨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진다. (역할을 하는 듯한 모습) 2)이완 : 그러나 제재가 북한 정권의 안정 자체를 위협할 수준에 이르면, 비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원유와 식량을 공급하는 등 ‘뒷문’을 열어준다. (숨통을 틔워줌) 3)명분 : ‘제재의 목적은 처벌이 아니라 대화 복귀’이며, ‘북한의 인도주의적 위기는 막아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운다. 이는 중국이 북한을 통제할 ‘의지’도 부족하지만, 때로는 ‘능력’에도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북한은 중국의 압박이 거세지면 러시아에 밀착하는 등, 강대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자율성을 확보해 온 오랜 경험이 있다. ‘중국 역할론’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번번이 실망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제4부: 2025년의 신(新) 변수들 - 미중 경쟁과 북·러 밀착 설상가상으로, 2020년대 들어 격화된 국제 정세는 한중의 ‘동상이몽’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1)신냉전 구도 속 북한의 전략적 가치 상승 : 미중 전략 경쟁이 격화되면서,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한 양국의 협력 공간은 사실상 사라졌다. 오히려 중국에게 북한은 미국의 신경을 긁고 한미일 동맹을 이완시키는 데 유용한 ‘전략적 자산’으로서의 가치가 더욱 커졌다. 중국은 이제 북한 비핵화 문제 해결을 돕는 ‘책임 있는 강대국’이 아니라, 미중 경쟁이라는 더 큰 체스판에서 북한을 ‘말(駒)’로 활용하는 ‘플레이어’가 되었다. 2)북·러 밀착이라는 새로운 변수 :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본격화된 북한과 러시아의 밀착은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북한은 중국 외에 러시아라는 또 다른 ‘뒷배’를 확보함으로써 대중(對中) 의존도를 낮추고 외교적 자율성을 높였다. 이는 북한의 생명줄을 쥐고 있다던 중국의 대북 레버리지를 상당 부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3)한미일 안보 협력 강화의 역설 :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한미일 3각 안보 협력의 강화는, 중국에게는 자신을 겨냥한 ‘아시아판 나토(NATO)’의 등장으로 인식된다. 이러한 안보 딜레마는 중국으로 하여금 북한이라는 ‘완충지대’의 필요성을 더욱 절감하게 만드는 역설적인 효과를 낳고 있다. 제5부. 결론 한반도 비핵화를 향한 한중의 ‘동상이몽’은 단순한 오해나 외교적 기싸움의 결과가 아니다. 이는 ‘생존(한국)’과 ‘패권(중국)’이라는 양국의 결코 타협할 수 없는 국가 핵심 이익이 정면으로 충돌한 결과물이다. 북한이 사실상의 핵보유국이 된 2025년 현재, 중국이 자국의 전략적 이익을 희생하면서까지 우리의 비핵화 목표에 동참해 줄 것이라는 기대는 환상에 가깝다. ‘중국을 설득하여 북한을 변화시킨다’는 지난 30년간의 접근법은 이제 그 유효기간이 끝났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중국의 협조’라는 변수가 아닌, ‘중국의 계산’이라는 상수 위에서 새로운 대북 전략을 짜야 하는 냉엄한 현실과 마주하고 있다. 같은 침대에서 다른 꿈을 꾸는 이웃과 함께, 어떻게 우리의 생존과 평화를 지켜나갈 것인가.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던져진 가장 무거운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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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비핵화를 향한 동상이몽..한중의 엇갈린 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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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한(嫌韓)과 반중(反中) 루비콘 강을 건넜나
- 외교 관계에서 ‘국민 감정’은 종종 수면 아래에 머문다. 정상 간의 악수, 수십억 달러의 무역액, 화려한 문화 교류라는 거대한 빙산의 아래에 가려져 그 중요성을 간과하기 쉽다. 그러나 2025년 현재, 한중 관계라는 거대한 배는 바로 이 ‘국민 감정’이라는 보이지 않는 암초에 부딪혀 좌초될 위기에 처해있다. 최근 몇 년간 발표된 각종 여론조사는 충격적인 현실을 일관되게 가리킨다. 한국인의 중국에 대한 비호감도는 80%를 상회하며, 이는 전통적인 라이벌인 일본을 넘어선 지 오래다. 중국 역시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급격히 확산되고 있다. 한때 ‘한류’에 열광하고 ‘꽌시(關係)’를 외치며 서로를 가장 중요한 파트너라 여겼던 양국 국민은 이제 온라인 공간에서 서로를 향해 ‘짱깨(蔑称)’와 ‘빵즈(棒子)’라는 멸칭을 서슴없이 던지는 사이가 되었다. 정치·경제적 갈등은 시간이 지나면 봉합될 수 있지만, 한번 깊어진 감정의 골은 쉽게 메워지지 않는다. 양국 관계의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 세대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이 깊은 불신과 적대감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으며, 왜 점점 더 악화되고 있는가. 한중 관계의 가장 연약하고 아픈 속살인 ‘국민 감정’의 실체를 해부하고, 양국이 건너고 있는 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의 의미를 진단한다. 제1부: 한국의 ‘반중(反中)’ - 분노는 어디에서 오는가 한국 사회의 반중 정서는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이 아니다. 과거 고구려사 왜곡(동북공정) 등 역사 문제에서 비롯된 불씨가 잠재되어 있었지만, 이것이 전 세대에 걸친 거대한 분노로 폭발하게 된 데에는 몇 가지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1. 사드 사태: ‘경제 파트너’의 배신과 ‘굴욕’의 기억 모든 전문가들은 2017년 사드 사태를 한국 내 반중 감정의 ‘결정적 분기점’으로 꼽는다. 이전까지 중국은 ‘기회의 땅’이자 ‘함께 성장하는 파트너’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사드 배치를 빌미로 가해진 전방위적 경제 보복(한한령)은 이러한 인식을 산산조각 냈다. 1)힘의 논리에 대한 각성 : 중국은 한국의 안보 주권을 존중하기는커녕, 자국의 이익을 위해 언제든 경제를 ‘무기화’할 수 있는 위협적인 존재임을 스스로 증명했다. 이는 한국 사회에 ‘중국은 믿을 수 없는 나라’라는 깊은 불신을 심었다. 2)국가적 자존심의 상처 : 롯데에 대한 표적 보복, 한국행 단체관광 금지 등 노골적인 방식의 압박은 단순한 경제적 피해를 넘어 국민적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대국’이라던 중국의 ‘소인배’ 같은 행태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광범위하게 확산됐다. 사드 사태는 많은 한국인에게 ‘중국몽(中國夢)’의 실체가 패권주의에 불과하다는 인식을 심어준 트라우마로 남았다. 2. 일상을 파고든 위협: 미세먼지와 코로나19 사드 사태가 ‘국가 대 국가’의 문제였다면, 미세먼지와 코로나19는 국민 개개인의 삶과 건강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며 반중 감정을 일상화, 체감화시켰다. 1)뿌연 하늘, 답답한 마음 (미세먼지) : 매년 봄철이면 한반도를 뒤덮는 최악의 미세먼지. 