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6-13(토)
 
  • 기다림이라는 형벌, 혹은 구원 :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다시 묻다
  • 텅 빈 무대, 잎 없는 나무 한 그루… 우리 시대의 부조리를 쏘다
  • 습관이라는 잠에서 깨어나라 : 베케트가 쏜 부조리의 화살
  • 오지 않는 구원자를 위한 찬가, ‘고도를 기다리며’가 현대인에게 건네는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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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는 누구인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러나 작가 조차도 내가 고도가 무엇인지 알았다면 작품 속에 썻을 것이라며 밝히길 거부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

 

 

 

현대인의 일상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아침 지하철을 기다리고, 택배를 기다리며, 때로는 내일의 안녕이나 막연한 행운을 기다린다. 하지만 우리가 그토록 간절히 기다리는 ‘그 무엇’이 영원히 오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은 어떤 의미를 갖게 될까?

 

1953년 파리의 작은 극장 ‘바빌론’에서 초연된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관객들은 아무런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 무대를 보며 당혹해했지만, 곧 깨달았다. 무대 위에서 구두를 벗으려 낑낑대는 에스트라공과 모자를 만지작거리는 블라디미르가 다름 아닌 ‘나 자신’임을 말이다.

 

 

1. 작가의 생애와 시대적 배경 : 전쟁의 폐허 위에서 쓴 ‘부조리’의 기록

 

 

사뮈엘 베케트(1906~1989)는 아일랜드 출신의 작가지만, 그의 문학적 정체성은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인류사적 비극 속에서 완성되었다. 그는 전쟁 중 프랑스 저항운동(레지스탕스)에 참여했고, 나치의 추적을 피해 남프랑스의 보클루즈 농가에 숨어 지냈다.

 

당시 베케트가 처한 상황은 그야말로 ‘부조리’ 그 자체였다. 언제 잡힐지 모르는 공포 속에서 그는 친구들과 함께 무의미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시간을 죽였다. 이때의 경험은 훗날 『고도를 기다리며』의 핵심 정서가 된다. 

 

전쟁은 인간이 쌓아 올린 이성과 문명이 얼마나 허망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고, 신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회의를 불러일으켰다. 베케트는 이러한 절망적 상황을 전통적인 서사 구조가 아닌, 해체된 언어와 반복되는 상황으로 그려내며 ‘부조리극(Theatre of the Absurd)’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2. 서사 구조 분석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음’이 주는 충격


 

이 작품의 줄거리를 요약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매우 쉽고도 어렵다. 비평가 비비언 메르시에가 말했듯, 이 연극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연극이 두 번 반복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제1막

해 질 녘, 시골길의 앙상한 나무 아래에서 두 부랑자 블라디미르(디디)와 에스트라공(고고)이 ‘고도’라는 인물을 기다린다. 그들은 기다림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끊임없이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고, 모자나 구두를 가지고 장난을 친다. 중간에 포조라는 포악한 지주와 그의 목에 줄이 묶인 하인 럭키가 등장해 기괴한 장면을 연출하고 떠난다. 막바지에 한 소년이 나타나 “고도 씨는 오늘 못 오고 내일은 꼭 오실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두 사람은 떠나기로 하지만, 정작 몸은 움직이지 않은 채 막이 내린다.

 

제2막

다음 날(혹은 다음 날이라고 여겨지는 시간), 장소와 상황은 거의 동일하다. 다만 나무에 잎이 몇 개 돋아났을 뿐이다. 어제의 일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에스트라공과 기억하려는 블라디미르 사이의 대화가 반복된다. 다시 나타난 포조는 장님이 되어 있고, 럭키는 벙어리가 되어 있다. 소년은 다시 나타나 고도가 내일 온다는 전갈을 남긴다. 두 사람은 자살을 시도하지만 줄이 끊어져 실패하고, 다시 “갈까?”라고 묻지만 제자리에 머문다.

