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0-22(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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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구환신(以旧换新)' 정책, 소비 진작을 넘어 산업 고도화의 촉매 될까
    부동산 시장의 장기 침체, 내수 부진, 그리고 디플레이션의 그림자. 2025년 중국 경제를 짓누르는 이 삼중고를 타개하기 위해, 중국 정부가 다시 한번 과거에 성공했던 정책 카드를 꺼내 들었다. 바로 '이구환신(以旧换新)', 우리말로 '헌 것을 새것으로 바꾼다'는 의미의 대규모 소비재 교체 지원 정책이다. 자동차, 가전 등 내구소비재 교체 시 보조금을 지급하는 이 정책은, 표면적으로는 얼어붙은 소비 심리를 녹이는 단기 부양책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침체된 경기를 살리는 것을 넘어, 중국의 산업 구조를 미래형으로 탈바꿈시키려는 거대한 야망이 숨어있다. 과연 이구환신은 단순한 소비 진작을 넘어 중국 산업 고도화의 촉매가 될 수 있을까? 15년 만의 재등장, 규모와 목표부터 다르다 이구환신 정책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처음 시행되어 큰 성공을 거둔 바 있다. 당시 정책이 4조 위안 규모의 대규모 인프라 투자와 맞물려 경제를 V자 반등시키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5년 만에 다시 등장한 2025년의 이구환신은 그 규모와 목표에서 과거와 궤를 달리한다. 중국 국무원이 발표한 행동 방안에 따르면, 이번 정책의 핵심은 자동차와 가전 두 축으로 나뉜다. 자동차의 경우, 노후 내연기관차를 폐차하고 신에너지차(NEV)로 교체 시 ‘최대 1만 위안(약 190만 원)’의 보조금을 지급한다. 가전 부문에서는 에너지 효율이 높은 스마트 가전, 친환경 가구 등으로 교체하는 소비자에게 보조금 혜택을 제공한다. 중국 상무부의 추산에 따르면, 이 정책으로 인해 창출될 시장 규모는 자동차 부문에서만 1조 위안, 가전 부문에서 수천억 위안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전체 설비 교체 수요를 연간 5조 위안(약 950조 원) 이상으로 추정하며 정책에 대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고 있다. 핵심적인 차이는 정책의 지향점이다. 2009년에는 단순히 '소비'를 살리는 데 중점을 뒀다면, 2025년의 목표는 “'녹색(绿色)'과 '스마트(智能)'”라는 키워드로 압축된다. 즉, 단순히 낡은 차를 새 차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연기관차를 전기차로, 구형 아날로그 가전을 AI 기능이 탑재된 스마트홈 가전으로 바꾸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는 소비의 '양'적 팽창을 넘어 '질'적 전환을 통해 미래 산업의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중국 정부의 전략적 의도가 담겨있다. 소비 부양과 산업 업그레이드,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까? 이 정책의 기대효과는 명확하다. 단기적으로는 잠자고 있던 교체 수요를 깨워 소비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중국 내 자동차 보유량은 약 3억 4천만 대, 주요 가전제품 보유량은 30억 대를 넘어섰다. 이 중 상당수가 교체 주기에 들어선 노후 제품들이다. 막대한 잠재 수요에 보조금이라는 인센티브가 더해지면, 관련 기업들의 매출 증대와 재고 소진에 직접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장기적인 산업 고도화 효과다. 이구환신 정책은 수요 측면에서 정부가 인위적으로 '미래형 제품'의 시장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신에너지차 구매 보조금은 BYD, 니오(Nio) 등 자국 전기차 기업들에게는 안정적인 내수 시장을 보장해주며, 이를 바탕으로 기술 개발과 가격 경쟁력 확보에 매진할 동력을 제공한다. 스마트 가전 역시 마찬가지다. 하이얼, 메이디 같은 기업들은 정부가 창출한 교체 수요를 발판 삼아 사물인터넷(IoT)과 AI 기술이 결합된 스마트홈 생태계 구축에 속도를 낼 수 있다. 결국 이구환신은 수요가 공급을 견인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중국 제조업의 체질을 전통적인 '규모의 경제'에서 '기술 기반 경제'로 바꾸려는 시도인 셈이다. 넘어야 할 산: 재정 부담과 소비자의 신뢰 물론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난관을 넘어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재정 부담이다. 