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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늙어가는 중국'의 인구 절벽의 현실화
    2022년 1월 17일, 중국 국가통계국이 발표한 수치는 세계사에 기록될 하나의 변곡점이었다. 중국의 인구가 61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세로 돌아선 것이다. 마오쩌둥 시대의 대기근 이후 처음으로 14억 인구 대국의 신화가 무너져 내린 순간이었다. 1978년 개혁개방으로 세계를 향해 문을 연 사건만큼이나, 2022년의 인구 감소는 '중국의 시대'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조용한 총성이었다. 전문가들은 이 현상을 **'미부선로(未富先老)'**라는 네 글자로 요약한다. 선진국처럼 ‘부유해지기도 전에 먼저 늙어버리는’ 국가가 되었다는 뜻이다. 이는 인류 역사상 그 어떤 나라도 경험하지 못한 거대한 도전이다. 풍부하고 젊은 노동력을 바탕으로 '세계의 공장'이 되었던 ‘인구 보너스(Demographic Dividend)’ 시대는 이제 막을 내렸다. 2025년 8월 현재, 인구 감소는 일시적 현상이 아닌 돌이킬 수 없는 추세가 되었다. 중국이 왜 이처럼 가파른 인구 절벽에 직면하게 되었는지, 그 역사적 원죄와 현재의 사회·경제적 모순을 추적하고, '늙어가는 용'이 마주할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심층 진단한다. 제1부: 예고된 재앙 - '한 자녀 정책'이라는 이름의 원죄(原罪) 중국의 인구 문제를 논할 때, 1979년부터 2015년까지 무려 36년간 이어진 **‘한 자녀 정책(计划生育)’**을 빼놓을 수 없다. 이는 인구 폭발이 국가 발전을 저해할 것이라는 공포에서 시작된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하고 급진적인 인구 통제 실험이었다. 1. 정책의 명분과 잔혹한 현실 당시 덩샤오핑 지도부는 개혁개방의 성공을 위해 인구 증가를 억제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했다. ‘한 부부, 한 자녀’를 강제하는 이 정책은 강력한 국가 권력을 통해 집행되었다. 목표를 초과한 임신에 대해서는 강제 낙태와 불임 시술이 자행되었고, 이를 어길 시에는 막대한 벌금과 사회적 불이익이 가해졌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비극과 인권 유린이 발생했지만, ‘국가의 발전’이라는 대의 아래 묵인되었다. 2. 돌이킬 수 없는 유산: 비뚤어진 인구 구조 ‘한 자녀 정책’은 단기적으로 인구 증가를 억제하는 데는 성공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대가로 중국 사회에 깊은 상처와 기형적인 인구 구조를 남겼다. 1)'4-2-1' 가족 구조의 비극 : 한 명의 자녀가 부모 두 명과 조부모 네 명, 총 여섯 명을 부양해야 하는 압도적인 부담을 지게 되었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기형적인 부양비 구조다. 2)사라진 딸들, '성비 불균형' : 남아 선호 사상과 맞물려 여아에 대한 선택적 낙태가 만연했다. 그 결과, 현재 중국에는 결혼 적령기 남성이 여성보다 수천만 명 더 많은 심각한 성비 불균형이 초래되었다. 이는 결혼 자체를 어렵게 만드는 사회적 문제로 이어졌다. 3)'소황제(小皇帝)' 세대의 등장 : 과보호 속에서 자란 외동아들, 외동딸 세대는 이전 세대와는 다른 가치관을 갖게 되었고, 이는 현재 중국 사회의 특징을 규정하는 중요한 변수가 되었다. 결론적으로 ‘한 자녀 정책’은 미래 세대의 인구를 ‘빌려와’ 현재의 경제 성장을 이룩한 것과 같다. 이제 그 빚을 갚아야 할 청구서가 날아들기 시작한 것이다. 제2부: Z세대의 '출산 파업' - 왜 아이를 낳지 않는가? 2016년, 중국 정부는 뒤늦게 ‘한 자녀 정책’을 폐기하고 ‘전면적 두 자녀 정책’으로 전환했으며, 2021년에는 ‘세 자녀 정책’까지 허용했다. 그러나 출산율은 반등하지 않고 오히려 더 가파르게 추락했다. 이제 문제는 ‘낳지 못하게 하는’ 국가의 통제가 아니라, ‘낳을 수 없고, 낳고 싶지 않은’ 청년 세대의 자발적인 ‘출산 파업’으로 바뀌었다. 1. 감당할 수 없는 3대 압력: 집, 교육, 의료 오늘날 중국의 젊은이들은 결혼과 출산을 가로막는 **‘3개의 거대한 산(三座大山)’**에 짓눌려 있다. 1)주택 : 천정부지로 치솟은 대도시의 집값은 평범한 월급으로는 감당 불가능한 수준이다. ‘결혼하려면 집이 있어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 속에서, 집 문제는 결혼의 첫 번째 관문이자 가장 높은 장벽이 되었다. 2)교육 :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한 경쟁은 한국 이상으로 살인적이다. 조기 교육부터 시작해 각종 사교육에 들어가는 비용은 중산층 가정의 허리를 휘게 만든다. 2021년 정부가 사교육 시장을 초토화시킨 ‘솽젠(双减)’ 정책은 역설적으로 교육 불안감만 키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3)의료 : 사회 안전망이 부족한 상황에서, 자녀나 부모가 아플 경우 막대한 의료비 부담을 가계가 고스란히 져야 한다는 공포가 크다. 2. ‘996’와 ‘내권(内卷)’, 그리고 ‘탕핑(躺平)’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주 6일 일한다’는 의미의 ‘996’ 문화는 중국 청년들의 삶을 소진시키고 있다. 의미 없는 소모적 경쟁을 뜻하는 ‘내권(内卷)’ 속에서 이들은 번아웃에 내몰린다. 이러한 절망감 속에서 청년들은 차라리 모든 것을 포기하고 최소한의 생존만 추구하는 ‘탕핑(드러눕기)’을 택하거나, 더 나아가 **“우리가 마지막 세대(我们是最后一代)”**라며 출산을 통한 고통의 대물림을 거부하고 있다. 3. 깨어난 여성들의 선택 과거 세대와 달리,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고 경제적 자립을 이룬 현대 중국 여성들에게 결혼과 출산은 더 이상 필수가 아닌 ‘선택’의 문제가 되었다. 이들은 가부장적인 결혼 문화와 독박 육아의 현실 속에서 자신의 경력과 삶을 희생하기를 거부하며, 비혼과 비출산을 삶의 방식으로 적극적으로 선택하고 있다. 제3부: '인구 보너스'의 소멸 - 경제에 드리운 그림자 인구 구조의 역전은 ‘세계의 공장’이자 ‘세계의 시장’이었던 중국 경제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 1)노동력 부족과 제조업의 위기 : 값싸고 풍부한 노동력은 ‘메이드 인 차이나’의 핵심 경쟁력이었다. 