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연금연구원 보고서, 지난 6월 기준 수급자 9만 9,818명 돌파… 여성 비율 88%
- 전 배우자가 ‘반환일시금’ 수령하면 연금 청구권 즉시 소멸… 구조적 허점 노출
- 전문가들 “가입자 간 형평성 심각한 훼손… ‘분할일시금’ 제도 도입 법 개정 시급”
황혼이혼의 급증으로 이혼한 배우자의 국민연금을 나눠 받는 ‘분할연금’ 수급자가 최근 10년 사이 8.5배가량 폭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현행 법령상 전 배우자가 연금 대신 ‘반환일시금’을 먼저 수령할 경우 상대방의 연금 분할 청구권이 원천 소멸하는 구조적 사각지대가 방치되어 있어, 노후 소득 보장이라는 입법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
10년 만에 1만 명에서 10만 명으로… ‘여성 편중’ 뚜렷
23일 국민연금연구원이 발표한 ‘국민연금의 분할일시금 도입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4년 1만 1,802명이었던 분할연금 수급자는 2025년 6월 기준 9만 9,818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약 10년 만에 8.5배 급증한 수치다. 전체 수급자 가운데 여성의 비율은 88%인 8만 7,491명에 달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1인당 월평균 수급액 역시 2015년 말 약 18만 4,000원에서 2025년 6월 현재 약 29만 원으로 뛰어올랐다. 성별 월평균 수급액은 남성이 16만 7,000원, 여성이 31만 원으로 조사됐다.
분할연금은 혼인 기간이 5년 이상인 가입자가 이혼했을 때, 가사노동 등의 기여도를 인정해 전 배우자의 노령연금액 일부를 분할해 지급받는 제도로 1999년 처음 도입됐다.
‘30년 해로’ 깨진다… 통계가 증명한 황혼이혼 러시
이 같은 수급자 급증의 핵심 배경에는 전체 이혼 통계의 지형을 바꾼 ‘황혼이혼’의 가파른 증가세가 자리하고 있다.
국가데이터처 자료에 따르면, 혼인 기간이 20년 이상인 부부의 이혼 비중은 1997년 9.8%에서 2024년 36.2%로 3배 이상 급증했다.
특히 30년 이상 함께 살다가 파경을 맞이한 부부의 비중 역시 2017년 10.9%에서 2024년 16.6%로 지속적인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과거와 달리 혼인 관계를 청산한 뒤 독자적인 생계를 꾸려야 하는 고령층이 늘어나면서, 국민연금 분할 청구가 선택이 아닌 필수적 ‘은퇴 자산 확보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시금으로 빼가면 "지급 불가"… 방치된 법의 구멍
문제는 현장 곳곳에서 확인되는 국민연금법의 치명적인 ‘구조적 결함’이다.
현행법상 분할연금은 전 배우자가 ‘정상적인 노령연금 수급권자’가 될 때만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다. 만약 전 배우자의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10년 미만인 상태에서 수급 연령에 도달하거나 국외 이주, 사망 등의 사유로 그간 납부한 보험료를 ‘반환일시금’ 명목으로 한 번에 찾아가면 상대방의 분할 청구권은 그 즉시 증발한다.
실제로 지난해 말 기준 국민연금 반환일시금 수급자는 19만 8,663명에 달한다. 이들의 수급 사유를 분석하면 가입 기간 부족으로 인한 ‘60세 도달’이 69.62%로 가장 많았고, ‘국외 이주’가 19.43%로 뒤를 이었다. 약 20만 명에 이르는 일시금 수급자의 전 배우자들은 혼인 기간 동안의 기여를 전혀 인정받지 못한 채 법의 보호망 밖으로 밀려나 있는 셈이다.
학계 및 법조계 전문가들은 현행 제도가 '혼인 중 형성된 공동자산의 분배'라는 분할연금의 근본 취지를 위배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보고서를 집필한 유호선·이예인 연구원은 "전 배우자가 연금 대신 반환일시금을 수령하더라도, 그 금액의 절반을 이혼 배우자에게 즉시 분할해 지급하는 '분할일시금' 제도를 신설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일방의 수령 방식 선택에 의해 타방의 수급권이 일방적으로 박탈당하는 것은 헌법상 재산권 침해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가정법원 판사 역시 "현재 이혼 소송 현장에서는 연금 수령 개시일 전에 일시금으로 미리 빼돌리는 식의 악용 사례가 심심찮게 보고된다"라며 "독일이나 스위스처럼 이혼 시점에 부부의 연금 포인트를 즉각 절반으로 가르는 '원천 분할 방식'으로 국민연금법을 전면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