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8-24(일)
 
  • 中 지방부채 1경 7000조
  • 부동산 신화 붕괴가 불러온 '부채 연쇄'
  • LGFV의 탄생부터 중앙정부의 딜레마




중국의 도시들을 방문하면 세계를 압도하는 인프라에 감탄하게 된다. 하늘을 찌르는 마천루, 대륙을 거미줄처럼 연결하는 고속철도, 최첨단 설비의 공항과 항만. 지난 30년간 중국이 이룩한 눈부신 성장의 상징이다. 그러나 이 화려한 경관은 거대한 신기루일지 모른다. 그 기반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바로 ‘부채’라는 이름의 모래성이기 때문이다.


2025년 8월 현재, 중국 경제를 위협하는 가장 큰 위험을 꼽으라면 단연 ‘지방 정부 부채’ 문제다. 비공식 통계까지 합하면 그 규모가 90조 위안(약 1경 7000조 원)을 넘어 중국 GDP의 70%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이미 예견된 위험이었으나 모두가 애써 외면해 온 **‘회색 코뿔소(Gray Rhino)’**다. 이제 부동산 시장의 붕괴라는 방아쇠가 당겨지면서, 육중한 몸을 일으킨 코뿔소가 중국 경제의 심장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부동산 시장의 침체는 지방 정부의 재정에 직격탄이 되었다. 과거 지방 정부는 토지사용권 매각 수입에 재정의 상당 부분을 의존해왔다. 이 수입원이 막히자, 사회기반시설 투자 등을 위해 무리하게 빌려 쓴 막대한 규모의 '숨겨진 부채(LGFV)'가 시한폭탄으로 떠올랐다. 부채 문제 해결을 위해 중앙정부에 손을 벌리고 있지만, 이는 결국 국가 전체의 재정 건전성을 뒤흔들 수 있는 '회색 코뿔소(예견 가능하지만 간과되는 위험)'로 지목되고 있다.

 

 

 

제1부: 괴물의 탄생 - LGFV와 '토지 재정(土地财政)'의 기원

 

 

 

중국의 지방 부채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LGFV(Local Government Financing Vehicle, 地方政府融资平台)’**라는 독특한 존재를 알아야 한다. LGFV는 지방 정부가 사회기반시설 투자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 즉 ‘숨겨진 주머니’다.

 

 

1. 중앙과 지방의 비대칭적 재정 구조


모든 문제의 뿌리는 1994년의 분세제(分税制) 개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중앙정부는 재정 통제력을 강화하기 위해 국세 수입의 비중을 대폭 늘렸다. 반면, 도로 건설, 학교 설립, 공공 서비스 등 돈 쓸 일은 대부분 지방 정부의 몫으로 남겨뒀다. 수입은 줄고 지출은 늘어나는 재정 구조의 모순이 발생한 것이다. 더욱이 예산법상 지방 정부가 직접 은행 대출을 받거나 채권을 발행하는 길은 엄격히 막혀 있었다.


 

2. '숨겨진 주머니' LGFV의 등장


궁지에 몰린 지방 정부는 법망을 우회할 기발한 방법을 찾아냈다. 바로 지방 정부 소유의 국유기업 형태인 LGFV를 설립하는 것이었다. LGFV는 명목상 독립된 기업이기에 은행 대출과 채권 발행이 자유로웠다. 지방 정부는 보유한 토지의 사용권을 LGFV에 담보로 제공했고, LGFV는 이를 바탕으로 금융시장에서 막대한 자금을 빌려 인프라 건설에 쏟아부었다.

 

 

3. '토지 재정'이라는 마약

 

이 기형적인 시스템을 가능하게 한 마법의 연료는 바로 **‘토지 재정(土地财政)’**이었다. 중국의 토지는 국가 소유이므로, 지방 정부는 토지사용권(보통 40~70년)을 부동산 개발업체에 팔아 막대한 수입을 올렸다. 부동산 시장이 활황일 때 이 모델은 완벽하게 작동했다.


1)지방 정부

: 토지 판매로 재정을 확충하고, 인프라 건설로 GDP 성장률(핵심 고과 지표)을 높여 관리들은 승승장구했다.


2)은행

: 정부가 뒤를 봐주는 LGFV에 안심하고 돈을 빌려주며 막대한 이자 수익을 올렸다.


3)개발업체

: LGFV가 닦아놓은 신도시의 땅을 사서 아파트를 지어 분양하며 천문학적인 돈을 벌었다.


이 ‘부채와 토지에 기반한 성장 모델’은 지난 20년간 중국의 압축 성장을 이끈 핵심 동력이었지만, 동시에 언젠가는 터질 수밖에 없는 폭탄을 키우는 과정이기도 했다.

 

 

 

제2부: 멈춰버린 성장 엔진 - 무엇이 위기를 촉발했나

 

 

영원할 것 같던 ‘부채의 축제’는 몇 가지 결정적인 사건을 계기로 종말을 맞이했다.

 

1. 방아쇠가 된 부동산 시장의 붕괴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부동산 시장의 경착륙이다. 과열된 부동산 시장의 부채 리스크를 우려한 중앙정부가 2020년 강력한 대출 규제인 '세 개의 레드라인(三道红线)' 정책을 도입했다. 이는 헝다, 비구이위안과 같은 거대 개발업체들의 연쇄 디폴트(채무불이행) 사태를 촉발하며 부동산 시장 전체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개발업체들이 도산하고 아파트가 팔리지 않자, 더 이상 지방 정부로부터 토지를 사들일 주체가 사라졌다. ‘토지 재정’이라는 핵심 돈줄이 막히면서, 지방 정부와 LGFV는 빌린 돈의 이자조차 갚기 어려운 유동성 위기에 직면했다.

