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이머우 감독의 숨 막히는 미장센
- 봉건적 가부장제라는 거대한 감옥, 그 안에서 파멸해가는 인간의 욕망을 그리다
장이머우 감독의 '인생'이 광활한 대륙을 배경으로 수십 년의 역사를 관통하는 서사시라면, 1991년 작 '홍등'은 거대한 저택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무대로, 단 일 년의 시간 동안 벌어지는 밀도 높은 심리 비극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인물들을 거대한 진씨 가문의 저택 안에 가두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여성들의 암투를 현미경처럼 들여다본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주인공은 어쩌면 등장인물이 아니라, 매일 밤 켜지고 꺼지는 '붉은 등(紅燈)'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흔히 경사와 환희의 상징으로 쓰이는 홍등은 이 영화에서만큼은 가장 잔인하고 폭력적인 권력의 상징이자, 여성들의 욕망과 질투, 그리고 마침내 파멸에 이르는 과정을 비추는 지옥의 불빛으로 기능한다.
네 번째 부인, 새로운 비극의 시작
1부: 닫힌 문으로 들어간 대학생
1920년대 중국. 대학까지 다닌 신여성 송련(공리 분)은 아버지가 죽고 집안이 몰락하자, 계모의 강권에 의해 부유한 진 대감의 네 번째 첩으로 들어가기로 결심한다. "첩이 되는 것은 운명이라면, 부잣집 첩이 되는 것은 나의 선택"이라며 스스로 가마에 오르는 그녀의 모습에는 지식인으로서의 자존심과 현실에 대한 체념이 뒤섞여 있다.
그녀가 도착한 진씨 가문의 저택은 끝이 보이지 않는 회색 벽으로 둘러싸인, 감옥처럼 거대하고 폐쇄적인 공간이다. 그녀는 도착과 동시에 이 가문이 수십 년간 이어온 엄격하고 기이한 규칙에 복종해야 함을 배운다. 그중 가장 중요한 규칙은 바로 '홍등'이다. 매일 저녁, 진 대감은 네 명의 부인 중 그날 밤을 함께 보낼 한 명을 선택하고, 선택된 부인의 처소 앞에는 거대한 붉은 등불이 내걸린다. 등불이 켜진 부인은 하인들의 극진한 시중과 발 마사지 서비스를 받으며, 다음 날 아침 식사 메뉴까지 정할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누린다. 홍등은 곧 한 여인의 운명 그 자체였다.
2부: 웃음 뒤에 숨겨진 칼날
여인들의 전쟁 송련은 곧 보이지 않는 전쟁터의 한복판에 던져진다. 그녀의 경쟁자는 이미 이 집의 규칙에 완벽하게 적응한 세 명의 부인들이다.
첫째 부인 유루는 이미 늙어 총애를 잃었지만, 아들을 낳은 덕에 집안의 큰어른으로 군림한다. 그녀는 이 비정한 시스템의 수호자다.
둘째 부인 탁운은 겉으로는 부처님처럼 인자한 미소를 띠고 있지만, 뒤로는 온갖 계략을 꾸미는 전갈 같은 여인이다.
셋째 부인 미산은 전직 경극 배우 출신으로, 아름답고 교만하며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그녀는 송련과 가장 날카롭게 대립하는 인물이다.
대학 교육을 받은 젊고 아름다운 송련은 처음에는 진 대감의 총애를 독차지한다. 매일 밤 그녀의 처소에 홍등이 걸리자, 다른 부인들의 시기와 질투는 극에 달한다. 둘째 부인은 거짓 친절로 송련의 머리카락을 잘라주겠다며 귀에 상처를 내고, 셋째 부인은 경극을 부르며 그녀의 신경을 긁는다. 송련의 시녀인 연아마저 몰래 자신의 방에 홍등을 걸어놓고 부인이 되기를 꿈꾸며 그녀를 저주한다.
3부: 거짓 임신
파국으로 치닫는 욕망 송련은 이 지옥 같은 암투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위험한 거짓말을 계획한다. 바로 '거짓 임신'이다. 임신한 부인의 처소에는 밤낮으로 홍등이 꺼지지 않는다는 규칙을 이용한 것이다. 그녀의 계략은 성공하고, 송련은 최고의 권력을 맛본다.
하지만 거짓말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녀의 거짓을 눈치챈 시녀 연아의 밀고로 모든 것이 들통나고 만다. 분노한 진 대감은 그녀의 처소에 걸렸던 홍등을 검은 천으로 덮어버리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는 이 집안에서 여인에게 내릴 수 있는 가장 큰 치욕이자, 영원한 냉궁(冷宮)으로의 추방 선고였다. 시녀 연아 또한 하극상의 죄를 물어 눈밭에 꿇어앉는 벌을 받다가 결국 병을 얻어 죽는다.