상당 부분이 중국에서 발원했다는 과학적 증거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부는 책임을 부인하거나 ‘서울의 미세먼지는 서울에서 배출된 것’이라는 식의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했다. 이는 한국인들에게 숨 쉴 권리마저 침해당하고 있다는 무력감과 분노를 안겨주었다. 2)팬데믹의 공포와 책임론 (코로나19) : 2020년 초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은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바이러스의 기원, 초기 대응 과정에서의 정보 통제 및 은폐 의혹은 중국에 대한 국제적 불신을 키웠고, 이는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감염병이라는 실존적 위협 앞에서 중국의 폐쇄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체제에 대한 반감이 극대화되었다. 3. 정체성을 향한 공격: 문화·역사 공정 최근 몇 년간 격화된 김치, 한복, 갓 등 한국 고유문화에 대한 ‘원조’ 주장은 불타는 반중 감정에 기름을 부었다. 이는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한국의 역사와 문화적 정체성 자체를 부정하고 중국의 아류로 폄하하려는 ‘문화 동북공정’이라는 인식을 낳았다. 특히 K-팝, K-드라마 등 한류의 세계적 성공에 자부심을 느끼는 젊은 MZ세대에게 이러한 ‘문화 약탈’ 시도는 용납할 수 없는 도발로 받아들여졌다. 이들은 온라인 공간에서 적극적으로 중국의 주장을 반박하고 국제 여론에 호소하며 ‘사이버 외교관’을 자처했다. 이는 기성세대와는 다른 방식으로, ‘공정’과 ‘정의’의 가치를 침해하는 것에 대한 강력한 저항이었다. 이처럼, 한국의 반중 정서는 **안보(사드) → 일상(미세먼지/코로나19) → 정체성(문화 공정)**의 순서로 전방위적으로 심화, 확산되어 왔다. 이는 더 이상 일부 보수층의 이념적 반공주의가 아닌, 세대와 이념을 초월한 보편적인 국민 정서로 자리 잡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제2부: 중국의 ‘혐한(嫌韓)’ - 그들은 왜 한국을 적대하는가 반면, 중국 내에서 확산되는 혐한 감정의 기저에는 한국의 반중 정서와는 또 다른 복합적인 심리가 깔려있다. 1. 사드, ‘믿었던 동생’의 배신감 중국인들에게 사드 배치는 ‘안보 위협’ 이전에 ‘배신감’으로 먼저 다가왔다. 특히 박근혜 정부가 중국의 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하는 등 친중 행보를 보였기에, 그 직후 이어진 사드 배치 결정은 ‘뒤통수를 맞았다’는 인식으로 이어졌다. 미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바로 옆집의 ‘동생’이라 여겼던 한국이 자신의 심장에 칼(레이더)을 꽂는 미국의 편에 섰다는 인식이 팽배해졌다. 중국 관영매체들은 이러한 여론에 불을 지폈고, 일반 대중에게 한국은 ‘미국의 앞잡이’, ‘주권 없는 나라’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각인되었다. 2. 문화적 우월감과 ‘한류’에 대한 복잡한 감정 역사적으로 중국은 한국을 중화 문화권의 일부이자 문화적 영향력 아래 있는 나라로 여겨왔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K-팝과 K-드라마로 대표되는 ‘한류’가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를 휩쓰는 현상은 이러한 전통적인 위계질서에 균열을 냈다. 1)시기와 질투 : 한때 자신들의 ‘학생’이었던 한국이 세계적인 ‘문화 강국’으로 부상한 현실에 대한 일부 중국인들의 시기와 질투심이 혐한 감정의 밑바탕에 깔려있다. 이는 ‘한국 문화는 뿌리가 없다’, ‘전부 중국 것을 베껴간 것’이라는 식의 폄하와 ‘원조’ 주장으로 이어진다. 2)문화적 자신감의 발로 : 시진핑 시대에 강조되는 ‘문화 자신감’과 애국주의는, 한류의 성공을 자극제로 삼아 ‘중화 문화의 위대함’을 다시금 과시하려는 욕구로 나타났다. 한국 문화를 중국 문화의 하위 범주로 편입시키려는 시도는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3. ‘샤오펀훙(小粉红)’으로 대표되는 온라인 민족주의 중국의 혐한 여론을 주도하는 것은 강력한 애국주의와 중화사상으로 무장한 젊은 세대, 이른바 ‘샤오펀훙(소분홍)’이다. 이들은 중국의 성장을 보고 자라 국가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높으며, 온라인 공간에서 국가의 명예를 훼손하는 어떠한 행위도 용납하지 않는 ‘사이버 전사’ 역할을 한다. 이들에게 한국은 ▲미국에 빌붙어 중국을 위협하고, ▲자국의 문화를 훔쳐 제 것인 양 행세하며, ▲스포츠 경기 등에서 비신사적인 행동을 일삼는 ‘괘씸한 나라’로 인식된다. 한국 연예인이 SNS에서 ‘하나의 중국’ 원칙에 반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기만 해도 좌표를 찍고 몰려가 악플 테러를 가하는 것이 이들의 행동 패턴이다. 이러한 극단적인 온라인 민족주의는 양국 젊은 세대 간의 감정의 골을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만들고 있다. 제3부: 결론 -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는가? 한중 양국의 국민 감정 악화는 단순한 오해나 일시적인 갈등이 아니다. 이는 미중 패권 경쟁이라는 거대한 지정학적 변화, 각국의 국내 정치적 필요성, 그리고 온라인 플랫폼이 만들어낸 증오의 확산 구조가 맞물려 만들어진 구조적인 문제다. 과거에는 ‘정경분리(政經分離)’ 원칙에 따라 정치적 갈등이 있더라도 경제·문화 교류는 이어진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사드 사태를 거치며 이러한 믿음은 깨졌다. 이제는 정치·안보 갈등이 곧바로 경제와 문화, 그리고 국민 감정에 직격탄을 날리는 ‘정경일치(政經一致)’의 시대가 되었다. 더욱 암울한 것은, 이러한 감정의 골이 미래 세대로 갈수록 더욱 깊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교류의 경험이 없는 양국의 젊은 세대는 온라인이라는 왜곡된 창을 통해 서로를 배우고 혐오를 학습한다. 이들이 양국 관계의 주역이 될 10~20년 뒤의 미래를 낙관하기 어려운 이유다. 그렇다면 해법은 없는가? 정부 차원의 외교적 노력만으로는 얼어붙은 국민의 마음을 녹일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갈등을 부추기는 자극적인 언어를 경계하는 미디어의 자성,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을 가르치는 교육, 그리고 왜곡된 정보의 확산을 막고 건전한 공론을 만들어 나갈 시민사회의 노력이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그 어떤 노력도 거대한 증오의 흐름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한중 양국은 지금, 서로를 향한 불신과 적대감이라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뒤, 각자의 강둑에 서서 멀어지는 상대를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강을 다시 건널 교량을 놓는 것, 그것이 우리 세대에게 주어진 가장 어렵고도 절박한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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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한(嫌韓)과 반중(反中) 루비콘 강을 건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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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배치와 한한령(限韓令), 안보 딜레마