그러나 노동 인구(15~59세)는 2012년을 정점으로 이미 10년 넘게 감소 중이다. 공장에서는 사람을 구하기 어려워지고 인건비는 급등하고 있다. 이는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의 입지를 약화시키는 요인이다. 2)소비 시장의 붕괴 : 젊은 인구는 소비의 주체다. 인구가 감소하고 고령화가 진행된다는 것은 아기용품부터 자동차, 아파트에 이르기까지 모든 내수 시장이 구조적으로 위축됨을 의미한다. 이는 ‘내수 중심 성장’을 외치는 중국 정부의 계획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3)연금 시한폭탄 : 현재 중국의 연금 제도는 ‘두 명의 노동자가 한 명의 퇴직자를 부양’하는 구조지만, 수년 내에 ‘한 명의 노동자가 한 명의 퇴직자를 부양’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연금 고갈은 피할 수 없는 미래이며, 이는 거대한 사회 불안의 뇌관이 될 수 있다. 제4부. 결론 및 제언 중국의 인구 위기는 부동산 부채나 미중 갈등보다 훨씬 더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도전이다. 다른 문제들은 정책적 노력으로 해결하거나 완화할 여지가 있지만, 인구라는 거대한 흐름은 한번 방향이 바뀌면 되돌리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뒤늦게 출산 장려를 위해 현금 보조금, 육아 휴직 확대 등 각종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청년들이 겪는 구조적인 압력을 해결하지 못하는 정책은 공허한 메아리가 될 뿐이다. 시진핑 주석이 최근 ‘새로운 시대의 결혼·출산 문화’를 강조하며 국가주의적 해법을 모색하는 듯한 움직임도 보이지만, 이는 오히려 젊은 세대의 더 큰 반발을 살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인구 보너스'에 기반한 중국의 기적적인 성장 시대는 끝났다는 사실이다. 앞으로의 중국은 줄어드는 노동력과 늘어나는 부양 부담 속에서 성장의 한계에 부딪힐 것이다. ‘중국의 꿈’은 '늙어가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현실의 벽 앞에서 그 빛이 바래고 있다. 인구는 운명이다. 그리고 중국은 지금, 그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의 내리막길에 들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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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이슈
    2025-08-24
  • 닫힌 지갑, 멈춰선 성장: 14억 소비 대국의 침묵
    한때 세계의 모든 명품 매장은 중국인 관광객(유커)들로 가득 찼다. 그들의 손에는 명품 쇼핑백이 들려 있었고, 그들의 씀씀이는 글로벌 기업들의 실적을 좌우했다. '14억 인구의 중산층이 지갑을 열기 시작하면 세계 경제는 새로운 성장 엔진을 얻을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지배했다. 중국 정부 역시 ‘수출·투자’ 중심의 성장 모델에서 ‘내수·소비’ 중심으로 전환하는 ‘쌍순환(雙循環)’ 전략을 국가의 최우선 과제로 내걸었다. 그러나 2025년 8월 현재, 그 거대한 소비 엔진은 차갑게 식어버렸다. 상하이의 화려한 쇼핑몰은 한산하고, 젊은이들은 값비싼 신상 대신 중고 거래 앱을 탐색한다. 은행 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져도 사람들은 대출을 받아 집이나 차를 사는 대신, 기록적인 속도로 저축 예금을 늘리고 있다. 이른바 **‘소비 절벽(Consumption Cliff)’**의 도래다. 이는 단순한 경기 둔화를 넘어, 중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미래에 대한 깊은 불안감이 응축된 결과물이다. 중국 소비자들이 왜 지갑을 닫게 되었는지, 그들의 소비 패턴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 거대한 침묵이 중국과 세계 경제에 보내는 경고음은 무엇인지 심층 취재했다. 제1부: 신화의 종언 - 무엇이 소비의 불을 껐나? 중국인들의 소비 심리가 급격하게 얼어붙은 데에는 복합적인 원인이 있지만, 전문가들은 크게 세 가지 ‘충격’을 핵심 요인으로 꼽는다. 1. 부동산 불패 신화의 붕괴: 자산 쇼크 지난 20년간 중국 중산층의 부(富)는 사실상 ‘부동산’과 동의어였다. ‘오늘 산 아파트 가격이 내일이면 오른다’는 믿음은 사람들을 과감하게 소비하게 만드는 강력한 ‘자산 효과(Wealth Effect)’를 낳았다. 내 자산이 불어나고 있다는 착각은 미래에 대한 낙관론으로 이어졌고, 이는 자동차, 가전, 사치품 소비를 견인했다. 그러나 2021년 헝다 사태로 시작된 부동산 시장의 장기 침체는 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자산 가치 하락’을 경험한 중국인들은 패닉에 빠졌다. 자산이 줄어들고 있다는 공포는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이어져, 소비를 극단적으로 줄이고 현금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으로 나타났다. 즉, 부동산 쇼크가 소비 심리의 근간을 무너뜨린 첫 번째 도미노였다. 2. 고용 한파와 소득 불안: 미래 쇼크 지갑을 여는 가장 중요한 조건은 ‘미래 소득에 대한 안정적인 기대’다. 그러나 2025년 현재 중국, 특히 젊은 세대에게 이는 사치가 되었다. 1)사상 최악의 청년 실업 : 빅테크와 부동산, 사교육 등 과거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던 산업들이 정부의 규제 철퇴를 맞고 구조조정에 들어가면서 청년 실업률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치솟았다. 2)기존 직장인의 임금 삭감 : 경기 둔화는 기업과 지방 정부의 재정 악화로 이어져, 민간 기업은 물론 공무원 사회에서조차 임금 삭감과 보너스 취소 바람이 불고 있다. ‘오늘의 직장이 내일도 보장된다’는 믿음이 깨지면서, 사람들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기 시작했다. 