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8-24(일)
 
  • 안보와 경제 사이, 한중 관계는 무엇을 잃었나?
  • 단순한 미사일 방어체계를 넘어 동북아 지정학의 ‘게임 체인저’로 부상한 사드.
  • 롯데부터 K-콘텐츠까지 모든 것을 할퀸 ‘한한령’의 상처는 아물었는가?

 

 

 

사드 사태는 단순한 외교 마찰을 넘어, 안보, 경제, 외교, 국민 정서 등 모든 영역에 걸쳐 현재의 한중 관계를 규정짓는 분수령이 된 사건이다.

 

 

2017년의 대한민국은 둘로 나뉘었다.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에서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발사대 반입을 막으려는 주민들의 절규와 경찰의 방패가 뒤엉켰다. 서울 명동의 화장품 가게들은 중국인 단체 관광객(유커)의 발길이 뚝 끊겨 유령 도시처럼 변해갔다. TV에서는 한국 연예인들이 사라졌고, 중국에 진출했던 수많은 기업은 하루아침에 ‘적’이 되어 불매운동과 영업정지의 칼날 위에 섰다.


‘사드 사태’는 이 모든 풍경을 관통하는 하나의 거대한 이름이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맞서기 위한 ‘주권적 방어 조치’라는 한국의 외침은, 자국의 ‘전략적 안보 이익’을 침해당했다는 중국의 거대한 분노 앞에 힘을 잃었다. 그 분노는 ‘한한령(限韓令)’이라는 이름의 전방위적 경제 보복으로 구체화되었고, 1992년 수교 이래 낙관론이 지배했던 한중 관계는 근본부터 흔들렸다. 오늘일보는 한반도의 운명을 바꾼 사드 배치 결정의 순간부터 현재까지, 그 격동의 시간을 복기하며 우리 사회와 한중 관계에 남겨진 깊은 흔적을 추적했다.


 

 

제1부: 결정의 서막 - 왜 ‘사드’였나?

 

 

 

1. 고도화되는 북한의 위협, 방패가 필요했다

 

 

2010년대 중반, 한반도의 안보 환경은 그 어느 때보다 위태로웠다. 북한은 김정은 정권 수립 이후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노골적으로 감행하며 대남 위협 수위를 연일 끌어올렸다. 특히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 발사 성공 등 미사일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기존의 패트리엇(PAC-2/3) 미사일 방어 체계로는 요격 고도와 범위에 한계가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킬 체인(Kill Chain)’,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 등 우리 군의 자체적인 방어 능력 구축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끌 현실적인 대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기 시작했다. 이때 미국의 ‘사드’가 수면 위로 급부상했다. 사드는 요격 고도가 40~150km에 달해, 하강하는 적의 탄도미사일을 높은 고도에서 직접 요격할 수 있는 현존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어 시스템 중 하나로 꼽혔다.

 

 

 

2. ‘안미경중(安美經中)’의 딜레마, 선택의 기로에 서다

 

 

사드 카드가 등장하자 한국은 외교적 딜레마에 빠졌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노선으로 양대 강국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해 온 한국에게 사드는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시험대와 같았다. 미국은 동맹국 보호와 자국 MD(미사일 방어) 체계의 확장이라는 틀 안에서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를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반면, 중국은 사드 배치를 자국을 겨냥한 ‘군사적 위협’으로 규정하며 일찌감치부터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박근혜 정부는 초기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며 시간을 벌고자 했다. “미국의 요청도, 협의도, 결정도 없었다”는 이른바 ‘3NO’ 입장을 견지하며 중국을 달랬다. 2015년 중국의 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하며 과시했던 양국의 우호 관계가 이러한 기류의 정점이었다. 그러나 2016년 1월,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감행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북한의 폭주를 제어하는 데 중국이 소극적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정부 내 기류는 급격히 ‘사드 배치 용인’으로 기울었다. 결국 2016년 7월 8일, 한미 양국은 주한미군에 사드 체계를 배치하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안보’가 ‘경제’를 압도한 순간이었다.