- 사드 사태는 단순한 외교 마찰을 넘어, 안보, 경제, 외교, 국민 정서 등 모든 영역에 걸쳐 현재의 한중 관계를 규정짓는 분수령이 된 사건이다. 2017년의 대한민국은 둘로 나뉘었다.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에서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발사대 반입을 막으려는 주민들의 절규와 경찰의 방패가 뒤엉켰다. 서울 명동의 화장품 가게들은 중국인 단체 관광객(유커)의 발길이 뚝 끊겨 유령 도시처럼 변해갔다. TV에서는 한국 연예인들이 사라졌고, 중국에 진출했던 수많은 기업은 하루아침에 ‘적’이 되어 불매운동과 영업정지의 칼날 위에 섰다. ‘사드 사태’는 이 모든 풍경을 관통하는 하나의 거대한 이름이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맞서기 위한 ‘주권적 방어 조치’라는 한국의 외침은, 자국의 ‘전략적 안보 이익’을 침해당했다는 중국의 거대한 분노 앞에 힘을 잃었다. 그 분노는 ‘한한령(限韓令)’이라는 이름의 전방위적 경제 보복으로 구체화되었고, 1992년 수교 이래 낙관론이 지배했던 한중 관계는 근본부터 흔들렸다. 오늘일보는 한반도의 운명을 바꾼 사드 배치 결정의 순간부터 현재까지, 그 격동의 시간을 복기하며 우리 사회와 한중 관계에 남겨진 깊은 흔적을 추적했다. 제1부: 결정의 서막 - 왜 ‘사드’였나? 1. 고도화되는 북한의 위협, 방패가 필요했다 2010년대 중반, 한반도의 안보 환경은 그 어느 때보다 위태로웠다. 북한은 김정은 정권 수립 이후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노골적으로 감행하며 대남 위협 수위를 연일 끌어올렸다. 특히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 발사 성공 등 미사일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기존의 패트리엇(PAC-2/3) 미사일 방어 체계로는 요격 고도와 범위에 한계가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킬 체인(Kill Chain)’,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 등 우리 군의 자체적인 방어 능력 구축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끌 현실적인 대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기 시작했다. 이때 미국의 ‘사드’가 수면 위로 급부상했다. 사드는 요격 고도가 40~150km에 달해, 하강하는 적의 탄도미사일을 높은 고도에서 직접 요격할 수 있는 현존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어 시스템 중 하나로 꼽혔다. 2. ‘안미경중(安美經中)’의 딜레마, 선택의 기로에 서다 사드 카드가 등장하자 한국은 외교적 딜레마에 빠졌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노선으로 양대 강국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해 온 한국에게 사드는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시험대와 같았다. 미국은 동맹국 보호와 자국 MD(미사일 방어) 체계의 확장이라는 틀 안에서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를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반면, 중국은 사드 배치를 자국을 겨냥한 ‘군사적 위협’으로 규정하며 일찌감치부터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박근혜 정부는 초기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며 시간을 벌고자 했다. “미국의 요청도, 협의도, 결정도 없었다”는 이른바 ‘3NO’ 입장을 견지하며 중국을 달랬다. 2015년 중국의 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하며 과시했던 양국의 우호 관계가 이러한 기류의 정점이었다. 그러나 2016년 1월,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감행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북한의 폭주를 제어하는 데 중국이 소극적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정부 내 기류는 급격히 ‘사드 배치 용인’으로 기울었다. 결국 2016년 7월 8일, 한미 양국은 주한미군에 사드 체계를 배치하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안보’가 ‘경제’를 압도한 순간이었다. 제2부: 보복의 칼날 - ‘한한령’, 한국의 모든 것을 겨누다 중국의 보복은 공식 발표가 나자마자 즉각적이고, 전방위적이며, 집요하게 시작됐다. 중국 정부는 단 한 번도 ‘한한령’의 존재를 공식 인정한 적이 없다. 하지만 그들이 동원한 방식은 공식적인 제재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웠다. 행정 규제, 언론을 통한 여론전, 민간의 불매 운동이 결합된 ‘보이지 않는 보복’은 한국 경제의 가장 약한 고리를 정밀하게 타격했다. 1. 유커(遊客)의 증발: 관광·유통업의 궤멸 가장 먼저 칼날이 향한 곳은 관광 산업이었다. 2017년 3월, 중국 국가여유국은 베이징과 산둥성 등 주요 여행사에 한국행 단체관광 상품 판매를 전면 중단하라는 구두 지시를 내렸다. 연간 800만 명에 달하던 중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하루아침에 끊겼다. 1)명동과 제주도의 몰락 : 유커들로 북적이던 서울 명동과 제주는 직격탄을 맞았다. 화장품 가게, 식당, 면세점들은 줄줄이 폐업하거나 개점휴업 상태에 빠졌다. 2017년 방한 중국인 관광객 수는 전년 대비 48.3% 급감하며 반 토막이 났다. 2)면세점 업계의 위기 : 전체 매출의 70% 이상을 중국인에게 의존하던 국내 면세점들은 창사 이래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재고는 쌓이고 매출은 급락하며 수조 원대의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2. 롯데, 표적이 되다 사드 부지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롯데그룹’은 중국의 ‘공공의 적’이 되었다. 중국 당국은 롯데의 현지 사업장에 대해 소방, 위생, 환경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전방위적인 세무조사와 행정 조사를 벌였다. 1)마트 영업 중단 사태 : 중국 내 99개에 달하던 롯데마트 점포 중 87곳이 소방 점검 등을 이유로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다. 관영매체가 주도하는 불매 운동까지 겹치면서 롯데마트의 중국 사업은 사실상 마비 상태에 빠졌다. 2)천문학적 손실과 사업 철수 : 롯데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2018년 중국 시장에서 마트 사업의 전면 철수를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입은 손실액만 수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롯데의 사례는 중국이 정치적 이유로 외국 기업의 운명을 어떻게 좌우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으로 남았다. 3. 문화의 빗장: K-콘텐츠의 실종 ‘한한령’이라는 용어 자체가 처음 등장한 문화·엔터테인먼트 분야의 피해도 막심했다. 1)출연 금지 및 수입 중단 : 중국 방송에서 한국 연예인들의 모습이 사라졌고, 한국 드라마와 영화의 신규 수입이 전면 금지됐다. 이미 촬영을 마친 한중 합작 드라마들은 방영이 무기한 연기되며 막대한 제작비 손실을 입었다. 2)K-팝 콘서트 취소 : 중국에서 예정되었던 K-팝 아이돌 그룹들의 콘서트와 팬 미팅이 줄줄이 취소되었다. 