특히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등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생애주기적 소비를 포기하거나 무기한 연기하는 젊은 층이 늘어나면서 내수 시장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3. '제로 코로나'가 남긴 심리적 상처: 신뢰 쇼크 3년간 이어진 고강도의 ‘제로 코로나’ 정책은 중국인들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도시 전체가 예고 없이 봉쇄되고, 하루아침에 직장과 수입을 잃을 수 있다는 공포를 집단적으로 체험했다. 이 경험은 중국인들에게 두 가지 교훈을 남겼다. 첫째, 국가가 개인의 삶을 언제든 통제할 수 있다는 불신. 둘째, 예상치 못한 위기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예방적 저축(Precautionary Savings)’이 필수적이라는 깨달음이다. 제로 코로나 해제 이후 ‘보복 소비’가 터질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오히려 가계 저축률이 폭증한 것은 이러한 심리적 트라우마가 얼마나 깊은지를 방증한다. 제2부: '소비 강급(消费降级)' 시대의 풍경 지갑을 닫은 중국인들은 단순히 소비를 줄이는 것을 넘어, 소비의 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다. 이른바 **‘소비 강급’**이라 불리는 새로운 트렌드가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 1)"가성비를 숭배하라" : 과거 브랜드와 과시를 중시하던 소비 문화는 이제 ‘가성비(性价比)’를 최우선으로 따지는 문화로 바뀌었다. 알리바바의 타오바오 대신 저가 공동구매 플랫폼인 ‘핀둬둬(拼多多)’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화려한 플래그십 스토어 대신 창고형 할인 매장이 인기를 끈다. 스타벅스 대신 1/3 가격의 ‘루이싱 커피(瑞幸咖啡)’를 마시는 것이 합리적인 소비로 여겨진다. 2)"체험은 하되, 사치는 금물" : 소비 욕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방향이 ‘소유’에서 ‘경험’으로, ‘고가’에서 ‘저가’로 바뀌었을 뿐이다. 대표적인 현상이 **‘특종병사식 여행(特种兵式旅游)’**이다. 이는 주말 등을 이용해 최소한의 경비로 잠을 줄여가며 최대한 많은 관광지를 둘러보는 초저가 여행 방식을 뜻한다. 비싼 해외여행 대신 저렴한 국내 소도시 여행이 각광받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3)"중고 거래와 알뜰 소비의 일상화" : 명품을 새로 사는 대신 중고 명품을 찾고, 최신 스마트폰 대신 중고폰을 구매하는 것이 더 이상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더 적은 돈으로 만족을 얻을 수 있는가’가 모든 소비의 기준이 되고 있다. 제3부: 정부의 고민 - 왜 부양책은 효과가 없는가? 내수 부진이 장기화되자 중국 정부도 칼을 빼 들었다. 기준금리를 인하하고, 자동차와 가전제품에 대한 보조금을 지급하며, 일부 도시에서는 소비 쿠폰을 발행하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담하다. 왜일까? 근본적인 원인은 ‘신뢰’의 부재에 있다. 정부가 아무리 돈을 풀고 대출을 장려해도, 가계가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면 그 돈은 소비로 흐르지 않고 은행 계좌에 쌓일 뿐이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과 유사한 상황이다. 또한, 중국 정부는 서구 국가들처럼 국민에게 직접 현금을 지원하는 대규모 재정 부양책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이는 ‘복지주의는 나태를 낳는다’는 공산당의 전통적인 통치 철학과, 부채가 심각한 지방 정부에 더 큰 재정 부담을 지울 수 없다는 현실적 고민이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결국, 소비 부진의 원인은 ‘수요’ 측면의 심리 위축에 있는데, 정부의 정책은 여전히 ‘공급’ 측면의 인프라 투자에 머무는 미스매치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제4부: 결론 및 제언 중국의 소비 절벽은 ‘성장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시대의 필연적 귀결이다. 이는 중국 경제가 투자와 수출이라는 두 바퀴만으로는 더 이상 달릴 수 없는 임계점에 도달했음을 의미한다. 닫힌 소비자의 지갑을 다시 열기 위해서는 금리를 낮추고 보조금을 주는 단기 처방을 넘어,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고, 공정한 분배 시스템을 만들며, 예측 가능한 정책으로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하다. 중국 소비자의 침묵은 단순히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의 시장’ 중국이 수요를 창출하지 못하면, 독일의 자동차 공장도, 프랑스의 와이너리도, 한국의 반도체 기업도 함께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다. 시진핑 지도부가 이 거대한 ‘수요의 실종’ 사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는 21세기 세계 경제의 향방을 결정할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14억 인구의 기나긴 침묵은 이미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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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8-24
  • 회색 코뿔소의 돌진. 중국 지방정부 '부채 폭탄'
