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천만은 기본?… 아름다운 전통에서 현대판 '결혼 장벽'으로 변질된 차이리 현상
- 뿌리는 '감사의 예물', 현실은 '신부의 몸값'...무엇이 차이리를 '괴물'로 만들었나?
"차와 집은 기본이고, 차이리(彩礼) 18만 8천 위안(약 3,500만 원), 그리고 '삼금(三金)'까지… 아들 장가보내려다 집안 기둥뿌리가 뽑히게 생겼습니다."
최근 중국의 한 농촌 지역에 사는 50대 부모가 언론에 토로한 한탄이다. 아들의 결혼을 위해 평생 모은 돈을 털고도 모자라 '차이리 대출'까지 알아보고 있다는 이들의 이야기는, 비단 이 가족만의 특별한 사연이 아니다. 지금 중국 대륙에서는 '차이리'라 불리는 결혼 지참금 관습이 수많은 청년과 그 부모들을 깊은 고민에 빠뜨리고 있다. 본래 신부를 키워준 처가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던 아름다운 전통이, 이제는 결혼을 가로막는 거대한 장벽이자 사회적 문제로 변질된 것이다. 오늘일보에서는 중국 청년들의 가장 큰 현실적 고민이 된 차이리 현상을 통해, 급변하는 중국 사회의 명암을 들여다본다.
차이리의 역사는 수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중국에서는 신랑 측이 신부 측에 비단, 가축, 예물 등을 보내 정혼의 신표로 삼고, 귀한 딸을 내어주는 것에 대한 감사를 표했다. 이는 신랑의 경제적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딸이 시집가서 고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중요한 의식이었다. 즉, 그 시작은 '거래'가 아닌 '정성과 예의'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중국에서 차이리의 의미는 완전히 변질되었다. 특히 일부 농촌 지역과 중소 도시를 중심으로 차이리 액수가 천정부지로 치솟으며, '하늘 높은 가격의 차이리'라는 뜻의 '톈자차이리(天价彩礼)'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지역에 따라 편차는 크지만, 허난성, 장시성 등 일부 지역에서는 우리 돈으로 1억 원에 달하는 차이리를 요구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평균적으로 작게는 3천만원부터 많겠는 4억원까지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도시의 아파트, 자동차, 그리고 '삼금(三金)'이라 불리는 금목걸이, 금팔찌, 금반지 세트는 별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결혼 한 번에 30년 가난이 시작된다(婚一次, 穷三十年)"는 자조 섞인 말이 유행할 정도다.
아름다운 전통이 어떻게 젊은 세대를 짓누르는 괴물이 되었을까? 전문가들은 크게 두 가지 구조적 원인을 지목한다.
첫 번째는 심각한 성비 불균형이다. 1979년부터 30년 넘게 이어진 '한 자녀 정책'과 남아선호사상이 결합하면서, 중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남초 현상이 심각한 나라가 되었다. 현재 중국의 미혼 남성은 미혼 여성보다 약 3,000만 명 이상 많은 것으로 추산된다. 신붓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가, 신부 측의 협상력을 극단적으로 높여 차이리 액수를 끌어올리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된 것이다.
두 번째는 중국 특유의 '체면(面子, 몐쯔) 문화'와 과시적 소비 풍조다. "내 딸이 남의 딸보다 못한 대우를 받을 수 없다"는 신부 측 부모의 체면과, "이 정도는 해줄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신랑 측의 체면이 맞물리면서 차이리 경쟁에 불이 붙었다. 여기에 SNS의 발달로 남들의 결혼 준비 과정을 속속들이 알게 되면서, '상대적 박탈감'과 '비교 심리'가 더해져 차이리의 인플레이션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사랑보다 돈? 결혼을 막는 사회 문제로
과도한 차이리는 수많은 사회적 부작용을 낳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청년들이 결혼 자체를 기피하거나 포기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천문학적인 차이리를 감당할 수 없어 결혼을 미루거나 결국 헤어지는 커플들이 속출하고 있다.
결혼 과정이 신랑 측과 신부 측의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경우도 다반사다. 차이리 액수를 흥정하는 과정에서 양가의 자존심 대결로 비화되어 결국 파혼에 이르고, 결혼 후에도 시댁이 무리해서 마련한 차이리 때문에 부부 관계가 삐걱거리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는 '결혼은 사랑이 아닌 조건과 돈의 결합'이라는 냉소적인 인식을 사회 전반에 확산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 정부도 팔을 걷어붙였다. 중앙정부는 수년 전부터 '결혼 풍속 개혁'을 외치며 과도한 차이리와 사치스러운 결혼 문화를 '사회적 병폐'로 규정하고, 각 지방 정부에 이를 개선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일부 지방에서는 '차이리 상한액'을 권고하거나, 간소한 결혼식을 올리는 커플에게 보조금을 주는 등의 정책을 펴기도 했다. 하지만 수천 년간 이어진 관습이자, 지극히 사적인 가족 간의 약속을 정부가 통제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 실효성은 미미하다는 비판이 많다.
중국의 차이리 문제는 비단 강 건너 불구경만은 아니다. 한국 사회 역시 예물과 예단, 집 장만 문제 등 결혼을 둘러싼 경제적 부담과 갈등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결혼이 당사자들의 사랑만으로는 완성되기 어려운 현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부모 세대의 경제력과 체면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모습은 놀라울 정도로 닮아있다.
차이리 현상은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룬 사회가 전통적 가치와 현대적 욕망 사이에서 어떤 혼란을 겪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가족을 중시하는 전통이, 체면과 과시욕이라는 현대적 욕망과 만나 기형적으로 변질된 것이다. '얼마짜리' 차이리가 오갔는지가 한 사람의 가치를 대변하는 척도가 되어버린 현실. 이는 우리에게 '결혼의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한번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