이는 한류의 가장 큰 시장이었던 중국의 문이 닫혔음을 의미했다. 3)게임 판호 발급 중단 : 중국 시장 진출의 필수 조건인 ‘판호’(서비스 허가권) 발급이 한국 게임사들에게는 중단되었다. 이로 인해 국내 게임업계는 수년간 중국 시장에 신작을 출시하지 못하는 고통을 겪었다. 이 외에도 현대·기아차의 판매량 급감, 한국산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 미지급 등 보복의 칼날은 한국의 주력 산업 거의 모든 분야를 향했다. 제3부: 중국의 논리 - 그들은 왜 ‘전략적 이익’을 외쳤나? 중국이 이토록 극렬하게 반발한 이유는 무엇일까? 표면적으로는 ‘북한 방어용’이라는 사드가 실제로는 자국을 겨냥하고 있다는 안보적 불신이 그 핵심에 있다. 1. X-밴드 레이더, 중국의 심장을 겨누다 중국이 문제 삼은 것은 사드 미사일 자체가 아니라, 그 구성 요소인 ‘AN/TPY-2’ X-밴드 레이더였다. 이 레이더의 탐지 거리는 최대 1,800km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반도에 배치될 경우 베이징을 포함한 중국 동북부 지역 대부분의 군사 동향을 손금 보듯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이 중국의 주장이었다. 즉, 중국은 사드 레이더가 자국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지를 감시하고, 이 정보를 미국 MD 체계와 공유함으로써 자국의 ‘핵 보복 능력’을 무력화시킬 것을 우려했다. 이는 미중 간의 ‘전략적 균형’을 깨뜨리는 심각한 안보 위협이라는 인식이었다. 한국의 ‘생존권’이 중국의 ‘전략적 이익’과 정면으로 충돌한 것이다. 2. ‘닭을 죽여 원숭이를 겁준다(杀鸡儆猴)’ 중국의 거친 보복에는 또 다른 전략적 의도가 숨어있었다. 바로 ‘살계儆猴’, 즉 닭(한국)을 죽여 원숭이(미국과 주변국)를 겁준다는 계산이다. 중국은 한국을 본보기로 삼아, 향후 미국의 MD 체계에 편입하려는 다른 아시아 국가들(일본, 필리핀 등)에게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내려 했다. 자국의 핵심 이익을 건드리는 국가는 동맹 관계나 경제적 교류와 무관하게 언제든 가혹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보여준 것이다. 이는 동아시아의 패권국으로서 자국의 ‘레드 라인’을 설정하고, 이를 넘는 행위를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과시였다. 제4부: 봉합과 남겨진 상처 - ‘3불 1한’과 그 이후 1. 3불(不)1한(限) 극단으로 치닫던 갈등은 2017년 10월 31일, 양국이 ‘한중 관계 개선 관련 협의 결과’를 발표하며 외교적으로 봉합 국면에 들어섰다. 이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중국 측에 전달한 이른바 ‘3불(不) 1한(限)’ 입장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3불(不): ▲사드를 추가 배치하지 않고,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MD)에 참여하지 않으며, ▲한미일 군사동맹으로 발전시키지 않는다. 1한(限): 이미 배치된 사드 운용을 제한하여 중국의 전략적 안보 이익을 침해하지 않도록 한다. 이 합의로 단체 관광이 일부 재개되는 등 급한 불은 껐지만, 이는 한국의 안보 주권에 스스로 족쇄를 채운 ‘굴욕 외교’라는 비판을 동시에 낳았다. 2. 사드가 남긴 깊은 상처와 교훈 1)깨져버린 신뢰, 돌아선 민심 : 사태 이전까지 ‘기회의 땅’으로 여겨졌던 중국은 ‘언제든 돌변할 수 있는 위협적인 존재’로 각인되었다. 한국 국민의 반중(反中) 정서는 이 시기를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며, 이는 양국 관계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2)‘차이나 리스크’의 학습과 공급망 재편 : 한국 기업들은 특정 국가에 대한 과도한 경제 의존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뼈저리게 체감했다. 사드 사태는 이후 코로나19, 요소수 사태 등을 거치며 ‘탈(脫)중국’ 및 공급망 다변화 논의를 가속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3)돌아오지 않는 한류 : 한한령이 공식적으로 해제되지 않은 상황에서, K-콘텐츠는 여전히 중국 시장에서 예전의 위상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대신 한류는 동남아, 유럽, 북미 등지로 시장을 다변화하며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는 계기를 맞았다. 4. 결론 및 제언 사드 사태는 1992년 수교 이후 25년간 이어진 한중 관계의 1막이 끝나고, 갈등과 경쟁이 새로운 상수가 된 2막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서곡이었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안일한 공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미중 신냉전 시대의 냉혹한 현실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었다. 성주 기지에 임시 배치된 사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안보 현안이다. ‘3불 1한’의 족쇄는 여전히 우리 외교의 선택지를 제약하고 있다. 사드 사태가 남긴 가장 중요한 교훈은, 우리의 생존과 직결된 안보 주권을 그 어떤 경제적 이익이나 외교적 관계로도 타협할 수 없다는 사실일 것이다. 동시에, 강대국들의 힘이 충돌하는 지정학적 현실 속에서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더욱 정교하고 냉철한 외교 전략이 절실하다는 과제를 남겼다. 사드의 먼지는 가라앉았지만, 그로 인해 드러난 한중 관계의 민낯과 동북아의 지정학적 균열은 여전히 우리 앞에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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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배치와 한한령(限韓令), 안보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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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총성, 김치·한복 논쟁
-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중 관계를 설명하는 키워드는 ‘한류(韓流)’와 ‘치맥(치킨과 맥주)’이었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중국 대륙을 휩쓸고, 한국의 화장품과 패션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문화는 양국 국민의 마음을 잇는 가장 부드럽고 강력한 다리처럼 보였다. 그러나 2020년대를 기점으로 그 다리는 곳곳이 끊어지고 파괴되기 시작했다. 이제 온라인 공간에서 양국의 젊은 세대는 서로를 향해 ‘문화 도둑’, ‘역사 왜곡’이라며 날 선 비난을 퍼붓고 있다. 그 중심에 ‘김치’와 ‘한복’이 있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자 민족의 정체성이 담긴 문화유산이 어느 날 갑자기 ‘중국 것’이라는 주장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이른바 ‘김치·한복 공정(工程)’. 이는 단순한 해프닝이나 일부 네티즌의 설전을 넘어, 시진핑 시대 중국의 팽창하는 문화 민족주의와 한국 사회의 불안감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거대한 전선(戰線)이 되었다. 오늘일보는 이 문화 전쟁의 시작과 전개, 그리고 그 이면에 숨겨진 양국의 정치·사회적 욕망을 심층적으로 추적했다. 