    중국의 도시들을 방문하면 세계를 압도하는 인프라에 감탄하게 된다. 하늘을 찌르는 마천루, 대륙을 거미줄처럼 연결하는 고속철도, 최첨단 설비의 공항과 항만. 지난 30년간 중국이 이룩한 눈부신 성장의 상징이다. 그러나 이 화려한 경관은 거대한 신기루일지 모른다. 그 기반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바로 ‘부채’라는 이름의 모래성이기 때문이다. 2025년 8월 현재, 중국 경제를 위협하는 가장 큰 위험을 꼽으라면 단연 ‘지방 정부 부채’ 문제다. 비공식 통계까지 합하면 그 규모가 90조 위안(약 1경 7000조 원)을 넘어 중국 GDP의 70%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이미 예견된 위험이었으나 모두가 애써 외면해 온 **‘회색 코뿔소(Gray Rhino)’**다. 이제 부동산 시장의 붕괴라는 방아쇠가 당겨지면서, 육중한 몸을 일으킨 코뿔소가 중국 경제의 심장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부동산 시장의 침체는 지방 정부의 재정에 직격탄이 되었다. 과거 지방 정부는 토지사용권 매각 수입에 재정의 상당 부분을 의존해왔다. 이 수입원이 막히자, 사회기반시설 투자 등을 위해 무리하게 빌려 쓴 막대한 규모의 '숨겨진 부채(LGFV)'가 시한폭탄으로 떠올랐다. 부채 문제 해결을 위해 중앙정부에 손을 벌리고 있지만, 이는 결국 국가 전체의 재정 건전성을 뒤흔들 수 있는 '회색 코뿔소(예견 가능하지만 간과되는 위험)'로 지목되고 있다. 제1부: 괴물의 탄생 - LGFV와 '토지 재정(土地财政)'의 기원 중국의 지방 부채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LGFV(Local Government Financing Vehicle, 地方政府融资平台)’**라는 독특한 존재를 알아야 한다. LGFV는 지방 정부가 사회기반시설 투자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 즉 ‘숨겨진 주머니’다. 1. 중앙과 지방의 비대칭적 재정 구조 모든 문제의 뿌리는 1994년의 분세제(分税制) 개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중앙정부는 재정 통제력을 강화하기 위해 국세 수입의 비중을 대폭 늘렸다. 반면, 도로 건설, 학교 설립, 공공 서비스 등 돈 쓸 일은 대부분 지방 정부의 몫으로 남겨뒀다. 수입은 줄고 지출은 늘어나는 재정 구조의 모순이 발생한 것이다. 더욱이 예산법상 지방 정부가 직접 은행 대출을 받거나 채권을 발행하는 길은 엄격히 막혀 있었다. 2. '숨겨진 주머니' LGFV의 등장 궁지에 몰린 지방 정부는 법망을 우회할 기발한 방법을 찾아냈다. 바로 지방 정부 소유의 국유기업 형태인 LGFV를 설립하는 것이었다. LGFV는 명목상 독립된 기업이기에 은행 대출과 채권 발행이 자유로웠다. 지방 정부는 보유한 토지의 사용권을 LGFV에 담보로 제공했고, LGFV는 이를 바탕으로 금융시장에서 막대한 자금을 빌려 인프라 건설에 쏟아부었다. 3. '토지 재정'이라는 마약 이 기형적인 시스템을 가능하게 한 마법의 연료는 바로 **‘토지 재정(土地财政)’**이었다. 중국의 토지는 국가 소유이므로, 지방 정부는 토지사용권(보통 40~70년)을 부동산 개발업체에 팔아 막대한 수입을 올렸다. 부동산 시장이 활황일 때 이 모델은 완벽하게 작동했다. 1)지방 정부 : 토지 판매로 재정을 확충하고, 인프라 건설로 GDP 성장률(핵심 고과 지표)을 높여 관리들은 승승장구했다. 2)은행 : 정부가 뒤를 봐주는 LGFV에 안심하고 돈을 빌려주며 막대한 이자 수익을 올렸다. 3)개발업체 : LGFV가 닦아놓은 신도시의 땅을 사서 아파트를 지어 분양하며 천문학적인 돈을 벌었다. 이 ‘부채와 토지에 기반한 성장 모델’은 지난 20년간 중국의 압축 성장을 이끈 핵심 동력이었지만, 동시에 언젠가는 터질 수밖에 없는 폭탄을 키우는 과정이기도 했다. 제2부: 멈춰버린 성장 엔진 - 무엇이 위기를 촉발했나 영원할 것 같던 ‘부채의 축제’는 몇 가지 결정적인 사건을 계기로 종말을 맞이했다. 1. 방아쇠가 된 부동산 시장의 붕괴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부동산 시장의 경착륙이다. 과열된 부동산 시장의 부채 리스크를 우려한 중앙정부가 2020년 강력한 대출 규제인 '세 개의 레드라인(三道红线)' 정책을 도입했다. 이는 헝다, 비구이위안과 같은 거대 개발업체들의 연쇄 디폴트(채무불이행) 사태를 촉발하며 부동산 시장 전체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개발업체들이 도산하고 아파트가 팔리지 않자, 더 이상 지방 정부로부터 토지를 사들일 주체가 사라졌다. ‘토지 재정’이라는 핵심 돈줄이 막히면서, 지방 정부와 LGFV는 빌린 돈의 이자조차 갚기 어려운 유동성 위기에 직면했다. 2. 재정을 고갈시킨 '제로 코로나' 정책 엎친 데 덮친 격으로, 3년간 이어진 고강도의 '제로 코로나' 정책은 지방 정부의 재정을 완전히 고갈시켰다. 전 주민 PCR 검사, 대규모 격리 시설 건설, 봉쇄에 따른 경제 활동 중단 등 막대한 방역 비용을 모두 지방 정부가 떠안았다. 이는 가뜩이나 위태롭던 지방 재정에 결정타를 날렸다. 3. 수익성 없는 투자와 부채의 악순환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은 부채로 건설한 수많은 인프라가 수익을 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GDP 실적을 위해 경쟁적으로 지어진 유령 도시, 이용객이 거의 없는 공항과 고속철도는 유지비만 잡아먹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빚을 내서 지은 자산이 새로운 현금을 창출하지 못하니, 기존의 빚을 갚기 위해 더 큰 빚을 내야 하는 전형적인 ‘부채의 덫’에 빠진 것이다. 제3부: 위기의 현주소 - 버스 중단에서 월급 체불까지 부채 폭탄의 여파는 이제 중국 인민들의 일상생활을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1)공공 서비스의 마비 : 허난성의 일부 도시에서는 재정난으로 시내버스 운행이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윈난성, 구이저우성 등 부채가 심각한 지역에서는 공무원과 교사의 월급, 퇴직 연금이 몇 달씩 체불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2)금융 시스템으로의 전이 : LGFV가 발행한 채권(성투채, 城投债)은 주로 지방의 중소 은행들이 대거 보유하고 있다. 만약 LGFV의 디폴트가 연쇄적으로 발생할 경우, 부실 채권을 떠안은 지방 은행들의 건전성이 악화되며 국지적 금융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3)'반쪽짜리' 도시들 : 자금난으로 공사가 중단된 도로, 짓다 만 아파트와 상업 시설들이 중국 전역에 흉물처럼 방치되고 있다. 이는 도시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국민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제4부: 중앙정부의 딜레마 - '구제금융'이냐 '구조조정'이냐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자, 모든 시선은 베이징의 중앙정부로 쏠리고 있다. 