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8-26(화)
 

 

 

미중 패권 경쟁이 격화되면서, 세계는 또 다른 거대한 축의 등장을 목격하고 있다. 바로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개발도상국 및 신흥국가를 포괄하는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다. 중국은 스스로를 '글로벌 사우스의 당연한 일원'이라 칭하며, 이들을 향한 전방위적인 외교 공세를 펴고 있다. 이는 단순한 우호 관계 증진이나 경제적 실리 추구를 넘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구축해 온 자유주의 국제 질서에 맞서는 자신들만의 '세(勢)'를 규합하려는 장기적인 전략이다. 바야흐로 중국은 글로벌 사우스를 지렛대 삼아, 미국 중심의 세계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도전을 시작했다.

 

 

인프라와 자본: 글로벌 사우스의 마음을 얻는 법

중국의 글로벌 사우스 전략의 핵심 무기는 단연 압도적인 '경제적 당근'이다. 서방 국가들이 민주주의, 인권 등 가치를 앞세운 조건부 지원을 제시하는 동안, 중국은 '내정 불간섭' 원칙을 내세우며 대규모 인프라 건설과 차관이라는 실질적인 선물을 안겨주었다.

 

일대일로(一带一路) 이니셔티브: 2013년 시작된 이 거대 프로젝트는 중국의 글로벌 사우스 외교의 상징이다. 2025년 현재, 150여 개 국가가 참여하며 전 세계 인구의 75%, GDP의 절반 이상을 아우르는 네트워크로 성장했다. 중국은 항만, 철도, 발전소 등 개발도상국에 가장 절실한 기반 시설 건설에 1조 달러 이상의 자금을 투입하며 물리적, 경제적 영향력을 폭발적으로 확장했다. 비록 최근에는 '부채 함정'이라는 비판 속에서 대규모 프로젝트보다 '작고 아름다운(小而美)' 실용적 사업으로 전환하는 추세지만, 그 영향력은 여전하다.

 

압도적인 무역 파트너: 중국은 이미 120개국 이상의 최대 무역 파트너이며, 이들 대부분은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다. 2000년대 초반 1,000억 달러 수준이었던 중국-아프리카 간 교역액은 2024년 3,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중국-라틴아메리카 교역액 역시 2022년 5,000억 달러에 육박하며 20년 만에 35배 이상 급증했다. 이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경제적 상호의존은 자연스럽게 정치적 영향력으로 전환된다.

 

 

서방에 맞서는 '대안 질서'의 구축


 

중국의 목표는 단순한 경제적 영향력 확보에 그치지 않는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 중심의 기존 국제기구에 대항하는 '대안적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국제 무대에서 자신들의 입장을 지지하는 '우군'을 확보하는 것이 더 큰 그림이다.

 

브릭스(BRICS)의 확장: 2024년 사우디아라비아, UAE, 이란, 이집트, 에티오피아의 가입에 이어, 2025년 인도네시아까지 합류하며 브릭스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사우스의 대표 협력체로 자리매김했다. 확장된 브릭스는 전 세계 인구의 약 45%, GDP의 36% 이상을 차지하며 G7에 필적하는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 이는 서방의 제재와 압박에 공동으로 대응하고, 달러 대신 자국 통화 결제를 확대하는 등 미국 중심 질서에서 벗어나려는 구체적인 움직임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

 

UN에서의 외교적 지원: 중국의 영향력은 UN 총회 표결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신장 위구르 인권 문제, 홍콩 국가보안법 등 서방이 중국의 핵심 이익을 비판하는 사안이 상정될 때마다, 다수의 아프리카, 아시아 국가들은 중국의 입장을 지지하거나 기권하며 방패막이 역할을 해주고 있다. 이는 중국의 경제적 지원이 어떻게 외교적 자산으로 전환되는지를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다.

 

중국은 글로벌 사우스를 향해 "서구식 민주주의 모델만이 유일한 발전 경로가 아니다"라며, 국가 주도의 권위주의적 발전 모델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정치적 안정을 우선시하며 단기간에 압축 성장을 이룬 중국의 경험은, 정세가 불안한 많은 개발도상국 지도자들에게 매력적인 서사로 다가간다.

 

 

'부채 함정'과 흔들리는 리더십

 

 

그러나 중국의 장밋빛 청사진에도 균열은 존재한다. '부채 함정 외교'라는 비판은 가장 큰 아킬레스건이다. 스리랑카가 중국에 진 빚을 갚지 못해 함반토타 항구의 운영권을 99년간 넘겨준 사례는, 중국식 지원의 대가를 상징하는 사건이 되었다. 잠비아 등 여러 아프리카 국가들도 채무 재조정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중국의 일방적인 사업 추진 방식과 환경 파괴, 현지인 고용 부족 문제 등은 곳곳에서 반중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글로벌 사우스 내부에서도 인도를 중심으로 중국의 패권적 행보를 견제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는 등, 중국이 이들을 하나의 목소리로 묶어내는 데에는 명백한 한계가 존재한다.

 

결론적으로, 중국의 글로벌 사우스 외교는 미국 중심의 단극 질서에 대한 가장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도전이다. 이는 과거 냉전 시대의 이념 대결이 아닌, 인프라, 자본, 발전 모델을 앞세운 실용적 접근이라는 점에서 더욱 강력한 파급력을 가진다. 비록 여러 도전에 직면해 있지만, 중국은 서방 중심의 세계 질서에 불편함을 느끼는 수많은 국가에 '또 다른 선택지'를 제공하며 착실히 세를 넓히고 있다. 세계는 점차 미국과 그 동맹들이 주도하는 질서와, 중국이 글로벌 사우스를 통해 영향력을 확대하는 또 다른 질서가 공존하거나 경쟁하는 '이중적 구조'로 재편되고 있다. 이 거대한 지정학적 변화의 파도 속에서, 한국과 같은 중견국들이 어떤 외교적 항로를 설정해야 할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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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글로보우스' 외교, 미국 중심 질서에 대한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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