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8-24(일)
 
  • 북한의 '사실상 핵보유' 시대
  • '전략적 완충지대'를 포기할 수 없는 중국과 '핵 위협 제거'가 절실한 한국
  • 2025년 현재, 양국의 대북정책은 왜 평행선을 달리는가.

 

 

 

2025년 8월, 북한이 동해상으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했다. 서울과 워싱턴은 즉각 이를 ‘유엔 안보리 결의에 대한 명백한 위반’으로 규정하고 강력 규탄하며 추가 제재를 예고했다. 며칠 뒤 열린 유엔 안보리 회의, 미국과 일본은 강력한 대북 제재 결의안 초안을 내밀었지만, 중국은 어김없이 ‘모든 당사자의 자제와 대화를 통한 해결’을 촉구하며 사실상 거부권을 행사했다.


지난 30년간 북한의 핵 개발 역사에서 수없이 반복되어 온 이 데자뷔(déjà vu) 같은 풍경이야말로, 한반도 문제를 둘러싼 한국과 중국의 근본적인 시각차, 즉 **'동상이몽(同床異夢)'**의 실체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그리고 비핵화’라는 공식적인 목표는 공유하지만, 그 목표에 도달하는 방법론과 우선순위에서 양국은 결코 만날 수 없는 강을 사이에 두고 있다.


‘오늘일보’는 북한의 핵 능력이 고도화를 넘어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굳어진 2025년 현재, 한중 양국의 대북 정책이 왜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는지 그 구조적 원인을 심층 분석했다. 이것은 단순한 외교적 이견에 대한 보고서가 아니라, 우리의 생존이 걸린 문제에 대한 냉정한 현실 진단이다.


 

 

제1부: 목표의 불일치 - '비핵화'가 먼저인가, '안정'이 먼저인가?

 

 

모든 이견의 출발점은 양국이 추구하는 최종 목표의 우선순위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에서 시작한다.


1. 한국(과 미국)의 최우선 목표: ‘선(先) 비핵화’

 

서울과 워싱턴에게 북한 문제는 곧 **‘핵 문제’**다. 북한의 핵무기는 대한민국의 생존을 위협하는 실존적 위협이며, 동북아와 국제 비확산 체제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 따라서 양국의 모든 대북 정책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라는 단 하나의 목표에 수렴한다. 이 과정에서 북한 정권의 불안정성이 일부 초래되더라도, 핵 위협 제거라는 대의가 우선시될 수밖에 없다. ‘안정적이지만 핵을 가진 북한’은 최악의 시나리오다.

 

 

2.중국의 최우선 목표: ‘선(先) 안정’

 

베이징의 계산법은 전혀 다르다. 중국에게 북한 문제는 ‘핵 문제’ 이전에 **‘지정학적 안보 문제’**다. 중국의 대북 정책 제1원칙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북한 정권의 급작스러운 붕괴를 막고, 한반도의 현상 유지를 통해 ‘안정’을 관리하는 것이다. 비핵화는 물론 달성하면 좋은 ‘부차적 목표’이지만, ‘안정’이라는 대전제를 위협하면서까지 추구할 목표는 결코 아니다. ‘불편하지만 안정적인 핵보유국 북한’은, ‘급변 사태로 붕괴된 북한과 그로 인해 미군과 국경을 맞대는 최악의 상황’보다 훨씬 선호되는 시나리오다.


이처럼 ‘비핵화’와 ‘안정’이라는 결코 양립하기 어려운 목표의 우선순위 차이가, 모든 대북 정책에서 양국이 사사건건 충돌하는 근본 원인이다.

 

 

 

제2부: 순망치한(唇亡齿寒) - 중국의 대북정책을 지배하는 1000년의 관성

 

 

중국이 왜 이토록 북한의 ‘안정’에 집착하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순망치한(脣亡齒寒)’, 즉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고사를 알아야 한다. 중국에게 북한은 자국의 핵심 이익을 보호하는 ‘입술’과 같은 **‘전략적 완충지대(Strategic Buffer Zone)’**다.

 

 

1)역사적 트라우마와 지정학적 숙명

 

: 중국은 역사적으로 한반도를 통해 외세의 침략을 받아온 경험이 있다. 특히 70여 년 전 한국전쟁에서 수십만 명의 인민해방군을 희생시키며 북한 정권을 지켜낸 것은, 한반도에 친미(親美) 통일 국가가 들어서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주한미군과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직접 국경을 맞대는 상황은 중국이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안보 시나리오다.