시진핑 지도부는 이 회색 코뿔소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두고 깊은 딜레마에 빠져있다. 1. 옵션 1 : 전면적 구제금융(Bailout): 중앙정부가 직접 나서 지방의 부채를 갚아주는 방식이다. 1)장점: 대규모 디폴트를 막아 금융 시스템 붕괴와 사회 불안을 막을 수 있다. 2)단점: 지방 정부에 ‘빚을 아무리 져도 결국 중앙이 해결해준다’는 잘못된 신호(도덕적 해이)를 줄 수 있다. 또한 중앙정부의 재정 부담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킨다. 2. 옵션 2: 고통 분담과 구조조정(Restructuring): 일부 LGFV의 파산을 용인하고, 지방 정부 스스로 허리띠를 졸라매게 하는 방식이다. 1)장점: 시장 원리에 따라 부실을 정리하고, 지방 정부의 무분별한 부채 증가에 경종을 울릴 수 있다. 2)단점: 과정이 매우 고통스럽다. 파산 과정에서 금융시장이 큰 충격을 받을 수 있으며, 공공 서비스 축소로 인한 민심 이반과 사회 불안을 감수해야 한다. 현재 중국 정부는 **‘시간 벌기’와 ‘책임 떠넘기기’**라는 절충안에 가까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 중앙정부가 직접 구제에 나서기보다는, 부채가 비교적 덜 심각한 성(省) 정부가 재정난에 빠진 시(市) 정부를 지원하게 하는 ‘성급 책임제’를 강조하고 있다. 또한, LGFV 채권의 만기를 연장해주거나 저금리 대출로 갈아타게 해주는 방식으로 급한 불만 끄고 있다. 하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문제를 미래로 떠넘기는 ‘폭탄 돌리기’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지배적이다. 3. 결론 및 제언 중국의 지방 정부 부채 문제는 단순한 경제 문제를 넘어, 중앙집권적 정치 시스템과 지방분권적 경제 개발 사이의 구조적 모순이 빚어낸 필연적 산물이다. 이는 ‘부채 주도 성장’이라는 과거의 성공 방정식이 마침내 한계에 도달했음을 알리는 가장 강력한 경고등이다. 돌진하는 회색 코뿔소 앞에서 시진핑 지도부가 어떤 선택을 내리느냐에 따라 중국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과감한 수술로 체질 개선에 성공한다면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마련할 수 있겠지만, 수술의 고통을 감내하지 못하고 미봉책으로 시간을 끌다가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넘어선 장기 침체의 늪에 빠질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이 거대한 부채의 청구서는 언젠가 누군가는 반드시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중국 경제의 가장 약한 고리가 터져 나올 때, 그 충격파는 결코 중국 국경 안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다.
    • 기획특집
    • 중국이슈
    2025-08-24
  • 中, '드러눕는 청년' 탕핑족의 경고…미래를 거부하는 세대
    중국의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탕핑(躺平)'이라는 새로운 삶의 방식이 거대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탕핑'은 문자 그대로 '평평하게 눕는다'는 뜻이다. 이는 사회가 강요하는 끝없는 경쟁과 성공 신화에서 벗어나, 자발적으로 최소한의 삶을 선택하겠다는 젊은이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자, 중국의 미래에 대한 강력한 경고음이다. 중국 정부는 공식적인 청년 실업률 발표를 중단했지만, 비공식적인 통계와 시장의 체감은 사상 최악의 수준을 가리키고 있다. 매년 1천만 명이 넘는 대졸자가 쏟아져 나오지만, 빅테크 규제와 경기 둔화로 양질의 일자리는 급감했다. 극심한 경쟁(내권, 内卷)에 지친 청년들은 최소한의 노력으로 생계를 유지하려는 '탕핑(躺平, 드러눕기)'을 택하고 있으며, 이는 사회 전체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잠재적 사회 불안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1. '탕핑주의'의 등장: 우리는 왜 드러눕는가 '탕핑'이라는 단어가 중국 사회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2021년 4월, 중국의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 한 편에서 시작됐다. '탕핑이 바로 정의다(躺平即是正义)'라는 제목의 이 글에서 작성자는 2년 넘게 안정적인 직업 없이, 한 달에 200위안(약 3만 8천 원)으로 생활하는 자신의 경험담을 공유했다. 그는 하루 두 끼만 먹고, 돈이 들지 않는 낚시나 산책으로 소일하며, 돈이 떨어지면 엑스트라 아르바이트로 최소한의 생계비만 벌었다. 그는 "열심히 일해봤자 자본가의 노예가 되어 '996 근무'(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 6일 근무)에 시달리다 병만 얻을 뿐"이라며, "치솟는 집값과 물가를 감당하며 아등바등 살기보다는,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주장했다. 이 글은 순식간에 젊은 층의 폭발적인 공감을 얻으며 '탕핑주의'라는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번져나갔다. 탕핑족은 단순히 게으름이나 나태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개인의 적극적인 '비폭력·비협조 저항' 운동의 성격을 띤다.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자동차 구매, 심지어는 과도한 소비까지 포기하며, 사회가 제시하는 성공의 기준을 따르기를 거부한다. 이는 과거 일본의 '사토리 세대(さとり世代·득도 세대)', 한국의 'N포 세대'와도 맥을 같이 하지만, 중국의 탕핑족은 국가 주도의 성장 신화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는 점에서 더욱 폭발력이 크다. 2. 절망의 늪: 무엇이 청년들을 눕게 만들었나 그렇다면 무엇이 중국의 젊은이들을 '드러눕게' 만들었을까? 