막대한 보조금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어떻게 분담할 것인지 명확한 계획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이미 부동산 시장 침체로 막대한 부채에 시달리는 지방정부가 보조금 지급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재원 마련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정책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또한, 위축된 소비자들의 신뢰 회복이 관건이다. 현재 중국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는 근본적인 이유는 미래 소득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고용 시장이 불안하고 자산 가치(부동산)가 하락하는 상황에서, 보조금만으로 고가의 내구소비재 구매를 선뜻 결정하기는 어렵다. 일각에서는 이구환신 정책이 미래의 소비를 현재로 앞당겨 쓰는 '수요 이연' 효과에 그칠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결론적으로, '이구환신' 정책은 중국 경제가 직면한 복합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자, 미래 산업을 향한 전략적 투자라는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 이 정책이 단순한 경기 부양을 넘어 중국 산업의 구조적 전환을 이끄는 성공적인 촉매가 될 수 있을지, 혹은 막대한 재정만 투입한 채 미미한 효과에 그칠지는 향후 정책의 구체적인 실행 방안과 중국 소비자들의 신뢰 회복 여부에 달려있다. 전 세계가 그 결과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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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8-26
  • 청년 실업률이라는 아킬레스건, '탕핑'을 넘어선 세대의 출구는?
    중국 공산당이 이끄는 현대 중국의 정당성은 암묵적인 사회 계약에 기반한다. '정치적 자유를 논하지 않는 대신, 경제적 번영과 안정적인 삶을 보장한다.' 지난 40여 년간의 개혁개방은 이 약속이 유효함을 증명하는 거대한 성공 서사였다. 그러나 지금, 이 견고했던 계약의 가장 약한 고리가 드러나고 있다. 바로 사상 최악의 청년 실업률이라는 아킬레스건이다. 이는 단순한 경제 지표를 넘어, 중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한 세대의 좌절이자, 체제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잠재적 뇌관이다. 통계가 보여주는, 그리고 감추는 현실 공식적인 수치만으로도 문제는 심각하다. 중국 국가통계국이 발표한 16~24세 청년 실업률은 2023년 6월, ‘21.3%’라는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도시 청년 5명 중 1명 이상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상황이 악화되자 당국은 약 6개월간 돌연 통계 발표를 중단했고, 올해부터 '재학생을 제외한다'는 새로운 기준으로 수치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이 기준으로도 실업률은 14%대를 오르내리며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 공식 통계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장단단(張丹丹) 베이징대 교수의 연구팀은 통계에 잡히지 않는 비자발적 실업 상태의 청년, 즉 부모에게 의존해 생활하는 '캥거루족' 등을 포함할 경우, ‘실질적인 청년 실업률은 무려 46.5%’에 달할 수 있다는 충격적인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이는 중국 청년 두 명 중 한 명은 사실상 온전한 경제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매년 1,100만 명 이상의 대졸자가 쏟아져 나오는 현실을 감안할 때, 이는 거대한 사회적 압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구조적 미스매치와 정책적 충격의 합작품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가? 이는 복합적인 원인이 얽힌 결과다. 첫째, 고질적인 '구조적 미스매치'다. 중국의 대학교들은 사회가 필요로 하는 기술 인력보다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졸업생을 과도하게 배출해왔다. 반면, 제조업 현장에서는 숙련된 기술공을 구하지 못해 아우성이다. 대학 졸업장만으로는 양질의 일자리를 보장받을 수 없는 '고학력 저숙련' 인력의 과잉 공급이 발생한 것이다. 최근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쿵이지의 긴 두루마기(孔乙己的长衫)'라는 밈(meme)은 이러한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육체노동을 하기엔 너무 많이 배웠고, 배운 것을 써먹을 지식인 일자리는 없는 청년들의 딜레마다. 