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8-26(화)
 

 

 

2020년, 미국 상무부의 제재로 화웨이(Huawei)의 반도체 공급망이 하루아침에 끊겼던 사건은 중국 전체에 거대한 충격을 안겼다. 이는 미중 패권 경쟁이 더 이상 무역 분쟁이 아닌, 국가의 명운을 건 '기술 전쟁'임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이후 중국의 '기술 굴기(技术崛起, 기술로 우뚝 섬)'는 원대한 국가 목표를 넘어,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으로 변모했다. '과학기술 자립자강(自立自强)'이라는 구호 아래 천문학적인 자원을 쏟아붓고 있는 지금, 과연 중국의 꿈은 미국의 철통같은 제재를 넘어 실현될 수 있을까? 이는 21세기 글로벌 기술 지형도를 결정할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빛: 거국체제가 이룬 경이로운 추격

미국의 제재는 역설적으로 중국의 기술 자립 의지를 전례 없이 자극하는 촉매제가 되었다. 중국은 '거국체제(举国体制)', 즉 국가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는 방식으로 미국의 압박에 맞서고 있다.

 

반도체 자립의 상징, 화웨이와 SMIC의 부활: 미국의 제재로 스마트폰 사업이 고사 직전에 몰렸던 화웨이는 불사조처럼 부활했다. 중국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SMIC와의 협력을 통해 7나노미터(nm) 공정의 5G 칩셋을 자체 생산해내며 시장을 경악시켰다. 비록 수율이 낮고 생산 단가가 높아 최첨단 공정과는 격차가 있지만, 미국의 봉쇄망에 구멍을 뚫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기술적 자신감을 증명한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최근에는 5nm급 칩 양산까지 바라보며 추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국가 주도의 막대한 투자: 중국 정부는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국가집적회로산업투자기금', 일명 '대기금(大基金)'을 조성, 1기와 2기를 통해 이미 5,000억 위안(약 95조 원) 이상을 쏟아부었다. 올해 들어서는 사상 최대 규모인 3,440억 위안 규모의 3기 펀드를 조성하며, 미국의 제재가 집중된 반도체 장비와 소재 국산화에 '올인'하고 있다. 나우라(NAURA), AMEC 등 중국의 반도체 장비 업체들은 이 자금을 발판 삼아 빠르게 성장하며 국산화율을 높여가고 있다. 2024년 기준, 중국의 반도체 자립률은 25%를 넘어섰다.

 

신산업 분야의 약진: 미국의 제재가 최첨단 반도체에 집중된 사이, 중국은 다른 트랙에서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화웨이가 주도하는 5G 통신장비는 이미 세계 시장의 3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전기차와 배터리 분야에서는 BYD와 CATL이 테슬라와 파나소닉을 위협하며 글로벌 1위 기업으로 등극했다. DJI가 장악한 드론 시장과 안면인식 등 AI 응용 분야 역시 중국이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자랑하는 영역이다.

 

 

 

그늘: 넘기 힘든 '첨단 기술'의 벽

이러한 괄목할 만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기술 굴기' 앞에는 여전히 넘기 힘든 거대한 벽이 존재한다.

 

반도체 핵심 장비와 소프트웨어의 부재: 중국이 7나노급 칩을 만들었다고는 하나, 이는 기존의 심자외선(DUV) 장비를 극한으로 활용한 결과다. 3나노 이하 최첨단 공정에 필수적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는 네덜란드 ASML이 독점하고 있으며, 미국의 제재로 중국 수출이 원천 봉쇄되어 있다. 또한, 칩 설계에 반드시 필요한 전자설계자동화(EDA) 소프트웨어 시장은 미국의 시놉시스, 케이던스가 90% 이상을 장악하고 있어, 이 분야의 자립 없이는 '반쪽짜리 성공'에 그칠 수밖에 없다.

 

인재 유출과 기초 과학의 한계: 미국의 제재는 중국계 과학자들의 활동을 위축시키고, 글로벌 인재 유입을 막는 효과를 낳고 있다. 또한, 단기 성과에 집중하는 국가 주도 R&D는 오랜 시간과 투자가 필요한 기초 과학 분야를 소홀히 하게 만들어, '따라가는 기술'은 가능할지 몰라도 '세상을 바꾸는 원천 기술'을 창출하는 데는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낸다.

 

'기술 고립'의 비용: 가장 큰 비용은 글로벌 기술 생태계로부터의 단절이다. 기술 혁신은 개방과 협력을 통해 이뤄지지만, 중국은 이제 많은 부분을 독자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는 엄청난 중복 투자와 비효율을 낳으며, 결국에는 세계 최고 수준과의 기술 격차가 다시 벌어지는 '기술 갈라파고스'에 갇힐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결론: 자립은 가능하지만, '최선두'는 어렵다


 

종합적으로 볼 때, 중국의 '기술 자립'은 불가능한 꿈이 아니다. 거대한 내수 시장과 국가의 총력 지원을 바탕으로, 중국은 미국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중간급 기술(legacy)과 특정 신산업 분야에서 자급자족하며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을 증명했다.

그러나 생존이 곧 '패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최첨단 반도체를 비롯한 핵심 원천 기술 분야에서 글로벌 생태계와 단절된 채 독자적으로 '최선두(cutting-edge)' 그룹에 오르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과제다. 결국 중국의 '기술 굴기'는 미국의 제재를 넘어 어느 정도의 자립은 이루겠지만, 그 과정에서 막대한 비용을 치르고 세계 최고 기술과는 일정한 거리를 둔 채 평행선을 달리는 '기술 이원화(bifurcation)' 시대를 맞이할 가능성이 높다. 화려한 성취의 빛과 고립의 짙은 그늘이 공존하는 것, 그것이 2025년 중국 기술 굴기의 현주소다.

 

 

태그

전체댓글 0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기술 굴기'의 명암: 미국의 제재를 넘어 자립은 가능한가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