탕핑 현상의 배경에는 복합적인 사회·경제적 요인들이 자리하고 있다. 1) 살인적인 경쟁 문화, '네이쥐안(内卷)' 탕핑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 키워드는 '네이쥐안'이다. '안으로 말려 들어간다'는 뜻의 이 단어는, 성장은 정체된 상태에서 내부의 소모적인 경쟁만 극심해지는 현상을 의미한다. 중국의 젊은이들은 유치원 때부터 대입 시험 '가오카오(高考)'를 거쳐 취업 시장에 이르기까지, 인생의 모든 단계에서 무한 경쟁에 내몰린다. 특히 '996 근무'로 대표되는 비인간적인 노동 환경은 젊은이들의 심신을 지치게 만들었다. 알리바바의 마윈 전 회장이 "996은 젊은 시절의 축복"이라고 말해 논란이 됐듯, 일부 기성세대는 이러한 과도한 노동을 당연시했다. 하지만 청년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돌아오는 것은 번아웃과 건강 악화뿐"이라며, 이러한 '노력 강요 사회'에 환멸을 느끼게 된 것이다. 2)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집값과 생활비 개혁개방 이후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룬 중국이지만, 그 과실은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았다. 특히 베이징, 상하이 등 대도시의 집값은 평범한 월급쟁이가 수십 년을 꼬박 모아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치솟았다. 2021년 기준, 선전의 소득 대비 주택가격비율(PIR)은 43.5배에 달했다. 이는 43.5년 동안 한 푼도 쓰지 않고 월급을 모아야 겨우 집 한 채를 살 수 있다는 의미다. 결혼과 출산, 육아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 역시 청년들의 어깨를 짓누른다. 교육열이 높은 중국 사회에서 자녀 한 명을 키우는 데 드는 비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처럼 노력으로 넘을 수 없는 현실의 벽 앞에서 청년들은 희망을 품는 것 자체를 포기하고, 최소한의 비용으로 살아가는 '탕핑'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3) 좁아지는 취업문과 '중국몽'의 배신 시진핑 주석이 내세운 '중국몽(中国梦)'은 모든 인민이 행복한 삶을 누리는 부강한 중국을 약속했다. 그러나 청년들이 체감하는 현실은 '중국몽'과는 거리가 멀었다. 매년 1천만 명이 넘는 대졸자가 쏟아져 나오지만, 양질의 일자리는 한정되어 있어 취업난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2023년 6월, 중국의 청년 실업률(16~24세)은 21.3%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이후 중국 당국은 청년 실업률 발표를 돌연 중단하기까지 했다. 이는 실제 상황이 통계 수치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방증으로 해석된다. 여기에 더해 '꽌시(关系)'로 대표되는 배경과 인맥 중심의 채용 문화는 평범한 청년들에게 깊은 좌절감을 안겨준다. 국가가 제시한 빛나는 미래와 암울한 현실 사이의 괴리 속에서 청년들은 무력감을 느끼고 '탕핑'으로 침잠하고 있다. 4) 코로나19 팬데믹과 사회적 통제 강화 2020년부터 이어진 코로나19 팬데믹과 중국 정부의 강력한 '제로 코로나' 봉쇄 정책은 탕핑 현상을 더욱 가속화했다. 장기간의 도시 봉쇄는 경제에 큰 타격을 주었고, 이는 곧 기업의 채용 축소와 대규모 해고로 이어졌다. 또한, 개인의 삶에 대한 국가의 강력한 통제와 감시는 청년 세대에게 깊은 무력감과 회의감을 심어주었다. 불확실한 미래와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개인의 행복과 자유를 추구하려는 욕구가 '탕핑'이라는 소극적 저항의 형태로 분출된 것이다. 3. '탕핑'이 던지는 경고: 사회적 파장과 중국의 미래 단순한 개인의 라이프스타일 선택을 넘어, 탕핑 현상은 중국 사회 전반에 걸쳐 상당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1) 노동력 감소와 소비 위축 탕핑족의 확산은 중국 경제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심각한 위협이다. 국가의 미래를 짊어져야 할 청년들이 노동 시장 참여를 거부하고 최소한의 생존만 추구하게 되면, 장기적으로 노동 인구 감소와 생산성 저하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또한, 소비를 극단적으로 줄이는 탕핑족의 생활 방식은 내수 시장 활성화를 통해 성장을 꾀하려는 중국 정부의 정책 기조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중국 공산당이 "인구 감소보다 탕핑족의 확산이 더 무섭다"고 우려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 결혼율·출산율 급락과 인구 문제 심화 탕핑은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삶의 태도와 직결된다. 이는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로 고민하는 중국의 인구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이다. 중국 정부는 뒤늦게 '세 자녀 정책'을 도입하는 등 출산 장려에 나섰지만, 젊은이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데, 아이를 낳아 똑같은 고통을 물려줄 수 없다"는 것이 이들의 솔직한 심정이다. 탕핑족의 확산은 중국 사회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3) 체제에 대한 무언의 저항 중국 공산당은 '분투'와 '노력'을 통해 '중국몽'을 실현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를 끊임없이 주입해왔다. 그러나 탕핑은 이러한 국가 주도의 거대 서사에 동참하기를 거부하는, 가장 조용하면서도 가장 강력한 저항의 방식이다. "내가 누우면 자본이 나를 착취할 수 없다"는 탕핑족의 구호는, 현 체제에 대한 젊은 세대의 불신과 냉소를 명확히 보여준다. 중국 정부가 '탕핑' 관련 게시물을 검열하고, 관영 매체를 동원해 "탕핑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이러한 '조용한 반란'이 체제 안정에 미칠 위협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4. 