둘째, 정부의 정책적 충격이 결정타를 날렸다. 시진핑 정부는 2021년부터 사교육 산업을 초토화한 '쌍감(双减)' 정책, 알리바바와 텐센트로 대표되는 빅테크 기업에 대한 고강도 규제, 그리고 부동산 시장의 부채를 줄이는 디레버리징(deleveraging)을 동시에 추진했다. 이 세 분야는 모두 지난 10여 년간 대졸 청년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일자리를 공급하던 핵심 산업이었다. 하나의 정책도 감당하기 힘든 충격을 동시에 가하면서, 청년 고용 시장은 급격하게 얼어붙었다. '탕핑'과 '바이란', 소극적 저항을 넘어 이러한 현실 앞에서 중국 청년 세대가 보인 반응은 '탕핑(躺平, 드러눕기)'과 '바이란(摆烂, 될 대로 되라)'으로 대표된다. 치열한 경쟁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할 수 없게 되자, 최소한의 생존만 유지하며 분투를 포기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나태가 아니라, 기성세대가 설계한 성공 공식에 대한 소극적 저항이자 합리적 선택이다. "노력해도 안 되는데 굳이 애쓸 필요가 있는가?"라는 자조 섞인 질문이다. 정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 실업 청년들이 사회 불만 세력으로 전환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기 때문이다. 당국은 청년들에게 창업을 독려하고, 농촌으로 내려가 일자리를 찾으라는 '신상산하향(新上山下乡)' 운동을 장려하며, 국유기업과 공무원 채용을 늘리는 등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기보다는 문제의 폭발을 지연시키는 임시방편에 가깝다. 출구를 찾아서: 세대의 고민과 국가의 과제 '탕핑'을 넘어선 세대의 출구는 어디에 있는가? 현재 청년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탈출구를 모색하고 있다. 안정적인 직장을 포기하고 배달, 차량 호출 등 긱 이코노미(gig economy)에 뛰어들거나, 취업난을 피해 대학원으로 진학해 시간을 벌거나, 심지어 매달 부모에게 용돈을 받으며 '전업자녀(全职儿女)'로 사는 것을 택하기도 한다. 하지만 개인적 차원의 대응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 궁극적인 해결책은 중국 경제의 체질 개선에 있다. 정부 주도의 투자가 아닌, 민간 기업이 자유롭게 활동하며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혁신 경제로 전환해야 한다.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의 고삐를 풀고, 민간 기업가들의 불안을 해소하여 투자를 유도하며, 미래 산업에 대한 예측과 함께 교육 시스템을 개혁하는 장기적인 비전이 필요하다. 중국 청년 실업 문제는 이제 막 곪아 터지기 시작한 상처다. 이 상처를 어떻게 치유하느냐에 따라 중국의 미래가 달라질 것이다. 한 세대의 좌절을 방치한 사회는 결코 지속가능한 번영을 이룰 수 없다. '중국의 꿈(中国梦)'이 신기루가 되지 않기 위해, 시진핑 정부는 이제 가장 아픈 현실을 직시하고 대수술에 나서야 할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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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별기고
    2025-08-26
  • 외국인 이민 확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과제
    [오늘일보=김준연 발행인]세계 최저 출산율, 가장 빠른 고령화 속도. 대한민국 인구 시계는 이제 경고음을 넘어 비상벨을 울리고 있다. '인구절벽'은 더 이상 미래의 위협이 아닌, 당장 우리의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고 지방 소멸을 가속하는 냉혹한 현실이다. 이 명백한 국가 소멸의 위기 앞에서, '외국인 이민 확대'는 이제 좋고 싫음의 선택지가 아닌, 생존을 위한 마지막 카드 중 하나가 되었다. 물론 '이민'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여전히 낯설고 불편하다. 일자리를 빼앗길 것이라는 경제적 불안감,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사회적 갈등에 대한 우려도 충분히 합리적이다. '단일민족'이라는 익숙하고 안온한 서사 속에서 살아온 우리에게, 다문화 사회로의 전환은 두려운 미지의 영역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언제까지 과거의 관성에 갇혀 시대적 과제를 외면할 수는 없다. 이미 우리 산업 현장 깊숙한 곳에서는 외국인 노동자 없이는 공장 문을 닫아야 하는 곳이 부지기수다. 