이것은 음식과 옷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정체성과 자존심, 그리고 미래 세대의 인식을 둘러싼 총성 없는 전쟁에 대한 이야기다. 제1부: 김치의 눈물, ‘파오차이’라는 이름의 멍에 1. 발단: ISO 인증과 환구시보의 불씨 2020년 11월, 모든 논쟁의 시작점이 된 사건이 발생했다. 중국 쓰촨성의 염장채소인 ‘파오차이(泡菜)’가 국제표준화기구(ISO)로부터 국제 표준 인증을 획득한 것이다. 문제의 본질은 파오차이의 인증 그 자체가 아니었다. ISO 문서 스스로도 “이 문서는 김치(Kimchi)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명시하며 선을 그었다. 그러나 중국의 관영매체 환구시보(環球時報)는 이를 의도적으로 왜곡, “중국 김치 산업이 국제 김치 시장의 기준이 됐다”, “한국은 굴욕을 당했다”는 식의 선동적인 기사를 쏟아냈다. 이는 곧바로 중국 최대 소셜미디어인 웨이보를 통해 확산됐고, ‘한국의 김치는 사실 중국 파오차이의 아류’라는 인식이 기정사실처럼 퍼져나갔다. 한국 언론이 팩트체크를 통해 반박에 나섰지만, 이미 불은 걷잡을 수 없이 번진 뒤였다. 2. 중국의 논리: ‘문화 동북공정’과 중화 패권주의 중국의 주장은 크게 두 가지 논리로 요약된다. 첫째, 역사적 연관성이다. 한국의 채소 절임 문화가 고대 중국에서 전래되었으며, 따라서 김치는 큰 틀에서 중국의 파오차이 문화권에 속한다는 것이다. 둘째, ‘조선족’을 고리로 한 편입 논리다. 중국의 55개 소수민족 중 하나인 조선족이 김치를 먹으니, 김치는 자연스럽게 중국 문화의 일부라는 주장이다. 이는 과거 고구려사를 중국의 지방사로 편입하려 했던 ‘동북공정’의 논리와 정확히 일치한다. 자국의 경계 안에 존재하는 모든 역사와 문화를 ‘중화(中華)’라는 거대한 용광로에 녹여 넣으려는 시도, 이른바 ‘문화 동북공정’의 서막이었다. 전문가들은 이를 시진핑 주석 집권 이후 강화된 ‘문화 자신감(文化自信)’과 애국주의 교육의 산물로 분석한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꿈꾸는 ‘중국몽(中國夢)’ 아래, 주변국의 고유문화까지 자국의 역사로 포섭하려는 문화 제국주의적 발상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3. 한국의 반박: 과학과 역사가 증명하는 김치의 독자성 이에 대한 한국의 반박은 명료하다. 김치와 파오차이는 기원, 재료, 발효 방식에서 완전히 다른 음식이다. 1)기원과 역사 : 한국의 김치는 삼국시대부터 채소를 소금에 절여 먹던 ‘저(菹)’ 문화에서 출발, 고려 시대를 거치며 다양한 향신료가 추가되었고, 조선시대 임진왜란 이후 고추가 전래되면서 오늘날과 같은 붉은 김치의 형태로 발전했다. 반면, 파오차이는 채소를 소금물에 절여 단기간에 발효시키는 쓰촨 지역의 염장채소다. 2)발효 방식의 차이 : 김치는 젓갈과 고춧가루, 마늘, 생강 등 다양한 양념을 버무려 저온에서 유산균으로 서서히 발효시키는 ‘발효 과학’의 정수다. 이에 반해 파오차이는 소금물에 채소를 담가 젖산 발효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김치와는 발효에 관여하는 미생물군부터 다르다. 3)문화적 상징성 : 한국에서 김치는 단순한 음식을 넘어 공동체 문화의 상징이다. 이웃과 함께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김장 문화’는 201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며 그 독창성과 공동체적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이처럼 명백한 역사적, 과학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억지 주장을 굽히지 않는 것은, 사실 관계의 증명보다는 ‘문화적 종주국’이라는 이미지를 선점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깔려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제2부: 한복의 수난, ‘한푸’라는 이름의 그림자 1. 발단: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의 충격 김치 논쟁의 불씨가 채 꺼지기도 전인 2022년 2월, 더 큰 충격이 전 세계를 덮쳤다.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 중국의 국기인 오성홍기를 전달하는 퍼포먼스에 분홍색 저고리와 푸른색 치마, 즉 누가 봐도 명백한 ‘한복’을 입은 여성이 중국 내 소수민족 대표 중 한 명으로 등장한 것이다. 전 세계 수십억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중국은 한복이 자국의 55개 소수민족 중 하나인 ‘조선족’의 의상이므로, 이는 곧 중국 문화의 일부라는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각인시켰다. 한국 사회는 들끓었다. 이는 단순히 옷 한 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고유한 민족 복식을 자국의 다문화주의를 선전하는 도구로 전락시키고 그 정체성을 희석시키려는 명백한 ‘문화 찬탈’ 행위라는 분노가 폭발했다. 2. 중국의 논리: ‘영향’을 ‘기원’으로 둔갑시키다 한복을 둘러싼 중국의 주장은 더욱 교묘하다. 그들은 역사적으로 한국이 중국 왕조(특히 명나라)의 의복 양식에 영향을 받았으므로, 한복은 중국 ‘한푸(漢服)’의 아류이거나 그 영향을 받은 복식이라는 논리를 편다. 온라인에서는 한복과 명나라 시대 한푸를 비교하며 유사성을 부각하는 콘텐츠가 대량으로 유포된다. 하지만 이는 문화의 ‘상호 교류’와 ‘종속’을 의도적으로 혼동하는 전형적인 논리 왜곡이다. 역사적으로 동아시아 국가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문화를 발전시킨 것은 상식에 속한다. 이탈리아의 파스타가 중국의 면 요리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고 해서 파스타를 중국 음식이라 부르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중국의 논리는 이러한 보편적 문화 교류의 역사를 무시하고, 모든 영향 관계를 ‘중화’로의 일방적 편입 관계로 재단하려는 패권적 시각을 드러낸다. 3. 한국의 반박: 독자적 발전 계보를 지닌 민족의 옷 한복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부터 그 원형을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유구한 역사를 지녔다. 중국의 당나라, 원나라, 명나라와 교류하며 일부 유행을 받아들이기도 했으나, ‘짧은 상의(저고리)와 풍성한 하의(치마/바지)’라는 기본 구조를 유지하며 우리 고유의 미감과 생활양식에 맞게 독자적으로 발전해왔다. 특히 조선 시대에 이르러서는 넉넉하고 우아한 실루엣의 한푸와 달리, 상의는 짧아지고 하의는 풍성해지는 ‘상박하후(上薄下厚)’의 독창적인 미학을 완성했다. 저고리의 ‘고름’, 치마의 ‘허리끈’ 등 세부적인 구조와 착장 방식 역시 한푸와는 명백히 구분되는 고유한 특징이다. 한복은 단순한 옷이 아니라, 수천 년간 한민족의 희로애락과 함께해 온 살아있는 역사이자 정체성 그 자체다. 제3부: 심층 분석 - 왜 지금, ‘문화 전쟁’인가? 이러한 문화 논쟁이 2020년대 들어 유독 격화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단순히 양국 네티즌 간의 감정싸움으로 치부할 수 없는 복합적인 정치·사회적 배경을 담고 있다. 1. 내부 결속을 위한 ‘외부의 적’: 중국의 신(新) 애국주의 시진핑 시대의 중국은 강력한 국력을 바탕으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외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역사와 문화를 국가 중심의 서사로 재편하고, 젊은 세대에게 극단적인 애국주의와 중화사상을 주입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미중 패권 경쟁 등으로 내부적 불만이 고조될 때마다, 외부의 ‘적’을 설정해 내부 결속을 다지는 것은 중국 공산당의 전통적인 통치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지리적으로 가깝고, 문화적으로도 얽혀 있으며,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은 ‘공격하기 좋은’ 표적이 되었다는 분석이다. 