출구는 있는가: '탕핑'을 넘어선 사회를 향하여 탕핑 현상은 중국 사회가 고도성장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구조적 모순에 직면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신호다. 과도한 경쟁, 심각한 불평등, 경직된 사회 구조 속에서 미래를 박탈당한 청년들의 절망이 '드러눕는' 행위로 표출된 것이다. 중국 정부는 탕핑을 개인의 나약함이나 비뚤어진 가치관의 문제로 치부하며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지만, 이는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탕핑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청년들이 다시 일어서서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살인적인 노동 환경을 개선하고,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며, 공정한 기회를 보장하는 사회 안전망을 확충하는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청년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좌절에 공감하며, 실질적인 희망의 사다리를 놓아주는 노력이 절실하다. '드러누운' 청년들의 외침은 비단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무한 경쟁과 불평등 심화라는 전 지구적 과제 앞에서 우리 사회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탕핑족의 등장은 우리에게도 무거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중국의 미래는 드러누운 청년들을 어떻게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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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8-24
  • 중국 '부동산 불패' 신화의 종언
    과거 중국 경제 성장의 30%를 견인했던 부동산 신화는 이제 끝없는 악몽이 되었다. 2021년 헝다(Evergrande) 사태로 시작된 위기는 비구이위안(Country Garden) 등 대형 개발업체들의 연쇄 부실로 이어지며 금융 시스템 전체를 위협하는 뇌관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완공 아파트(烂尾楼) 문제로 평생 모은 돈을 날린 수분양자들의 시위가 끊이지 않고 있으며, 부동산 시장의 장기 침체는 소비 심리 위축과 내수 부진의 핵심 원인이 되고 있다. 한때 14억 대륙의 부(富)를 견인하며 '불패 신화'로 불렸던 중국의 부동산 시장이 거대한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리고 있다. 2021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헝다(恒大) 그룹의 파산을 시작으로, 업계 1위였던 비구이위안(碧桂園)마저 채무 불이행 늪에 빠지면서 위기는 중국 경제 전체를 뒤흔드는 시스템 리스크로 번지고 있다. 화려한 마천루 아래, 완공됐지만 아무도 살지 않는 **'유령도시(鬼城)'**가 스산한 모습을 드러내고, 공사가 중단된 채 흉물로 방치된 **'란웨이러우(烂尾楼)'**에 갇힌 서민들의 분노는 마침내 **'주택담보대출 상환 거부'**라는 집단행동으로 폭발했다. 중국 부동산 위기의 세 가지 핵심 키워드, '유령도시', '부동산 그룹 도산', '서민들의 반발'을 통해 그 실태를 심층적으로 진단하고, 중국 사회가 마주한 거대한 도전을 조명한다. 제1부: 텅 빈 도시의 신기루, '유령도시(鬼城)' 중국 부동산 버블의 가장 기괴하고 상징적인 장면은 바로 '유령도시'다. 사람이 살지 않는 아파트 단지, 불 꺼진 사무용 빌딩, 텅 빈 쇼핑몰이 끝없이 펼쳐진 도시. 이는 중국식 개발 모델의 탐욕과 광기가 빚어낸 필연적인 결과물이었다. 원인 1: 지방정부의 'GDP 숭배'와 토지재정 모든 문제의 근원은 중국 지방정부의 왜곡된 재정 구조에 있다. 중국 지방정부 관리들의 인사고과에 가장 중요한 지표는 관할 지역의 GDP 성장률이었다. 단기간에 GDP 수치를 끌어올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대규모 건설 투자를 유치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지방정부들은 '토지재정(土地财政)'이라는 비정상적인 수입 모델에 의존했다. 농민들로부터 싼값에 수용한 토지를 기반 시설을 갖춘 개발용지로 바꿔 부동산 개발업체에 비싸게 팔아넘기는 방식이다. 이 토지 매각 수입은 지방정부 재정의 4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절대적이었다. 개발업체는 비싸게 산 땅값을 분양가에 전가했고, 이는 고스란히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이어졌다. 실제 수요와 무관하게 '일단 짓고 팔면 된다'는 생각으로 도시 외곽에 거대한 신도시들이 경쟁적으로 건설되었고, 이는 유령도시의 탄생을 예고했다. 원인 2: 투기 수요가 만들어낸 거품 중국 서민들에게 부동산은 가장 확실한 부의 축적 수단이었다. 불안정한 주식 시장과 엄격한 외환 통제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가계 자금이 부동산 시장으로 쏠렸다. '오늘 사는 게 가장 싸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사람들은 실제 거주 목적이 아닌, 시세 차익을 노린 투기적 목적으로 여러 채의 집을 사들였다. 개발업체는 이런 투기 심리를 이용해 미래 수요를 과장하며 계속해서 아파트를 지어 올렸다. 이렇게 공급된 수많은 아파트는 실제 거주자가 채우지 못한 채 빈집으로 남아 유령도시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가 되었다. <대표적 사례: 오르도스 캉바스 신구> '유령도시'의 대명사로 불리는 곳은 네이멍구 자치구의 오르도스 캉바스 신구다. 풍부한 석탄 자원을 바탕으로 100만 명 규모의 최첨단 도시를 꿈꿨지만, 무리한 개발과 자원 경기 하락이 겹치면서 도시는 유령처럼 변했다. 잘 닦인 8차선 도로 위에는 자동차보다 모래바람이 더 자주 보이고, 현대적인 건축물들은 주인을 찾지 못한 채 텅 비어 있다. 