4부: 광기
그리고 새로운 희생자 모든 것을 잃고 유폐된 송련은 점차 이성을 잃어간다. 어느 날 술에 취한 그녀는, 자신이 셋째 부인 미산과 집안의 주치의인 고 대감이 밀회를 나누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무심코 내뱉는다. 이 말은 둘째 부인의 귀에 들어가고, 곧바로 진 대감에게 보고된다.
가문의 명예를 더럽힌 부인을 처리하는 집안의 비밀스러운 규칙에 따라, 미산은 하인들에게 끌려가 지붕 위 외딴방, '죽음의 방'이라 불리는 곳에서 교살당한다. 멀리서 그 끔찍한 광경을 목격한 송련은 결국 완전히 미쳐버린다.
시간이 흘러 다시 여름이 찾아오고, 진씨 가문에는 앳된 얼굴의 '다섯째 부인'이 새로운 가마를 타고 들어온다. 하인의 안내를 받던 그녀는, 텅 빈 넷째 부인의 처소에서 미친 여자가 홀로 돌아다니는 것을 본다. 대학생 시절 입었던 낡은 교복 차림으로, "홍등을 밝혀라"라고 중얼거리는 여자. 바로 송련이었다. 잔혹한 역사는 새로운 희생자를 맞이하며 다시 시작될 참이었다.
완벽한 형식미, 잔혹한 알레고리
숨 막히는 미장센과 색채의 미학 '홍등'은 장이머우 감독이 왜 '색채의 마술사'라 불리는지를 증명하는 영화다. 대칭과 반복으로 이루어진 저택의 구조는 인물들을 옭아매는 거대한 감옥이자 거미줄처럼 보인다. 회색빛 담벼락과 지붕의 삭막한 무채색은, 그 안에서 타오르는 여인들의 욕망을 상징하는 '홍등'의 핏빛 같은 붉은색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시각적 긴장감을 극대화한다. 카메라는 종종 멀리서 인물들을 관조하며, 그들이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발버둥 치는 미약한 존재임을 강조한다.
권력에 대한 냉정한 알레고리 영화의 배경은 1920년대 군벌 시대지만, '홍등'은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인 '권력 시스템'에 대한 잔혹한 알레고리다. 얼굴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 '진 대감'은 절대적이고 비인격적인 권력 그 자체(국가, 당, 혹은 특정 이데올로기)를 상징한다. 네 명의 부인들은 그 권력의 인정을 받기 위해 경쟁하는 피지배자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억압하는 진 대감에게 저항하는 대신, 서로를 헐뜯고 음해하며 더 큰 비극을 자초한다. 이는 억압적인 체제 하에서 피지배자들이 어떻게 서로를 감시하고 통제하며 스스로 체제의 노예가 되어가는지를 보여주는 소름 끼치는 통찰이다.
억압의 도구로서의 '의식(Ritual)' 매일 저녁 반복되는 홍등 점등식, 발 마사지, 식사 메뉴 결정권 등은 단순한 가풍이 아니다. 이것은 권력자가 피지배자를 통제하고 서열을 매기는 정교한 '의식'이다. 이 의식을 통해 여성들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오직 '주인의 선택'에만 두게 되고, 그 선택을 받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게 된다.
'홍등'이 발표된 1991년은 1989년 천안문 사태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시점이었다. 때문에 많은 서구 비평가들은 이 영화를 중국의 억압적인 정치 체제에 대한 직접적인 은유로 해석했다. 실제로 보이지 않는 절대 권력과, 그 안에서 서로를 감시하며 파멸해가는 개인들의 모습은 문화대혁명을 비롯한 중국 현대사의 비극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한국의 관객에게 이 영화의 가부장제 비판은 조선시대 여성들의 삶과 겹쳐 보이며 깊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하지만 '홍등'의 위대함은 그것을 넘어선다. 영화는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가?'라는 이분법적인 질문을 하지 않는다. 송련 역시 순수한 피해자가 아니며, 살아남기 위해 거짓말과 기만을 서슴지 않는다. 결국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비인간적인 시스템이 어떻게 모든 구성원을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로 만들어 버리는가의 비극적 메커니즘이다.
가장 아름다운 화면에 담긴 가장 잔혹한 이야기
'홍등'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 때문에 더욱 서늘하고 잔혹하게 다가오는 영화다. 화려한 색채와 완벽한 구도 속에 갇힌 인물들의 절망적인 몸부림은 한 편의 잘 짜인 비극 오페라를 보는 듯하다. 장이머우 감독은 이 정교한 비극을 통해, 인간의 욕망이 억압적인 체제와 만났을 때 어떻게 스스로를 파멸시키는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준다.
화려한 색채와 완벽한 구도 속에 담긴 숨 막히는 비극을 체험하고 싶은 분, 봉건적 체제가 한 개인의 영혼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보고 싶은 분, 그리고 한 편의 영화가 얼마나 깊이 있는 정치적, 사회적 은유가 될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모든 분께 이 영화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