 

 

 

제2부: 보복의 칼날 - ‘한한령’, 한국의 모든 것을 겨누다

 

 

 

중국의 보복은 공식 발표가 나자마자 즉각적이고, 전방위적이며, 집요하게 시작됐다. 중국 정부는 단 한 번도 ‘한한령’의 존재를 공식 인정한 적이 없다. 하지만 그들이 동원한 방식은 공식적인 제재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웠다. 행정 규제, 언론을 통한 여론전, 민간의 불매 운동이 결합된 ‘보이지 않는 보복’은 한국 경제의 가장 약한 고리를 정밀하게 타격했다.

 

 

 

1. 유커(遊客)의 증발: 관광·유통업의 궤멸

 

 

가장 먼저 칼날이 향한 곳은 관광 산업이었다. 2017년 3월, 중국 국가여유국은 베이징과 산둥성 등 주요 여행사에 한국행 단체관광 상품 판매를 전면 중단하라는 구두 지시를 내렸다. 연간 800만 명에 달하던 중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하루아침에 끊겼다.


1)명동과 제주도의 몰락

 

: 유커들로 북적이던 서울 명동과 제주는 직격탄을 맞았다. 화장품 가게, 식당, 면세점들은 줄줄이 폐업하거나 개점휴업 상태에 빠졌다. 2017년 방한 중국인 관광객 수는 전년 대비 48.3% 급감하며 반 토막이 났다.


2)면세점 업계의 위기

 

: 전체 매출의 70% 이상을 중국인에게 의존하던 국내 면세점들은 창사 이래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재고는 쌓이고 매출은 급락하며 수조 원대의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2. 롯데, 표적이 되다

 

 

사드 부지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롯데그룹’은 중국의 ‘공공의 적’이 되었다. 중국 당국은 롯데의 현지 사업장에 대해 소방, 위생, 환경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전방위적인 세무조사와 행정 조사를 벌였다.


1)마트 영업 중단 사태

 

: 중국 내 99개에 달하던 롯데마트 점포 중 87곳이 소방 점검 등을 이유로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다. 관영매체가 주도하는 불매 운동까지 겹치면서 롯데마트의 중국 사업은 사실상 마비 상태에 빠졌다.


2)천문학적 손실과 사업 철수

 

: 롯데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2018년 중국 시장에서 마트 사업의 전면 철수를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입은 손실액만 수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롯데의 사례는 중국이 정치적 이유로 외국 기업의 운명을 어떻게 좌우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으로 남았다.

 

 

 

3. 문화의 빗장: K-콘텐츠의 실종

 

 

‘한한령’이라는 용어 자체가 처음 등장한 문화·엔터테인먼트 분야의 피해도 막심했다.

 

 

1)출연 금지 및 수입 중단

 

: 중국 방송에서 한국 연예인들의 모습이 사라졌고, 한국 드라마와 영화의 신규 수입이 전면 금지됐다. 이미 촬영을 마친 한중 합작 드라마들은 방영이 무기한 연기되며 막대한 제작비 손실을 입었다.

 

 

2)K-팝 콘서트 취소

 

: 중국에서 예정되었던 K-팝 아이돌 그룹들의 콘서트와 팬 미팅이 줄줄이 취소되었다. 이는 한류의 가장 큰 시장이었던 중국의 문이 닫혔음을 의미했다.


3)게임 판호 발급 중단

 

: 중국 시장 진출의 필수 조건인 ‘판호’(서비스 허가권) 발급이 한국 게임사들에게는 중단되었다. 이로 인해 국내 게임업계는 수년간 중국 시장에 신작을 출시하지 못하는 고통을 겪었다.


이 외에도 현대·기아차의 판매량 급감, 한국산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 미지급 등 보복의 칼날은 한국의 주력 산업 거의 모든 분야를 향했다.

 

 

 

제3부: 중국의 논리 - 그들은 왜 ‘전략적 이익’을 외쳤나?

 

 

중국이 이토록 극렬하게 반발한 이유는 무엇일까? 표면적으로는 ‘북한 방어용’이라는 사드가 실제로는 자국을 겨냥하고 있다는 안보적 불신이 그 핵심에 있다.

 

 

 

1. X-밴드 레이더, 중국의 심장을 겨누다

 

 

중국이 문제 삼은 것은 사드 미사일 자체가 아니라, 그 구성 요소인 ‘AN/TPY-2’ X-밴드 레이더였다. 이 레이더의 탐지 거리는 최대 1,800km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반도에 배치될 경우 베이징을 포함한 중국 동북부 지역 대부분의 군사 동향을 손금 보듯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이 중국의 주장이었다.