한류의 세계적 성공에 대한 시기와 견제 심리 또한 이러한 흐름에 불을 지폈다. 2. 악화된 상호 인식과 ‘MZ세대의 반격’ 사드(THAAD) 사태와 한한령, 홍콩 민주화 시위, 코로나19 책임론 등을 거치며 한국 사회의 대중(對中) 인식은 역대 최악의 수준으로 떨어졌다. 특히 공정과 정의에 민감한 한국의 MZ세대는 중국의 불합리한 주장과 역사 왜곡에 대해 과거 세대보다 훨씬 더 공격적이고 직설적으로 반격에 나서고 있다. 이들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논쟁을 주도하고, ‘#hanbok_is_korean_traditional_clothes’와 같은 해시태그 운동을 벌이며 국제 여론에 호소한다. 이는 더 이상 당하고만 있지 않겠다는 문화적 자존감의 발현이자, 기성세대의 외교적 수사(레토릭)를 넘어선 새로운 방식의 저항이다. 3. 알고리즘이 증폭시키는 ‘디지털 민족주의’ 유튜브, 틱톡, 웨이보 등 소셜미디어 플랫폼은 이러한 갈등을 증폭시키는 확성기 역할을 한다. 양국의 사용자들은 각자의 플랫폼 안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강화하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소비하며 ‘확증 편향’에 빠지기 쉽다. 알고리즘은 비슷한 성향의 콘텐츠를 끊임없이 추천하며 사용자를 ‘필터 버블’ 안에 가두고, 이는 상대국에 대한 혐오와 적개심을 극대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온라인상의 ‘사이버 전사’들은 사실 관계의 확인보다는 감정적인 비난에 몰두하며, 이는 합리적인 토론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제4부: 파장과 전망 - 상처뿐인 싸움, 해법은 없는가? 1. 깊어지는 감정의 골, 미래 관계의 암초 김치와 한복 논쟁은 양국 관계에 깊은 생채기를 남겼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양국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 세대 간의 감정의 골이 회복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깊어졌다는 점이다. 정치적, 경제적 갈등은 이해관계에 따라 봉합될 수 있지만, 역사와 정체성을 건드리는 문화 갈등은 마음속 깊은 곳에 앙금으로 남아 장기적인 관계 발전에 심각한 암초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한때 한류의 최대 소비 시장이었던 중국 시장의 문은 점점 좁아지고 있으며, 문화 교류는 단절의 위기로 치닫고 있다. 2. 정부의 딜레마와 미디어의 역할 양국 정부는 이러한 갈등이 외교 문제로 비화하는 것을 경계하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국민적 분노가 들끓는 상황에서 정부의 ‘전략적 모호성’은 때로 ‘저자세 외교’, ‘굴욕 외교’라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디어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자극적인 보도로 민족주의 감정을 부추기기보다는, 사실관계를 명확히 하고, 갈등의 배경을 심층적으로 분석하며, 장기적인 해법을 모색하는 공론의 장을 열어야 할 책임이 있다. 3. 전망과 제언: 존중 없는 교류는 불가능하다 김치와 한복 논쟁은 단기간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는 미중 패권 경쟁이라는 거대한 지정학적 구도와 중국 내부의 정치적 변화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기적인 대응과 함께 장기적인 전략 마련이 시급하다. 첫째, 학술적·논리적 대응 강화가 필요하다. 감정적 대응을 넘어, 김치와 한복의 역사적 독자성을 명확한 근거와 데이터로 정리하고, 이를 다양한 언어로 번역해 국제 사회에 적극적으로 알리는 체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둘째, 문화 교류의 패러다임 전환이 요구된다. 일방적인 한류 전파를 넘어, 상대 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한 쌍방향 교류를 모색해야 한다. 문화는 우열을 가리는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고 공유하며 풍성해지는 인류의 자산이기 때문이다. 셋째,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성찰이 동반되어야 한다. 외부의 도발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우리 문화의 가치와 역사를 제대로 알고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결국 김치와 한복 논쟁은 우리에게 ‘중국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총성 없는 전쟁의 끝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것은 상처뿐인 승리가 아니라, 우리 문화에 대한 확고한 자부심과 이웃을 대하는 성숙한 지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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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총성, 김치·한복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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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 역사 침탈, 문화 도용: 21세기 중국의 거대 프로젝트
- ‘동북변강역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의 줄임말인 동북공정은 고구려, 발해 등 한국 고대사를 중국의 지방 정권 역사로 편입하려는 중국의 국가적 프로젝트다. 이는 한국의 역사적 정체성을 흔드는 심각한 ‘역사 침탈’ 행위로, 학술적 논쟁을 넘어 국민적 감정 대립으로 비화했다. 따라서 21세기 대한민국과 중국의 관계를 논할 때, ‘동북공정(東北工程)’이라는 네 글자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2002년 공식적으로 시작되어 2007년 막을 내린 것으로 알려진 이 거대한 역사 프로젝트는 단순한 학술 연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중국의 국가적 필요에 의해 기획되고, 치밀한 논리 아래 실행되었으며, 양국의 국민 감정을 최악으로 치닫게 한 ‘역사 전쟁’의 서막이었다. 프로젝트가 공식 종료된 지 18년이 훌쩍 넘었지만, 그 망령은 ‘김치공정’, ‘한복공정’과 같은 ‘문화공정’의 형태로 되살아나 오늘날까지도 양국 관계에 깊은 상흔을 남기고 있다. 동북공정이라는 거대한 프로젝트가 왜 시작되었고, 어떤 논리로 우리의 역사를 침탈했으며, 한국 사회는 어떻게 대응했는지, 그리고 그 유산이 현재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23여 년의 시간을 해부한다. 제1부: 동북공정의 서막 - 용은 왜 역사를 탐하기 시작했는가? 2002년, 중국 사회과학원 산하 중국변강사지연구중심(中國邊疆史地硏究中心)이 주도하는 대규모 국가 프로젝트가 조용히 시작되었다. 공식 명칭은 ‘동북변강역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東北邊疆歷史與現狀系列研究工程)’. 중국 동북 지역의 역사와 현상에 관한 체계적 연구 프로젝트라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아는 ‘동북공정’이다. 겉으로는 학술 연구의 형태를 띠었지만, 그 이면에는 냉철한 정치·전략적 계산이 깔려 있었다. 1) 전략적 불안감: 한반도 통일과 국경 안정 문제 동북공정의 가장 핵심적인 배경은 1990년대 이후 중국이 느끼기 시작한 전략적 불안감이다. 