 

 

2)급변 사태의 공포

 

: 북한 정권이 붕괴할 경우, 중국은 두 가지 악몽과 마주하게 된다. 첫째는 수백만 명에 달하는 북한 난민이 국경을 넘어 동북 3성으로 밀려 들어오는 대혼란이다. 둘째는 북한 내 핵무기와 핵물질이 통제 불능 상태에 빠져 외부로 유출될 수 있는 위험이다. 중국은 이러한 혼란을 감수하느니, 차라리 김정은 정권이 현상 유지를 하는 편이 훨씬 비용이 적게 든다고 판단한다.


이러한 ‘순망치한’의 전략적 관성은 중국 대북 정책의 유전자(DNA)와도 같아서, 북한이 아무리 말썽을 피우고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아도 중국이 결코 북한을 포기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된다.

 

 

 

제3부: 제재와 뒷문 - 반복되는 ‘중국 역할론’의 허와 실

 

 

북한이 핵실험이나 ICBM 발사와 같은 대형 도발을 감행할 때마다, 국제사회는 중국을 향해 ‘역할을 하라’고 촉구한다. 북한의 생명줄(원유, 식량)을 쥐고 있는 중국이 마음만 먹으면 북한을 굴복시킬 수 있다는 ‘중국 역할론’이다.


그러나 지난 30년의 역사는 이 기대가 얼마나 허상에 가까운지를 보여준다. 중국의 대북 제재 패턴은 늘 일정했다.


1)동참

: 국제사회의 압박에 못 이겨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진다. (역할을 하는 듯한 모습)


2)이완

: 그러나 제재가 북한 정권의 안정 자체를 위협할 수준에 이르면, 비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원유와 식량을 공급하는 등 ‘뒷문’을 열어준다. (숨통을 틔워줌)


3)명분

: ‘제재의 목적은 처벌이 아니라 대화 복귀’이며, ‘북한의 인도주의적 위기는 막아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운다.


이는 중국이 북한을 통제할 ‘의지’도 부족하지만, 때로는 ‘능력’에도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북한은 중국의 압박이 거세지면 러시아에 밀착하는 등, 강대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자율성을 확보해 온 오랜 경험이 있다. ‘중국 역할론’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번번이 실망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제4부: 2025년의 신(新) 변수들 - 미중 경쟁과 북·러 밀착

 

 

설상가상으로, 2020년대 들어 격화된 국제 정세는 한중의 ‘동상이몽’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1)신냉전 구도 속 북한의 전략적 가치 상승

 

: 미중 전략 경쟁이 격화되면서,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한 양국의 협력 공간은 사실상 사라졌다. 오히려 중국에게 북한은 미국의 신경을 긁고 한미일 동맹을 이완시키는 데 유용한 ‘전략적 자산’으로서의 가치가 더욱 커졌다. 중국은 이제 북한 비핵화 문제 해결을 돕는 ‘책임 있는 강대국’이 아니라, 미중 경쟁이라는 더 큰 체스판에서 북한을 ‘말(駒)’로 활용하는 ‘플레이어’가 되었다.


2)북·러 밀착이라는 새로운 변수

 

: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본격화된 북한과 러시아의 밀착은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북한은 중국 외에 러시아라는 또 다른 ‘뒷배’를 확보함으로써 대중(對中) 의존도를 낮추고 외교적 자율성을 높였다. 이는 북한의 생명줄을 쥐고 있다던 중국의 대북 레버리지를 상당 부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3)한미일 안보 협력 강화의 역설

 

: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한미일 3각 안보 협력의 강화는, 중국에게는 자신을 겨냥한 ‘아시아판 나토(NATO)’의 등장으로 인식된다. 이러한 안보 딜레마는 중국으로 하여금 북한이라는 ‘완충지대’의 필요성을 더욱 절감하게 만드는 역설적인 효과를 낳고 있다.

 

 

 

제5부. 결론

 

 

한반도 비핵화를 향한 한중의 ‘동상이몽’은 단순한 오해나 외교적 기싸움의 결과가 아니다. 이는 ‘생존(한국)’과 ‘패권(중국)’이라는 양국의 결코 타협할 수 없는 국가 핵심 이익이 정면으로 충돌한 결과물이다.


북한이 사실상의 핵보유국이 된 2025년 현재, 중국이 자국의 전략적 이익을 희생하면서까지 우리의 비핵화 목표에 동참해 줄 것이라는 기대는 환상에 가깝다. ‘중국을 설득하여 북한을 변화시킨다’는 지난 30년간의 접근법은 이제 그 유효기간이 끝났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중국의 협조’라는 변수가 아닌, ‘중국의 계산’이라는 상수 위에서 새로운 대북 전략을 짜야 하는 냉엄한 현실과 마주하고 있다. 같은 침대에서 다른 꿈을 꾸는 이웃과 함께, 어떻게 우리의 생존과 평화를 지켜나갈 것인가.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던져진 가장 무거운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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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비핵화를 향한 동상이몽..한중의 엇갈린 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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