농어촌과 지방 도시는 소멸을 막기 위해 외국인 유학생과 이주민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우리는 이미 사실상의 '이민사회'에 진입했지만, 이를 인정하고 미래를 설계할 국가적 차원의 논의와 준비는 한참이나 뒤처져 있다. 이제는 소극적인 단기 노동력 수입을 넘어,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함께할 이민자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통합할 것인지에 대한 청사진을 그려야 한다. 성공적인 이민 정책의 핵심은 '선별'과 '통합'이다. 첫째, 우리에게 필요한 인재를 주도적으로 유치하는 '선별적 이민 정책'이 필요하다. 저출생으로 부족해진 생산가능인구를 채우고, AI와 첨단 산업 분야의 우수 인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어야 한다. 캐나다나 호주처럼 명확한 점수제에 기반한 이민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을 검토할 때다. 둘째, 체계적인 사회 통합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민자들이 언어와 문화를 익히고, 차별 없이 우리 사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은 갈등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이를 총괄할 '이민청'과 같은 독립적인 컨트롤 타워 설립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독일의 실패와 캐나다의 성공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우리 실정에 맞는 한국형 통합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인구 구조의 변화는 정해진 미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변화의 파도에 휩쓸려 가는 것이 아니라, 파도를 올라타고 새로운 기회를 만드는 것이다. 이제는 '이민을 받을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소모적인 논쟁을 끝내야 한다. 대신 '어떤 이웃을, 어떻게 받아들여, 어떤 나라를 함께 만들어 갈 것인가'라는 건설적인 질문을 시작할 시간이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여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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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5-08-26
  • K-콘텐츠의 다음 단계: 플랫폼 종속을 넘어 IP 강국으로
    [오늘일보=김준연 발행인]전 세계가 ‘오징어 게임’, ‘더 글로리’에 열광하고 BTS와 블랙핑크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K-콘텐츠는 의심할 여지 없이 문화적 현상을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핵심 수출 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OTT 플랫폼은 K-콘텐츠가 세계로 뻗어나가는 데 결정적인 '고속도로' 역할을 해주었다. 그러나 화려한 성공의 이면에는 우리가 애써 외면해 온 질문이 있다. "이 잔치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인가?" ‘오징어 게임’이 전례 없는 성공을 거두었을 때, 그 천문학적인 후속 수익과 파생 사업의 권리는 대부분 넷플릭스가 가져갔다. 우리는 뛰어난 요리사처럼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멋진 요리(콘텐츠)를 만들어냈지만, 그 요리가 나오는 식당(플랫폼)과 요리법(IP, 지식재산권)의 소유권은 넘겨준 셈이다. 이러한 '플랫폼 종속' 모델은 단기적으로는 안정적인 제작비와 글로벌 유통망을 확보하는 달콤한 과실을 주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우리 콘텐츠 산업의 허리를 약화시키는 족쇄가 될 수 있다. IP가 없으면 시즌2, 캐릭터 사업, 게임, 굿즈 등 부가 가치를 창출하는 '원 소스 멀티 유즈(OSMU)'는 불가능하다. 우리는 언제까지 남의 밭에서 농사를 지어주는 소작농에 머물러야 하는가? 이제 K-콘텐츠는 다음 단계로의 진화를 모색해야 한다. 훌륭한 '콘텐츠 제작소'를 넘어, IP를 직접 소유하고 그 가치를 키워나가는 진정한 'IP 강국'으로 도약해야 할 때다. 이를 위해 몇 가지 과제가 시급하다. 첫째, 창작자 중심의 IP 소유 구조를 확립해야 한다. 웹툰과 웹소설 업계가 보여주듯, 원천 IP를 가진 플랫폼과 작가가 중심이 되어 IP 가치를 키워나가는 모델이 성공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영상 제작 단계에서도 제작사와 창작자가 IP 권리를 확보하고, 플랫폼과는 '방영권' 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전환을 유도해야 한다. 