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8-24(일)
 
  • 사드, 코로나19, 문화 공방을 거치며 역대 최악으로 치달은 상호 비호감도. 단순한 ‘미움’을 넘어 ‘전략적 불신’으로 굳어진 감정의 골
  • ‘짱깨(蔑称)’와 ‘빵즈(棒子)’




외교 관계에서 ‘국민 감정’은 종종 수면 아래에 머문다. 정상 간의 악수, 수십억 달러의 무역액, 화려한 문화 교류라는 거대한 빙산의 아래에 가려져 그 중요성을 간과하기 쉽다. 그러나 2025년 현재, 한중 관계라는 거대한 배는 바로 이 ‘국민 감정’이라는 보이지 않는 암초에 부딪혀 좌초될 위기에 처해있다.


최근 몇 년간 발표된 각종 여론조사는 충격적인 현실을 일관되게 가리킨다. 한국인의 중국에 대한 비호감도는 80%를 상회하며, 이는 전통적인 라이벌인 일본을 넘어선 지 오래다. 중국 역시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급격히 확산되고 있다. 한때 ‘한류’에 열광하고 ‘꽌시(關係)’를 외치며 서로를 가장 중요한 파트너라 여겼던 양국 국민은 이제 온라인 공간에서 서로를 향해 ‘짱깨(蔑称)’와 ‘빵즈(棒子)’라는 멸칭을 서슴없이 던지는 사이가 되었다.


정치·경제적 갈등은 시간이 지나면 봉합될 수 있지만, 한번 깊어진 감정의 골은 쉽게 메워지지 않는다. 양국 관계의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 세대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이 깊은 불신과 적대감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으며, 왜 점점 더 악화되고 있는가. 한중 관계의 가장 연약하고 아픈 속살인 ‘국민 감정’의 실체를 해부하고, 양국이 건너고 있는 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의 의미를 진단한다.


 

 

제1부: 한국의 ‘반중(反中)’ - 분노는 어디에서 오는가

 

 

 

한국 사회의 반중 정서는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이 아니다. 과거 고구려사 왜곡(동북공정) 등 역사 문제에서 비롯된 불씨가 잠재되어 있었지만, 이것이 전 세대에 걸친 거대한 분노로 폭발하게 된 데에는 몇 가지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1. 사드 사태: ‘경제 파트너’의 배신과 ‘굴욕’의 기억

 

 

모든 전문가들은 2017년 사드 사태를 한국 내 반중 감정의 ‘결정적 분기점’으로 꼽는다. 이전까지 중국은 ‘기회의 땅’이자 ‘함께 성장하는 파트너’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사드 배치를 빌미로 가해진 전방위적 경제 보복(한한령)은 이러한 인식을 산산조각 냈다.


1)힘의 논리에 대한 각성

 

: 중국은 한국의 안보 주권을 존중하기는커녕, 자국의 이익을 위해 언제든 경제를 ‘무기화’할 수 있는 위협적인 존재임을 스스로 증명했다. 이는 한국 사회에 ‘중국은 믿을 수 없는 나라’라는 깊은 불신을 심었다.


2)국가적 자존심의 상처

 

: 롯데에 대한 표적 보복, 한국행 단체관광 금지 등 노골적인 방식의 압박은 단순한 경제적 피해를 넘어 국민적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대국’이라던 중국의 ‘소인배’ 같은 행태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광범위하게 확산됐다. 사드 사태는 많은 한국인에게 ‘중국몽(中國夢)’의 실체가 패권주의에 불과하다는 인식을 심어준 트라우마로 남았다.

 

 

 

2. 일상을 파고든 위협: 미세먼지와 코로나19

 

 

사드 사태가 ‘국가 대 국가’의 문제였다면, 미세먼지와 코로나19는 국민 개개인의 삶과 건강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며 반중 감정을 일상화, 체감화시켰다.

 

 

1)뿌연 하늘, 답답한 마음 (미세먼지)

 

: 매년 봄철이면 한반도를 뒤덮는 최악의 미세먼지. 상당 부분이 중국에서 발원했다는 과학적 증거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부는 책임을 부인하거나 ‘서울의 미세먼지는 서울에서 배출된 것’이라는 식의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했다. 이는 한국인들에게 숨 쉴 권리마저 침해당하고 있다는 무력감과 분노를 안겨주었다.

 

 

2)팬데믹의 공포와 책임론 (코로나19)


: 2020년 초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은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바이러스의 기원, 초기 대응 과정에서의 정보 통제 및 은폐 의혹은 중국에 대한 국제적 불신을 키웠고, 이는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감염병이라는 실존적 위협 앞에서 중국의 폐쇄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체제에 대한 반감이 극대화되었다.

 

 

 

3. 정체성을 향한 공격: 문화·역사 공정

 

 

최근 몇 년간 격화된 김치, 한복, 갓 등 한국 고유문화에 대한 ‘원조’ 주장은 불타는 반중 감정에 기름을 부었다. 이는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한국의 역사와 문화적 정체성 자체를 부정하고 중국의 아류로 폄하하려는 ‘문화 동북공정’이라는 인식을 낳았다.


특히 K-팝, K-드라마 등 한류의 세계적 성공에 자부심을 느끼는 젊은 MZ세대에게 이러한 ‘문화 약탈’ 시도는 용납할 수 없는 도발로 받아들여졌다. 이들은 온라인 공간에서 적극적으로 중국의 주장을 반박하고 국제 여론에 호소하며 ‘사이버 외교관’을 자처했다. 이는 기성세대와는 다른 방식으로, ‘공정’과 ‘정의’의 가치를 침해하는 것에 대한 강력한 저항이었다.


