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투하지 않겠다. 노력하지 않겠다. 그저 최소한의 생존만 유지하며 살아가겠다."
중국의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탕핑(躺平)'이라는 새로운 삶의 방식이 거대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탕핑'은 문자 그대로 '평평하게 눕는다'는 뜻이다. 이는 사회가 강요하는 끝없는 경쟁과 성공 신화에서 벗어나, 자발적으로 최소한의 삶을 선택하겠다는 젊은이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자, 중국의 미래에 대한 강력한 경고음이다.
중국 정부는 공식적인 청년 실업률 발표를 중단했지만, 비공식적인 통계와 시장의 체감은 사상 최악의 수준을 가리키고 있다. 매년 1천만 명이 넘는 대졸자가 쏟아져 나오지만, 빅테크 규제와 경기 둔화로 양질의 일자리는 급감했다. 극심한 경쟁(내권, 内卷)에 지친 청년들은 최소한의 노력으로 생계를 유지하려는 '탕핑(躺平, 드러눕기)'을 택하고 있으며, 이는 사회 전체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잠재적 사회 불안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1. '탕핑주의'의 등장: 우리는 왜 드러눕는가
'탕핑'이라는 단어가 중국 사회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2021년 4월, 중국의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 한 편에서 시작됐다. '탕핑이 바로 정의다(躺平即是正义)'라는 제목의 이 글에서 작성자는 2년 넘게 안정적인 직업 없이, 한 달에 200위안(약 3만 8천 원)으로 생활하는 자신의 경험담을 공유했다. 그는 하루 두 끼만 먹고, 돈이 들지 않는 낚시나 산책으로 소일하며, 돈이 떨어지면 엑스트라 아르바이트로 최소한의 생계비만 벌었다.
그는 "열심히 일해봤자 자본가의 노예가 되어 '996 근무'(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 6일 근무)에 시달리다 병만 얻을 뿐"이라며, "치솟는 집값과 물가를 감당하며 아등바등 살기보다는,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주장했다. 이 글은 순식간에 젊은 층의 폭발적인 공감을 얻으며 '탕핑주의'라는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번져나갔다.
탕핑족은 단순히 게으름이나 나태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개인의 적극적인 '비폭력·비협조 저항' 운동의 성격을 띤다.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자동차 구매, 심지어는 과도한 소비까지 포기하며, 사회가 제시하는 성공의 기준을 따르기를 거부한다. 이는 과거 일본의 '사토리 세대(さとり世代·득도 세대)', 한국의 'N포 세대'와도 맥을 같이 하지만, 중국의 탕핑족은 국가 주도의 성장 신화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는 점에서 더욱 폭발력이 크다.
2. 절망의 늪: 무엇이 청년들을 눕게 만들었나
그렇다면 무엇이 중국의 젊은이들을 '드러눕게' 만들었을까? 탕핑 현상의 배경에는 복합적인 사회·경제적 요인들이 자리하고 있다.
1) 살인적인 경쟁 문화, '네이쥐안(内卷)'
탕핑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 키워드는 '네이쥐안'이다. '안으로 말려 들어간다'는 뜻의 이 단어는, 성장은 정체된 상태에서 내부의 소모적인 경쟁만 극심해지는 현상을 의미한다. 중국의 젊은이들은 유치원 때부터 대입 시험 '가오카오(高考)'를 거쳐 취업 시장에 이르기까지, 인생의 모든 단계에서 무한 경쟁에 내몰린다.
특히 '996 근무'로 대표되는 비인간적인 노동 환경은 젊은이들의 심신을 지치게 만들었다. 알리바바의 마윈 전 회장이 "996은 젊은 시절의 축복"이라고 말해 논란이 됐듯, 일부 기성세대는 이러한 과도한 노동을 당연시했다. 하지만 청년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돌아오는 것은 번아웃과 건강 악화뿐"이라며, 이러한 '노력 강요 사회'에 환멸을 느끼게 된 것이다.
2)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집값과 생활비
개혁개방 이후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룬 중국이지만, 그 과실은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았다. 특히 베이징, 상하이 등 대도시의 집값은 평범한 월급쟁이가 수십 년을 꼬박 모아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치솟았다. 2021년 기준, 선전의 소득 대비 주택가격비율(PIR)은 43.5배에 달했다. 이는 43.5년 동안 한 푼도 쓰지 않고 월급을 모아야 겨우 집 한 채를 살 수 있다는 의미다.