둘째, 국내 플랫폼의 경쟁력 강화와 연대가 필요하다. 글로벌 플랫폼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국내 OTT와 콘텐츠 기업들이 힘을 합쳐야 한다. 공동으로 오리지널 IP에 투자하고, 해외 시장에 함께 진출하는 'K-콘텐츠 연합군'을 형성하여 협상력을 키워야 한다. 셋째, 정부는 IP 확보를 위한 금융 및 정책 지원에 적극 나서야 한다. IP를 담보로 한 제작비 펀딩을 활성화하고, 불공정한 IP 계약을 막기 위한 표준계약서 개선 등 제도적 뒷받침을 강화해야 한다. 당장의 제작 편수 늘리기보다, 세계적인 IP 몇 개를 키워내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디즈니는 미키마우스라는 IP 하나로 100년 가까이 세계를 제패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그럴 잠재력을 가진 웹툰, 캐릭터,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 이제는 우리 손으로 직접 IP를 키워, 그 결실을 온전히 우리가 거두는 새로운 성공 신화를 써 내려갈 때다. K-콘텐츠의 진짜 승부는 지금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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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8-26
  •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 '경제 안보'는 선택이 아닌 필수
    과거 30년간 세계 경제를 지배해 온 '효율성'이라는 금과옥조가 깨지고 있다. 가장 값싼 곳에서 생산해 가장 필요한 곳으로 실어 나르던 글로벌 분업 체계는 이제 옛말이 되었다. 미중 기술 패권 경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예상치 못한 팬데믹은 '비용'보다 '안정'이, '효율'보다 '회복력'이 더 중요한 가치임을 전 세계에 각인시켰다. 이제 글로벌 공급망은 '안보'라는 새로운 중력을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이러한 거대한 흐름 속에서, 수출로 먹고사는 대한민국 경제는 그 어떤 나라보다 민감한 기로에 서 있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정교하고 효율적인 생산망의 핵심 플레이어로서 성장해왔다. 하지만 이는 반대로 말해, 그 생산망의 작은 균열 하나가 우리 경제 전체를 멈춰 세울 수 있다는 구조적 취약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2021년 경험했던 차량용 반도체 대란과 요소수 품귀 사태는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우리 경제의 아킬레스건을 드러낸 예고편이었다. 이제 '경제 안보'는 더 이상 외교·안보 부처에서나 다루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이는 우리 기업의 생존과 국민의 일자리가 걸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민생 문제다. 미국이 자국 중심의 반도체·배터리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해 추진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과학법(CHIPS Act)은 동맹국에게조차 국익 앞에서는 양보가 없다는 차가운 현실을 보여준다. 중국 역시 핵심 광물과 원자재를 전략적으로 통제하며 '자원의 무기화'를 서슴지 않고 있다. 이처럼 거친 파도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더 이상 특정 국가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얼마나 위험한지, 기술 주권을 확보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수동적으로 학습할 시간은 없다. 이제는 행동에 나서야 할 때다. 첫째, 공급망 다변화가 시급하다. 특정 국가에 90% 이상 의존하는 '절대 의존 품목'부터 위험도를 재평가하고,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을 통해 우방국 중심으로 공급망을 재편하며, 국내 생산 기반을 확충하는 '리쇼어링(reshoring)'을 과감히 유도해야 한다. 둘째, 기술 주권을 확보해야 한다. 반도체, 배터리 등 우리가 우위를 가진 '초격차 기술'은 더욱 발전시키고, 핵심 소재·부품·장비 분야에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기술력을 확보하여 글로벌 공급망에서 우리의 협상력을 극대화해야 한다. 셋째, 정부는 경제 안보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한다. 민간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정부는 주요국들의 움직임을 면밀히 분석해 조기경보 시스템을 구축하고, 기업의 공급망 다변화 노력을 세제 혜택과 금융 지원 등으로 적극 뒷받침해야 한다. 과거에는 좋은 물건을 싸게 만드는 기업이 살아남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한 기업, 그리고 그 기업을 뒷받침하는 국가가 살아남는 시대다. '경제 안보'는 더 이상 비용이 아닌, 미래를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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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8-26