이처럼, 한국의 반중 정서는 **안보(사드) → 일상(미세먼지/코로나19) → 정체성(문화 공정)**의 순서로 전방위적으로 심화, 확산되어 왔다. 이는 더 이상 일부 보수층의 이념적 반공주의가 아닌, 세대와 이념을 초월한 보편적인 국민 정서로 자리 잡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제2부: 중국의 ‘혐한(嫌韓)’ - 그들은 왜 한국을 적대하는가

 

 

 

반면, 중국 내에서 확산되는 혐한 감정의 기저에는 한국의 반중 정서와는 또 다른 복합적인 심리가 깔려있다.

 

 

1. 사드, ‘믿었던 동생’의 배신감

 

 

중국인들에게 사드 배치는 ‘안보 위협’ 이전에 ‘배신감’으로 먼저 다가왔다. 특히 박근혜 정부가 중국의 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하는 등 친중 행보를 보였기에, 그 직후 이어진 사드 배치 결정은 ‘뒤통수를 맞았다’는 인식으로 이어졌다.


미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바로 옆집의 ‘동생’이라 여겼던 한국이 자신의 심장에 칼(레이더)을 꽂는 미국의 편에 섰다는 인식이 팽배해졌다. 중국 관영매체들은 이러한 여론에 불을 지폈고, 일반 대중에게 한국은 ‘미국의 앞잡이’, ‘주권 없는 나라’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각인되었다.

 

 

 

2. 문화적 우월감과 ‘한류’에 대한 복잡한 감정

 

 

역사적으로 중국은 한국을 중화 문화권의 일부이자 문화적 영향력 아래 있는 나라로 여겨왔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K-팝과 K-드라마로 대표되는 ‘한류’가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를 휩쓰는 현상은 이러한 전통적인 위계질서에 균열을 냈다.

 

 

1)시기와 질투

 

: 한때 자신들의 ‘학생’이었던 한국이 세계적인 ‘문화 강국’으로 부상한 현실에 대한 일부 중국인들의 시기와 질투심이 혐한 감정의 밑바탕에 깔려있다. 이는 ‘한국 문화는 뿌리가 없다’, ‘전부 중국 것을 베껴간 것’이라는 식의 폄하와 ‘원조’ 주장으로 이어진다.


2)문화적 자신감의 발로

 

: 시진핑 시대에 강조되는 ‘문화 자신감’과 애국주의는, 한류의 성공을 자극제로 삼아 ‘중화 문화의 위대함’을 다시금 과시하려는 욕구로 나타났다. 한국 문화를 중국 문화의 하위 범주로 편입시키려는 시도는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3. ‘샤오펀훙(小粉红)’으로 대표되는 온라인 민족주의

 

 

중국의 혐한 여론을 주도하는 것은 강력한 애국주의와 중화사상으로 무장한 젊은 세대, 이른바 ‘샤오펀훙(소분홍)’이다. 이들은 중국의 성장을 보고 자라 국가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높으며, 온라인 공간에서 국가의 명예를 훼손하는 어떠한 행위도 용납하지 않는 ‘사이버 전사’ 역할을 한다.


이들에게 한국은 ▲미국에 빌붙어 중국을 위협하고, ▲자국의 문화를 훔쳐 제 것인 양 행세하며, ▲스포츠 경기 등에서 비신사적인 행동을 일삼는 ‘괘씸한 나라’로 인식된다. 한국 연예인이 SNS에서 ‘하나의 중국’ 원칙에 반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기만 해도 좌표를 찍고 몰려가 악플 테러를 가하는 것이 이들의 행동 패턴이다. 이러한 극단적인 온라인 민족주의는 양국 젊은 세대 간의 감정의 골을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만들고 있다.

 

 

 

제3부: 결론 -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는가?

 

 

 

한중 양국의 국민 감정 악화는 단순한 오해나 일시적인 갈등이 아니다. 이는 미중 패권 경쟁이라는 거대한 지정학적 변화, 각국의 국내 정치적 필요성, 그리고 온라인 플랫폼이 만들어낸 증오의 확산 구조가 맞물려 만들어진 구조적인 문제다.


과거에는 ‘정경분리(政經分離)’ 원칙에 따라 정치적 갈등이 있더라도 경제·문화 교류는 이어진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사드 사태를 거치며 이러한 믿음은 깨졌다. 이제는 정치·안보 갈등이 곧바로 경제와 문화, 그리고 국민 감정에 직격탄을 날리는 ‘정경일치(政經一致)’의 시대가 되었다.


더욱 암울한 것은, 이러한 감정의 골이 미래 세대로 갈수록 더욱 깊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교류의 경험이 없는 양국의 젊은 세대는 온라인이라는 왜곡된 창을 통해 서로를 배우고 혐오를 학습한다. 이들이 양국 관계의 주역이 될 10~20년 뒤의 미래를 낙관하기 어려운 이유다.


그렇다면 해법은 없는가? 정부 차원의 외교적 노력만으로는 얼어붙은 국민의 마음을 녹일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갈등을 부추기는 자극적인 언어를 경계하는 미디어의 자성,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을 가르치는 교육, 그리고 왜곡된 정보의 확산을 막고 건전한 공론을 만들어 나갈 시민사회의 노력이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그 어떤 노력도 거대한 증오의 흐름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한중 양국은 지금, 서로를 향한 불신과 적대감이라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뒤, 각자의 강둑에 서서 멀어지는 상대를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강을 다시 건널 교량을 놓는 것, 그것이 우리 세대에게 주어진 가장 어렵고도 절박한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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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한(嫌韓)과 반중(反中) 루비콘 강을 건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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