이는 수요를 무시한 공급 위주의 개발이 어떤 비극적 결과를 낳는지 똑똑히 보여주는 사례다. 제2부: '거인의 몰락', 부동산 그룹의 연쇄 도산 유령도시라는 거대한 버블을 만들어낸 주역인 부동산 개발업체들은 스스로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차례로 쓰러지고 있다. 그 시작은 헝다 그룹이었다. 1)'헝다 쇼크': 빚으로 쌓아 올린 제국의 붕괴 헝다 그룹은 '세 개의 허리띠'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공격적인 부채 경영으로 성장한 기업이다. 즉, 정부(토지), 은행(대출), 구매자(선분양 자금)라는 세 개의 허리띠에서 돈을 빌려 사업을 확장하는 방식이다. 헝다는 부동산으로 번 돈을 다시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을 넘어, 전기차, 프로 축구단, 생수, 금융업 등 관련 없는 분야까지 무차별적으로 확장했다. 이러한 폭주에 제동을 건 것은 중국 정부였다. 부동산 시장 과열이 금융 시스템 전체를 위협할 수 있다고 판단한 정부는 2020년, 개발업체의 부채를 강력하게 규제하는 '3대 레드라인(三道红线)' 정책을 발표했다. 이는 사실상 부채 의존도가 높은 기업들의 돈줄을 막아버리는 조치였다. 새로운 대출이 막히자 헝다는 순식간에 유동성 위기에 빠졌고, 결국 3,000억 달러(약 400조 원)가 넘는 빚을 감당하지 못하고 2021년 공식적인 채무 불이행을 선언했다. 2)도미노처럼 번지는 위기: 비구이위안의 디폴트 헝다의 붕괴는 시작에 불과했다. 한때 업계 1위이자 가장 안전하다고 평가받던 비구이위안마저 2023년 달러 채권 이자를 갚지 못하며 채무 불이행 위기에 빠졌다. 헝다가 대도시 중심의 무리한 사업 다각화로 무너졌다면, 비구이위안은 주로 3, 4선 중소도시를 중심으로 사업을 펼치다 부동산 경기 침체의 직격탄을 맞았다. 이는 부동산 위기가 일부 부실 기업의 문제가 아닌, 업계 전반에 퍼진 구조적 문제임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현재 수십 개의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들이 채무 불이행 상태에 빠져 있으며, 중국 부동산 시장은 신뢰를 완전히 상실한 상태다. 제3부: 서민들의 반발, '란웨이러우'와 '대출 상환 거부' 부동산 그룹의 도산은 그들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았다. 그 피해는 평생 모은 돈으로 내 집 마련의 꿈을 꾸었던 수많은 서민에게 고스란히 전가되었다. 1)꿈이 멈춘 곳: 란웨이러우(烂尾楼) '썩은 꼬리 건물'이라는 뜻의 **'란웨이러우'**는 개발업체의 자금난이나 부도로 공사가 중단된 건물을 말한다. 중국의 독특한 '선분양' 제도는 란웨이러우를 양산하는 주범이 되었다. 중국에서는 아파트 골조만 올라가도 분양 대금의 대부분을 미리 내야 한다. 개발업체들은 이 돈으로 건물을 완공하는 대신, 다른 사업에 투자하거나 빚을 갚는 데 유용했다. 그러다 자금줄이 막히자 공사는 기약 없이 중단되었고, 아파트는 앙상한 뼈대만 남은 채 도시의 흉물로 방치되었다. 수분양자들은 평생 모은 돈을 날리고, 입주도 못한 채 매달 수백만 원의 주택담보대출 이자를 갚아야 하는 절망적인 상황에 내몰렸다. 일부는 전기와 수도도 없는 란웨이러우에 직접 들어가 살며 처절한 저항을 하기도 했다. 2)최후의 저항: 주택담보대출 상환 거부 운동(停贷潮)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판단한 수분양자들은 마침내 최후의 수단을 선택했다. 2022년 여름, 장시성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시작된 **'주택담보대출 상환 거부 운동'**은 SNS를 통해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공사를 재개하지 않으면, 대출 상환도 재개하지 않겠다"는 이들의 집단행동은 순식간에 중국 전역 100여 개 도시, 300여 개 아파트 단지로 확산되었다. 이는 중국 공산당 정권에 심각한 경고였다. 개인의 저항을 용납하지 않는 사회에서 수십만 명이 참여하는 집단행동이 벌어졌다는 것 자체가 체제를 위협하는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운동이 금융 시스템 부실로 이어질 경우, 부동산 위기가 금융 위기로 전이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촉발할 수도 있었다. 중국 정부가 서둘러 란웨이러우 문제 해결을 위한 자금 지원에 나선 것도 이러한 사회적, 경제적 파장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제4부: 기로에 선 중국, 고통스러운 전환의 시작 중국의 부동산 위기는 단순한 경기 순환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지난 40년간 중국의 고속 성장을 이끌어 온 '부채 주도 성장 모델'이 한계에 부딪혔음을 알리는 명백한 신호다. 시진핑 정부 역시 "집은 거주하는 곳이지 투기 대상이 아니다(房住不炒)"라고 선언하며 과거와의 단절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그 전환의 과정은 매우 고통스러울 것이다. 부동산 시장의 경착륙을 막기 위해 정부가 각종 부양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이미 신뢰를 잃고 수요가 얼어붙은 시장을 되살리기엔 역부족이다. 수많은 유령도시와 란웨이러우, 그리고 부동산 개발업체들이 남긴 천문학적인 부채는 앞으로 수십 년간 중국 경제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될 것이다. 중국 부동산 위기는 더 이상 강 건너 불이 아니다. G2 경제의 심장부에서 발생한 균열은 세계 경제에 거대한 불확실성을 드리우고 있다. '만들면 팔린다'는 성공 방정식에 취해 있던 중국은 이제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텅 빈 도시의 신기루가 걷히고, 부채의 파티가 끝난 자리에서 중국이 어떤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설지, 전 세계가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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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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