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8-26(화)
 
  • '가치 외교'의 이상과 '국익 외교'의 현실 사이, 우리의 좌표는 어디인가

 

 

[오늘일보=김준연 발행인]2025년 여름, 미중의 전략적 경쟁은 더 이상 변수가 아닌, 국제 질서를 규정하는 '상수'가 되었다. 반도체와 AI를 둘러싼 기술 전쟁은 한층 더 노골화되었고, 대만 해협의 군사적 긴장감은 동북아 안보 전체를 흔드는 뇌관이 되었다. 이러한 거대한 파고 속에서, 한반도라는 배의 항해사인 대한민국 외교는 '전략적 자율성'이라는 낯설지만 더는 피할 수 없는 질문에 답해야 할 시간에 직면했다.

 

현 정부는 출범 이후 한미 동맹의 복원과 한미일 3각 협력 강화를 외교의 핵심 기조로 삼아왔다.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의 연대를 통해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고 국제 사회에서의 위상을 높인다는 명분은 분명 설득력이 있었다. 그 결과, 한미 연합훈련은 정상화되었고 대미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공고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어지는 법이다. 가치에 기반한 선명한 노선은 필연적으로 반대편에 있는 국가, 특히 우리의 최대 교역 파트너인 중국과의 관계에 경직성을 가져왔다. 사드(THAAD) 사태 이후 조심스럽게 관리되던 한중 관계는 다시금 얼어붙었고, 첨단 기술에서부터 핵심 원자재에 이르기까지 중국에 깊숙이 얽혀있는 우리 경제의 공급망 리스크는 오히려 커졌다.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과거의 공식이 더는 유효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뿐, 새로운 생존 공식은 찾지 못한 채 표류하는 형국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전략적 자율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이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기계적 중립을 지키거나 양쪽을 오가는 '줄타기 외교'를 하자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굳건한 한미 동맹을 외교의 기본 축으로 삼되, 사안별로 우리의 국익을 최우선 기준으로 삼아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바로 전략적 자율성의 핵심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에 동참하더라도, 국내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예외 조치를 관철하기 위해 더 집요하게 미국을 설득하고 협상하는 것이 자율성이다. 중국이 특정 현안에 대해 우리의 입장을 문제 삼을 때, '동맹의 결정' 뒤에 숨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국익'에 기반한 결정임을 명확한 논리로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것이 자율성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국익이 무엇인가'에 대한 명확한 사회적 합의를 가져야 한다. 단기적 경제 이익인가, 장기적인 안보 가치인가, 혹은 기술 주권의 확보인가. 이 기준이 명확히 서야만, 외교는 외부의 압력에 흔들리지 않고 일관된 원칙을 가질 수 있다.

 

격랑의 시대에 남의 지도를 들고 항해할 수는 없다. '가치 외교'라는 이상을 추구하더라도, 그 발은 '국익'이라는 현실의 땅을 굳건히 딛고 있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대한민국 외교가 우리만의 지도와 나침반을 재정비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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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화되는 미중 경쟁, 한국 외교의 '전략적 자율성'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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