  • 격화되는 미중 경쟁, 한국 외교의 '전략적 자율성'을 묻는다
    [오늘일보=김준연 발행인]2025년 여름, 미중의 전략적 경쟁은 더 이상 변수가 아닌, 국제 질서를 규정하는 '상수'가 되었다. 반도체와 AI를 둘러싼 기술 전쟁은 한층 더 노골화되었고, 대만 해협의 군사적 긴장감은 동북아 안보 전체를 흔드는 뇌관이 되었다. 이러한 거대한 파고 속에서, 한반도라는 배의 항해사인 대한민국 외교는 '전략적 자율성'이라는 낯설지만 더는 피할 수 없는 질문에 답해야 할 시간에 직면했다. 현 정부는 출범 이후 한미 동맹의 복원과 한미일 3각 협력 강화를 외교의 핵심 기조로 삼아왔다.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의 연대를 통해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고 국제 사회에서의 위상을 높인다는 명분은 분명 설득력이 있었다. 그 결과, 한미 연합훈련은 정상화되었고 대미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공고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어지는 법이다. 가치에 기반한 선명한 노선은 필연적으로 반대편에 있는 국가, 특히 우리의 최대 교역 파트너인 중국과의 관계에 경직성을 가져왔다. 사드(THAAD) 사태 이후 조심스럽게 관리되던 한중 관계는 다시금 얼어붙었고, 첨단 기술에서부터 핵심 원자재에 이르기까지 중국에 깊숙이 얽혀있는 우리 경제의 공급망 리스크는 오히려 커졌다.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과거의 공식이 더는 유효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뿐, 새로운 생존 공식은 찾지 못한 채 표류하는 형국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전략적 자율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이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기계적 중립을 지키거나 양쪽을 오가는 '줄타기 외교'를 하자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굳건한 한미 동맹을 외교의 기본 축으로 삼되, 사안별로 우리의 국익을 최우선 기준으로 삼아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바로 전략적 자율성의 핵심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에 동참하더라도, 국내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예외 조치를 관철하기 위해 더 집요하게 미국을 설득하고 협상하는 것이 자율성이다. 중국이 특정 현안에 대해 우리의 입장을 문제 삼을 때, '동맹의 결정' 뒤에 숨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국익'에 기반한 결정임을 명확한 논리로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것이 자율성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국익이 무엇인가'에 대한 명확한 사회적 합의를 가져야 한다. 단기적 경제 이익인가, 장기적인 안보 가치인가, 혹은 기술 주권의 확보인가. 이 기준이 명확히 서야만, 외교는 외부의 압력에 흔들리지 않고 일관된 원칙을 가질 수 있다. 격랑의 시대에 남의 지도를 들고 항해할 수는 없다. '가치 외교'라는 이상을 추구하더라도, 그 발은 '국익'이라는 현실의 땅을 굳건히 딛고 있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대한민국 외교가 우리만의 지도와 나침반을 재정비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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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5-08-26
  • 연금개혁, '더 내고 늦게 받는' 고통 분담을 넘어선 세대 간의 약속