1992년 한중 수교가 이루어지고 남북한이 UN에 동시 가입하면서 한반도 정세는 급변했다. 중국의 지도부는 머지않은 미래에 한반도가 통일될 가능성을 심각하게 고려하기 시작했다. 특히 북한의 체제 불안정성이 가시화되면서, 북한 붕괴 시나리오와 그에 따른 후폭풍은 중국의 핵심 안보 현안으로 떠올랐다. 중국이 우려한 것은 두 가지였다. 첫째, 통일 한국이 친미(親美) 성향을 띠게 될 경우, 막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갖춘 통일 국가가 미군과 함께 압록강·두만강 국경을 맞대게 되는 상황이다. 둘째는 더욱 근본적인 문제, 바로 영토 분쟁의 가능성이었다. 현재 중국의 동북 3성(랴오닝성, 지린성, 헤이룽장성)은 고구려와 발해의 옛 터전이다. 이 지역에는 200만 명에 가까운 조선족(朝鮮族)이 거주하고 있다. 만약 한반도가 통일되고, 통일 한국이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옛 고구려 영토에 대한 역사적 연고권을 주장할 경우, 이는 중국 동북 지역의 안정과 ‘중화민족’의 통합을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는 불씨가 될 수 있었다. 중국은 이러한 잠재적 위협의 싹을 사전에 제거할 필요성을 절감했다. 역사를 바로잡는다는 명분 아래, 미래에 제기될 수 있는 모든 영토 분쟁의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는 것, 그것이 동북공정의 가장 중요한 전략적 목표였다. 2) 이데올로기적 토대: '통일적 다민족국가론' 이러한 정치적 목적을 학술적으로 뒷받침한 것이 바로 **‘통일적 다민족국가론(統一的 多民族國家論)’**이다. 이는 현대 중국의 역사관을 지배하는 핵심 이데올로기다. 그 골자는 다음과 같다. "현재 중국 국경 안에서 과거에 존재했던 모든 민족과 그들이 세운 국가는 모두 중국 역사의 일부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한족(漢族)이 세운 국가뿐만 아니라 만주족의 청나라, 몽골족의 원나라 역시 모두 중국사다. 문제는 이 논리를 한반도와 직접 관련된 고대사, 즉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에 적용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고구려와 발해의 영토 대부분이 현재 중국 국경 안에 위치하므로, 이들 역시 중국의 역사, 구체적으로는 중화민족을 구성하는 56개 소수민족 중 하나의 역사가 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는 과거 왕조 중심의 역사관에서 벗어나, 현재의 국경을 기준으로 과거를 재단하는 전형적인 ‘역사공학’이다. 독립적인 국가였던 고구려와 발해를 중국 중앙 왕조의 ‘지방 정권’으로 격하시키고, 그 역사를 중국사라는 거대한 용광로에 녹여버리려는 시도였다. 이러한 이론적 토대 위에서, 동북공정은 고구려사와 발해사를 중국사의 일부로 편입시키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제2부: 동북공정의 논리 - 어떻게 역사를 왜곡하는가? 동북공정은 고구려와 발해를 중국사로 만들기 위해 기존의 학술적 성과를 무시하고, 사료를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며, 때로는 의도적으로 사실관계를 왜곡하는 방식을 취했다. 그들의 핵심 논리와 그에 대한 한국 학계의 반박은 다음과 같다. 1. 고구려(Goguryeo) 왜곡 1)동북공정의 주장: "고구려는 고대 중국의 소수민족이 세운 지방정권이다." 근거 ① - 조공(朝貢) 관계: 고구려가 중국의 여러 왕조에 조공을 바쳤으므로, 이는 종속 관계의 증거라고 주장한다. 근거 ② - 책봉(冊封) 관계: 중국 황제가 고구려 왕을 ‘요동군공 고구려왕(遼東郡公 高句麗王)’ 등으로 책봉했으므로, 고구려는 중국의 제후국이었다고 주장한다. 근거 ③ - 영토 문제: 고구려의 초기 중심지가 한사군(漢四郡) 중 하나인 현도군(玄菟郡) 관할 내에 있었으므로, 시작부터 중국의 영토 안에서 출발했다는 논리를 편다. 2)한국 학계의 반박: "고구려는 독자적 천하관을 가진 독립 주권 국가였다." 조공에 대한 반박: 전근대 동아시아에서 조공-책봉은 일종의 외교 형식이었으며, 정치적 종속 관계와는 거리가 멀었다. 조공은 선진 문물 습득과 안정적인 무역 관계 유지를 위한 실리 외교의 수단이었다. 고구려는 중국과 전쟁을 벌이면서도 필요에 따라 조공을 보내는 등, 국제 관계를 주체적으로 운영했다. 책봉에 대한 반박: 책봉 역시 마찬가지다. 고구려는 중국으로부터 왕의 지위를 인정받는 책봉을 받으면서도, 내부적으로는 ‘태왕(太王)’이라는 황제급 칭호를 사용하고 ‘영락(永樂)’과 같은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했다. 이는 고구려가 중국 중심의 세계관과는 다른, 자신들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독자적 천하관(天下觀)**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다. 영토 문제에 대한 반박: 한사군의 위치와 영역에 대해서는 학계의 논란이 있으며, 설령 초기 영토가 일부 겹친다 하더라도 그것이 국가의 정체성을 규정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고구려는 수(隋)·당(唐)과 같은 통일 제국과 수십 년간 대규모 전쟁을 치르며 동아시아의 패권을 다툰 강력한 독립 국가였다. 만약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권이었다면, 수 양제가 113만 대군을 동원하고 당 태종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침공한 ‘내란’을 역사상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는 논리적으로 명백한 모순이다. 2. 발해(Balhae) 왜곡 1)동북공정의 주장 : "발해는 당나라의 지방 행정기관이자, 말갈족이 주체가 된 국가이다." 근거 ① - 책봉 관계: 발해의 건국자인 대조영(大祚榮)이 당나라로부터 ‘발해군왕(渤海郡王)’으로 책봉받았으므로, 발해는 당의 지방 정권이라고 주장한다. 근거 ② - 민족 구성: 발해의 주민 다수가 말갈족이었으므로, 고구려 계승 국가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2)한국 학계의 반박 :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한 명백한 한국사 국가이다." 책봉에 대한 반박: 대조영이 책봉을 받은 것은 국가를 세운 지 20여 년이 지난 후의 일이다. 이는 발해의 실체를 사후에 인정한 것에 불과하다. 발해는 스스로를 ‘고려(高麗, 고구려)’라 칭했고, 일본에 보낸 외교 문서에서도 발해 국왕을 ‘고려 국왕’으로 칭하며 고구려 계승 의식을 분명히 했다. 민족 구성에 대한 반박: 발해는 고구려 유민인 지배층과 말갈족인 피지배층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였으나, 국가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것은 지배층의 계승 의식과 문화의 연속성이다. 발해의 수도였던 상경성(上京城)의 구조는 당나라 장안성의 영향을 받았지만, 온돌 난방 시설, 불상 양식, 무덤 양식 등에서는 고구려 문화의 특징이 뚜렷하게 발견된다. 이는 발해가 고구려 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켰음을 보여주는 고고학적 증거다. 제3부: 실행과 확산 - 보이지 않는 역사 침탈의 전선 동북공정은 단순히 학술 논문을 발표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중국은 국가의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왜곡된 역사관을 자국민에게 주입하고, 나아가 국제 사회에 기정사실화하려는 전방위적인 작업을 펼쳤다. 1)교과서와 박물관 : 중국의 역사 교과서에서 고구려와 발해는 중국사의 일부로 기술되기 시작했다. 지린성(吉林省) 지안시(集安市)에 있는 고구려 유적지 박물관이나 랴오닝성(遼寧省) 박물관 등의 전시 내용은 고구려가 한나라 때부터 중국의 통치를 받은 지방 정권이라는 식의 설명으로 채워졌다. 