즉, 중국은 사드 레이더가 자국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지를 감시하고, 이 정보를 미국 MD 체계와 공유함으로써 자국의 ‘핵 보복 능력’을 무력화시킬 것을 우려했다. 이는 미중 간의 ‘전략적 균형’을 깨뜨리는 심각한 안보 위협이라는 인식이었다. 한국의 ‘생존권’이 중국의 ‘전략적 이익’과 정면으로 충돌한 것이다.

 

 

 

2. ‘닭을 죽여 원숭이를 겁준다(杀鸡儆猴)’

 

 

중국의 거친 보복에는 또 다른 전략적 의도가 숨어있었다. 바로 ‘살계儆猴’, 즉 닭(한국)을 죽여 원숭이(미국과 주변국)를 겁준다는 계산이다. 중국은 한국을 본보기로 삼아, 향후 미국의 MD 체계에 편입하려는 다른 아시아 국가들(일본, 필리핀 등)에게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내려 했다. 자국의 핵심 이익을 건드리는 국가는 동맹 관계나 경제적 교류와 무관하게 언제든 가혹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보여준 것이다. 이는 동아시아의 패권국으로서 자국의 ‘레드 라인’을 설정하고, 이를 넘는 행위를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과시였다.

 

 

 

제4부: 봉합과 남겨진 상처 - ‘3불 1한’과 그 이후

 

 

 

1. 3불(不)1한(限) 

 

 

극단으로 치닫던 갈등은 2017년 10월 31일, 양국이 ‘한중 관계 개선 관련 협의 결과’를 발표하며 외교적으로 봉합 국면에 들어섰다. 이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중국 측에 전달한 이른바 ‘3불(不) 1한(限)’ 입장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3불(不): ▲사드를 추가 배치하지 않고,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MD)에 참여하지 않으며, ▲한미일 군사동맹으로 발전시키지 않는다.


1한(限): 이미 배치된 사드 운용을 제한하여 중국의 전략적 안보 이익을 침해하지 않도록 한다.


이 합의로 단체 관광이 일부 재개되는 등 급한 불은 껐지만, 이는 한국의 안보 주권에 스스로 족쇄를 채운 ‘굴욕 외교’라는 비판을 동시에 낳았다.

 

 

 

2. 사드가 남긴 깊은 상처와 교훈



1)깨져버린 신뢰, 돌아선 민심

 

: 사태 이전까지 ‘기회의 땅’으로 여겨졌던 중국은 ‘언제든 돌변할 수 있는 위협적인 존재’로 각인되었다. 한국 국민의 반중(反中) 정서는 이 시기를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며, 이는 양국 관계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2)‘차이나 리스크’의 학습과 공급망 재편

 

: 한국 기업들은 특정 국가에 대한 과도한 경제 의존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뼈저리게 체감했다. 사드 사태는 이후 코로나19, 요소수 사태 등을 거치며 ‘탈(脫)중국’ 및 공급망 다변화 논의를 가속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3)돌아오지 않는 한류

 

: 한한령이 공식적으로 해제되지 않은 상황에서, K-콘텐츠는 여전히 중국 시장에서 예전의 위상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대신 한류는 동남아, 유럽, 북미 등지로 시장을 다변화하며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는 계기를 맞았다.

 

 

 

4. 결론 및 제언

 

 

사드 사태는 1992년 수교 이후 25년간 이어진 한중 관계의 1막이 끝나고, 갈등과 경쟁이 새로운 상수가 된 2막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서곡이었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안일한 공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미중 신냉전 시대의 냉혹한 현실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었다.


성주 기지에 임시 배치된 사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안보 현안이다. ‘3불 1한’의 족쇄는 여전히 우리 외교의 선택지를 제약하고 있다. 사드 사태가 남긴 가장 중요한 교훈은, 우리의 생존과 직결된 안보 주권을 그 어떤 경제적 이익이나 외교적 관계로도 타협할 수 없다는 사실일 것이다. 동시에, 강대국들의 힘이 충돌하는 지정학적 현실 속에서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더욱 정교하고 냉철한 외교 전략이 절실하다는 과제를 남겼다. 사드의 먼지는 가라앉았지만, 그로 인해 드러난 한중 관계의 민낯과 동북아의 지정학적 균열은 여전히 우리 앞에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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