 

 

3. 주요 인물 및 상징성 분석 : 거울 쌍처럼 닮은 두 영혼

 

 

블라디미르(디디)

지적이고 기억력이 좋으며, 고도에 대한 희망을 끝까지 놓지 않는 인물이다. 그는 인류의 고통과 구원의 문제에 대해 사유하며, 에스트라공을 돌보는 보호자 역할을 한다.

 

에스트라공(고고)

육체적 고통(작은 구두)과 배고픔에 민감하며, 직관적이고 감정적이다. 그는 수시로 기다림을 포기하고 떠나려 하지만, 블라디미르에 의해 저지당한다.

 

포조와 럭키 : 주인과 노예,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1막에서 당당했던 포조가 2막에서 눈이 멀어 나타나는 것은 시간의 잔인함과 인간 권력의 덧없음을 상징한다. 럭키의 ‘생각하기’ 장면에서 쏟아내는 파편화된 지식은 진리를 전달하는 기능을 상실한 언어의 몰락을 의미한다.

 

고도(Godot) : 극의 중심에 있지만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미지의 존재다. 많은 이들이 ‘하나님(God)’을 연상하지만, 베케트는 이를 명확히 정의하지 않았다. 고도는 구원, 희망, 죽음, 혹은 우리가 인생에서 도달하고자 하는 모든 목적지를 상징한다.

 

 

4. 핵심 장면과 명대사 : 침묵 속의 외침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2막 끝부분에서 블라디미르의 독백이다. “우리는 습관이라는 이름의 깊은 잠 속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닐까?” 이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 매몰되어 존재의 본질을 잊고 사는 현대인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이다.

 

또 다른 명대사는 에스트라공의 한탄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도 오지 않고, 아무도 가지 않는다. 정말 끔찍하다.” 이 대사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허무주의와 부조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소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시간을 죽이기 위한 유희’일 뿐이다.

 

 

5. 인문학적 주제 : 부조리에 맞서는 인간의 존엄

 


『고도를 기다리며』는 실존주의 철학의 문학적 형상화다. 사르트르가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고 했듯, 인간은 미리 정해진 목적 없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다. 베케트는 무의미한 반복과 고통 속에서도 ‘기다림’을 멈추지 않는 두 인물을 통해 인간의 비극적인 동시에 숭고한 면모를 보여준다.

 

작품이 던지는 핵심 메시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다. 고도가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혹은 의심하면서도) 다음 날 다시 나무 아래로 모이는 행위는, 무의미한 세상에 맞서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만들어가는 시지프스적 투쟁이다.

 

 

6. 창작 비화 및 후대의 영향 : 영화와 예술로 번진 기다림



베케트는 이 희곡을 처음 쓸 때 별다른 기대 없이 “그저 재미로”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현대 연극의 문법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이 ‘기다림’의 정서는 영화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레오스 카락스 감독의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에서 시력을 잃어가는 미셸과 거리의 곡예사 알렉스의 관계는, 세상에서 소외된 두 영혼이 서로에게 의지하며 절망적인 상황을 견뎌낸다는 점에서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의 관계를 연상시킨다. 특히 ‘본다’는 행위의 실존적 의미를 묻는 영화의 철학적 배경은 베케트가 던진 ‘기다림’의 실존적 문제와 궤를 같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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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나무 아래에는 누가 있는가

 

 

 당신은 지금 어떤 나무 아래에서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가? 사뮈엘 베케트는 우리에게 고도가 누구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그것은 독자 각자가 채워 넣어야 할 빈칸이기 때문이다. 

 

고도가 오지 않는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누군가와 함께 그 기다림의 시간을 견디고 있다는 사실 자체일지도 모른다. 블라디미르에게 에스트라공이 있었기에 그 지옥 같은 기다림이 견딜 만했듯이 말이다.


삶이 부조리하고 허무하게 느껴질 때,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무대를 떠올려 보라. 그리고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당신의 인내에 박수를 보내라. 기다림은 고통이지만, 그 기다림이 있기에 우리는 오늘도 ‘살아있음’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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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는 행위, 그 자체가 인간 실존의 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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