광개토대왕릉비와 같은 핵심 유물에 대한 접근은 통제되었고, 한국 연구자들의 연구 활동은 심각한 제약을 받았다. 2)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시도 : 동북공정의 야심이 국제적으로 드러난 결정적 사건은 고구려 유적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단독 등재 시도였다. 중국은 2003년 자국 내 고구려 유적을 단독으로 등재하려 했다. 이는 고구려사가 자국의 역사라는 것을 국제적으로 공인받으려는 매우 교묘하고 치밀한 전략이었다. 한국 정부와 학계가 강력히 반발하고 외교적 노력을 기울인 끝에, 2004년 7월 남한과 북한에 있는 고구려 유적과 중국에 있는 고구려 유적이 각각 별개의 유산으로 동시에 등재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중국의 역사 왜곡 의도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3)인터넷과 대중 매체 : 바이두(Baidu)와 같은 중국의 대표적인 인터넷 백과사전에는 고구려와 발해가 중국사로 버젓이 기술되어 있다. 중국 중앙방송(CCTV)은 동북공정의 논리를 그대로 담은 역사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여 방영하는 등, 대중 매체를 통한 역사관 전파에도 주력했다. 제4부: 한국의 대응과 갈등의 격화 - 뒤늦은 각성과 상처뿐인 합의 동북공정이 시작된 초기, 한국 정부와 학계는 그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일부 학자들이 꾸준히 문제를 제기했지만, 사회적 공론화로 이어지지 못했다. 상황이 급변한 것은 2004년, 중국의 유네스코 등재 시도와 함께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의 한국사 관련 개요에서 고구려사 부분이 삭제되고, 고구려가 중국의 소수민족 정권이었다는 내용이 기술된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다. 언론의 대대적인 보도와 함께 국민적 분노가 들끓기 시작했다. 시민단체들은 주한 중국대사관 앞에서 연일 시위를 벌였고, 정치권에서도 초당적인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한국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강력히 항의했고, 이는 양국 간의 심각한 외교 갈등으로 비화했다. 결국 2004년 8월, 양국은 "역사 문제의 정치 쟁점화를 막고, 학술 교류를 통해 해결하며, 중국 정부는 고구려사 문제의 한국사 귀속성을 인정하는 한국 측의 입장에 유의한다"는 내용의 5개 항 구두 양해에 합의했다. 이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한 미봉책에 불과했다. 중국은 공식적인 역사 왜곡은 자제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학술 연구라는 이름 아래 동북공정은 계속 진행되었다. 정부 차원에서는 2004년 고구려연구재단을 긴급히 설립했고, 이후 이를 확대 개편하여 2006년 동북아역사재단을 출범시켰다. 동북아역사재단은 동북공정의 논리에 대응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올바른 역사를 국내외에 알리는 역할을 맡았다. 학계와 시민 사회에서도 VANK와 같은 단체들이 인터넷을 통해 중국의 역사 왜곡을 알리는 등 자발적인 대응 노력이 이어졌다. 제5부: 동북공정 그 이후 - 끝나지 않은 '문화공정'의 시대 2007년, 5년간의 공식 프로젝트 기간이 끝나면서 동북공정은 막을 내렸다. 그러나 이는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었다. 고대사에 집중되었던 역사 왜곡의 칼날은 이제 한국의 고유한 생활 문화와 예술 전반을 향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문화공정(文化工程)’**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문화공정은 동북공정의 논리, 즉 ‘중국 국경 안에서 이루어진 모든 것은 중국의 것’이라는 논리를 문화 영역으로 확장시킨 것이다. 고대사 논쟁이 학술적 영역에 머물렀다면, 문화공정은 대중의 일상과 감정을 직접적으로 파고든다는 점에서 더욱 교묘하고 파급력이 크다. 1)김치(Kimchi)와 파오차이(泡菜) : 중국은 한국의 김치가 자국의 절임 채소인 파오차이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며, 심지어 파오차이가 김치의 국제 표준인 것처럼 여론을 호도했다. 이는 한국인의 정체성과도 같은 음식 문화를 폄하하고 종속시키려는 의도로 해석되어 큰 반발을 샀다. 2)한복(Hanbok)과 한푸(漢服) : 중국의 일부 네티즌들과 매체는 한복이 명나라의 한푸(漢服)에서 유래했다며 ‘한푸 동북공정’을 펼치기 시작했다. 한국의 전통 복식을 중국 문화의 아류로 취급하는 이러한 주장은 특히 양국의 젊은 세대 간에 극심한 감정싸움을 유발했다. 3)역사 인물과 예술의 국적 세탁 : 중국은 지린성 옌볜 출신인 윤동주 시인을 ‘중국 조선족 애국 시인’으로 표기하고, 아리랑, 판소리, 씨름 등 한국의 전통 문화유산을 자국의 소수민족 문화로 소개하며 조선족의 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이러한 문화공정은 과거 동북공정처럼 국가기관이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관영 매체의 은근한 보도, 인플루언서(왕홍)의 SNS 활동, 애국주의 네티즌(소분홍, 小粉紅)의 조직적인 여론전 등 훨씬 더 분산되고 대중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는 대응을 더욱 어렵게 만들며, 양국 국민, 특히 미래 세대의 상호 인식을 돌이킬 수 없이 악화시키는 주범이 되고 있다. 4)결론: 역사 전쟁의 폐허 위에서 미래를 묻다 동북공정은 중국이라는 거대 국가가 자국의 정치적 필요에 따라 이웃 나라의 역사를 어떻게 재단하고 침탈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21세기의 비극적인 실례다. 이 프로젝트가 남긴 가장 큰 상처는 단순히 왜곡된 역사 지식이 아니다. 그것은 대한민국 국민의 가슴에 깊이 새겨진 ‘중국에 대한 불신’이며, 중국 국민에게 주입된 ‘역사적 우월감과 편견’이다. 한번 파괴된 신뢰는 쉽게 회복되지 않으며, 잘못 심어진 역사 인식은 세대를 넘어 이어지기 쉽다. 이제 우리는 동북공정이라는 폐허 위에서 질문해야 한다. 우리는 왜 역사에 천착해야 하는가? 역사는 단순히 박제된 과거의 기록이 아니기 때문이다. 역사는 한 민족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뿌리이며,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나침반이다. 우리의 뿌리를 부정당하고 나침반을 빼앗길 때, 우리는 국제 사회 속에서 우리의 고유한 가치와 위상을 지켜낼 수 없다. 동북공정과 그 변종인 문화공정에 맞서는 것은 맹목적인 반중(反中) 감정이나 국수주의적 대응이 되어서는 안 된다. 더욱 철저하고 엄밀한 학술 연구를 통해 우리의 논리를 단단히 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제 사회를 설득하며, 우리 내부적으로는 역사 교육을 강화하여 미래 세대가 올바른 역사관을 갖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강력하고 지속 가능한 대응이 될 것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낡은 경구는, 21세기 동북아의 지정학 속에서 여전히 서늘하고 유효한 진실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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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 역사 침탈, 문화 도용: 21세기 중국의 거대 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