 

 

2. 재정을 고갈시킨 '제로 코로나' 정책

 

엎친 데 덮친 격으로, 3년간 이어진 고강도의 '제로 코로나' 정책은 지방 정부의 재정을 완전히 고갈시켰다. 전 주민 PCR 검사, 대규모 격리 시설 건설, 봉쇄에 따른 경제 활동 중단 등 막대한 방역 비용을 모두 지방 정부가 떠안았다. 이는 가뜩이나 위태롭던 지방 재정에 결정타를 날렸다.

 

 

3. 수익성 없는 투자와 부채의 악순환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은 부채로 건설한 수많은 인프라가 수익을 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GDP 실적을 위해 경쟁적으로 지어진 유령 도시, 이용객이 거의 없는 공항과 고속철도는 유지비만 잡아먹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빚을 내서 지은 자산이 새로운 현금을 창출하지 못하니, 기존의 빚을 갚기 위해 더 큰 빚을 내야 하는 전형적인 ‘부채의 덫’에 빠진 것이다.

 

 

 

제3부: 위기의 현주소 - 버스 중단에서 월급 체불까지

 

부채 폭탄의 여파는 이제 중국 인민들의 일상생활을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1)공공 서비스의 마비

 

: 허난성의 일부 도시에서는 재정난으로 시내버스 운행이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윈난성, 구이저우성 등 부채가 심각한 지역에서는 공무원과 교사의 월급, 퇴직 연금이 몇 달씩 체불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2)금융 시스템으로의 전이

 

: LGFV가 발행한 채권(성투채, 城投债)은 주로 지방의 중소 은행들이 대거 보유하고 있다. 만약 LGFV의 디폴트가 연쇄적으로 발생할 경우, 부실 채권을 떠안은 지방 은행들의 건전성이 악화되며 국지적 금융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3)'반쪽짜리' 도시들

 

: 자금난으로 공사가 중단된 도로, 짓다 만 아파트와 상업 시설들이 중국 전역에 흉물처럼 방치되고 있다. 이는 도시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국민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제4부: 중앙정부의 딜레마 - '구제금융'이냐 '구조조정'이냐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자, 모든 시선은 베이징의 중앙정부로 쏠리고 있다. 시진핑 지도부는 이 회색 코뿔소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두고 깊은 딜레마에 빠져있다.

 

1. 옵션 1

: 전면적 구제금융(Bailout): 중앙정부가 직접 나서 지방의 부채를 갚아주는 방식이다.


1)장점: 대규모 디폴트를 막아 금융 시스템 붕괴와 사회 불안을 막을 수 있다.


2)단점: 지방 정부에 ‘빚을 아무리 져도 결국 중앙이 해결해준다’는 잘못된 신호(도덕적 해이)를 줄 수 있다. 또한 중앙정부의 재정 부담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킨다.

 

 

2. 옵션 2: 고통 분담과 구조조정(Restructuring): 일부 LGFV의 파산을 용인하고, 지방 정부 스스로 허리띠를 졸라매게 하는 방식이다.


1)장점: 시장 원리에 따라 부실을 정리하고, 지방 정부의 무분별한 부채 증가에 경종을 울릴 수 있다.


2)단점: 과정이 매우 고통스럽다. 파산 과정에서 금융시장이 큰 충격을 받을 수 있으며, 공공 서비스 축소로 인한 민심 이반과 사회 불안을 감수해야 한다.


현재 중국 정부는 **‘시간 벌기’와 ‘책임 떠넘기기’**라는 절충안에 가까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 중앙정부가 직접 구제에 나서기보다는, 부채가 비교적 덜 심각한 성(省) 정부가 재정난에 빠진 시(市) 정부를 지원하게 하는 ‘성급 책임제’를 강조하고 있다. 또한, LGFV 채권의 만기를 연장해주거나 저금리 대출로 갈아타게 해주는 방식으로 급한 불만 끄고 있다. 하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문제를 미래로 떠넘기는 ‘폭탄 돌리기’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지배적이다.

 

 

3. 결론 및 제언

 

중국의 지방 정부 부채 문제는 단순한 경제 문제를 넘어, 중앙집권적 정치 시스템과 지방분권적 경제 개발 사이의 구조적 모순이 빚어낸 필연적 산물이다. 이는 ‘부채 주도 성장’이라는 과거의 성공 방정식이 마침내 한계에 도달했음을 알리는 가장 강력한 경고등이다.


돌진하는 회색 코뿔소 앞에서 시진핑 지도부가 어떤 선택을 내리느냐에 따라 중국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과감한 수술로 체질 개선에 성공한다면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마련할 수 있겠지만, 수술의 고통을 감내하지 못하고 미봉책으로 시간을 끌다가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넘어선 장기 침체의 늪에 빠질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이 거대한 부채의 청구서는 언젠가 누군가는 반드시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중국 경제의 가장 약한 고리가 터져 나올 때, 그 충격파는 결코 중국 국경 안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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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코뿔소의 돌진. 중국 지방정부 '부채 폭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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