결혼과 출산, 육아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 역시 청년들의 어깨를 짓누른다. 교육열이 높은 중국 사회에서 자녀 한 명을 키우는 데 드는 비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처럼 노력으로 넘을 수 없는 현실의 벽 앞에서 청년들은 희망을 품는 것 자체를 포기하고, 최소한의 비용으로 살아가는 '탕핑'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3) 좁아지는 취업문과 '중국몽'의 배신
시진핑 주석이 내세운 '중국몽(中国梦)'은 모든 인민이 행복한 삶을 누리는 부강한 중국을 약속했다. 그러나 청년들이 체감하는 현실은 '중국몽'과는 거리가 멀었다. 매년 1천만 명이 넘는 대졸자가 쏟아져 나오지만, 양질의 일자리는 한정되어 있어 취업난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2023년 6월, 중국의 청년 실업률(16~24세)은 21.3%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이후 중국 당국은 청년 실업률 발표를 돌연 중단하기까지 했다. 이는 실제 상황이 통계 수치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방증으로 해석된다. 여기에 더해 '꽌시(关系)'로 대표되는 배경과 인맥 중심의 채용 문화는 평범한 청년들에게 깊은 좌절감을 안겨준다. 국가가 제시한 빛나는 미래와 암울한 현실 사이의 괴리 속에서 청년들은 무력감을 느끼고 '탕핑'으로 침잠하고 있다.
4) 코로나19 팬데믹과 사회적 통제 강화
2020년부터 이어진 코로나19 팬데믹과 중국 정부의 강력한 '제로 코로나' 봉쇄 정책은 탕핑 현상을 더욱 가속화했다. 장기간의 도시 봉쇄는 경제에 큰 타격을 주었고, 이는 곧 기업의 채용 축소와 대규모 해고로 이어졌다. 또한, 개인의 삶에 대한 국가의 강력한 통제와 감시는 청년 세대에게 깊은 무력감과 회의감을 심어주었다. 불확실한 미래와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개인의 행복과 자유를 추구하려는 욕구가 '탕핑'이라는 소극적 저항의 형태로 분출된 것이다.
3. '탕핑'이 던지는 경고: 사회적 파장과 중국의 미래
단순한 개인의 라이프스타일 선택을 넘어, 탕핑 현상은 중국 사회 전반에 걸쳐 상당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1) 노동력 감소와 소비 위축
탕핑족의 확산은 중국 경제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심각한 위협이다. 국가의 미래를 짊어져야 할 청년들이 노동 시장 참여를 거부하고 최소한의 생존만 추구하게 되면, 장기적으로 노동 인구 감소와 생산성 저하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또한, 소비를 극단적으로 줄이는 탕핑족의 생활 방식은 내수 시장 활성화를 통해 성장을 꾀하려는 중국 정부의 정책 기조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중국 공산당이 "인구 감소보다 탕핑족의 확산이 더 무섭다"고 우려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 결혼율·출산율 급락과 인구 문제 심화
탕핑은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삶의 태도와 직결된다. 이는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로 고민하는 중국의 인구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이다. 중국 정부는 뒤늦게 '세 자녀 정책'을 도입하는 등 출산 장려에 나섰지만, 젊은이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데, 아이를 낳아 똑같은 고통을 물려줄 수 없다"는 것이 이들의 솔직한 심정이다. 탕핑족의 확산은 중국 사회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3) 체제에 대한 무언의 저항
중국 공산당은 '분투'와 '노력'을 통해 '중국몽'을 실현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를 끊임없이 주입해왔다. 그러나 탕핑은 이러한 국가 주도의 거대 서사에 동참하기를 거부하는, 가장 조용하면서도 가장 강력한 저항의 방식이다. "내가 누우면 자본이 나를 착취할 수 없다"는 탕핑족의 구호는, 현 체제에 대한 젊은 세대의 불신과 냉소를 명확히 보여준다. 중국 정부가 '탕핑' 관련 게시물을 검열하고, 관영 매체를 동원해 "탕핑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이러한 '조용한 반란'이 체제 안정에 미칠 위협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4. 출구는 있는가: '탕핑'을 넘어선 사회를 향하여
탕핑 현상은 중국 사회가 고도성장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구조적 모순에 직면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신호다. 과도한 경쟁, 심각한 불평등, 경직된 사회 구조 속에서 미래를 박탈당한 청년들의 절망이 '드러눕는' 행위로 표출된 것이다.
중국 정부는 탕핑을 개인의 나약함이나 비뚤어진 가치관의 문제로 치부하며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지만, 이는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탕핑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청년들이 다시 일어서서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살인적인 노동 환경을 개선하고,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며, 공정한 기회를 보장하는 사회 안전망을 확충하는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청년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좌절에 공감하며, 실질적인 희망의 사다리를 놓아주는 노력이 절실하다.
'드러누운' 청년들의 외침은 비단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무한 경쟁과 불평등 심화라는 전 지구적 과제 앞에서 우리 사회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탕핑족의 등장은 우리에게도 무거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중국의 미래는 드러누운 청년들을 어떻게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