    [오늘일보=김준연 발행인]2025년 8월, 22대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연금개혁안이 다시금 우리 사회의 가장 뜨거운 현안으로 떠올랐다.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44%'라는 구체적인 숫자까지 제시되며 손에 잡힐 듯했던 개혁은, 또다시 정치적 셈법과 세대 간의 불신이라는 벽에 부딪혀 좌초될 위기에 처해있다. '더 내고 늦게 받는' 고통 분담. 연금개혁을 이야기할 때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이 말은 이제 모든 국민이 받아들여야 할 냉정한 현실이 되었다. 저출생·고령화의 거대한 파도 앞에서 기금 고갈은 정해진 미래이며, 이대로라면 1990년생이 연금을 받을 나이가 될 즈음엔 적립된 기금이 바닥을 드러낸다. 미래 세대에게 감당할 수 없는 빚을 떠넘기지 않기 위해, 우리는 이제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고 행동에 나서야 한다. 그러나 연금개혁을 단순히 가입자가 감내해야 할 '손해'의 문제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 이는 숫자를 조정하는 기술적 과제를 넘어, 국가의 미래를 위한 '세대 간의 약속'을 재확인하는 사회적 계약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청년 세대는 국민연금을 '내봤자 돌려받지 못할 돈'이라며 깊은 불신을 보이고 있다. 이들의 불안을 해소하지 않고서는 어떠한 개혁안도 성공할 수 없다. 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국가의 지급 보장 명문화'이다. 국가가 어떤 상황에서도 연금 지급을 책임진다는 명확한 법적 약속이야말로, 청년들이 기꺼이 개혁의 고통을 분담하게 할 가장 확실한 담보다. 이는 단순한 선언을 넘어, 연금 제도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뿌리부터 재건하는 첫걸음이다. 동시에, 우리는 걷어들인 돈을 어떻게 불릴 것인지에 대해서도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1,000조 원이 넘는 국민연금 기금의 운용 수익률을 1%만 높여도 기금 고갈 시점을 수년 늦출 수 있다. 글로벌 최고 수준의 전문가들이 기금 운용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정치적 외압으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하는 것은 보험료율을 1% 올리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개혁의 한 축이다. 21대 국회는 연금개혁의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제 공은 22대 국회로 넘어왔다. 여야는 눈앞의 유불리를 떠나 국가의 백년대계를 설계한다는 역사적 책임감으로 협상에 임해야 한다. 특정 세대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방식이 아니라, 모든 세대가 조금씩 양보하고 책임지며 미래를 함께 열어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연금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우리 모두의 숙제다. 이번만큼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를 주저하다 또다시 다음 세대에 폭탄을 떠넘기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숫자를 둘러싼 소모적 논쟁을 넘어,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을 재건하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약속하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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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8-26
  • AI 시대, 정답을 가르칠 것인가 질문을 가르칠 것인가
    [오늘일보=김준연 발행인] 2025년 8월, 대한민국 교육계는 거대한 전환의 문턱에 서 있다. 정부는 AI 디지털 교과서를 통해 학생 개개인에게 최적화된 교육을 제공하겠다는 청사진을 발표했지만, 교육 현장에서는 준비 부족과 방향성에 대한 우려가 교차한다. 이 거대한 변화는 단순히 기술 도입을 넘어, '우리는 어떤 인간을 길러낼 것인가'라는 교육의 본질적 질문을 우리 사회에 던진다. 생성형 AI의 등장은 '정답 암기' 능력의 종언을 고했다. 지식의 암기와 인출은 이제 기계의 영역이다. 우리 교육이 집중해야 할 것은 AI가 내놓은 그럴듯한 답변이 정말 옳은지 가려내는 비판적 사고, 여러 지식을 융합해 세상에 없던 해결책을 내놓는 창의력이다. "임진왜란은 몇 년에 일어났는가?"를 묻는 대신, "AI가 제공하는 데이터를 활용해 당시의 해전을 재설계한다면?"과 같이 세상을 바꾸는 '좋은 질문'을 던지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물론 AI는 교육의 주체가 아닌, 교사와 학생을 돕는 강력한 '도구'일 뿐이다. AI가 학생의 학습 데이터를 분석해 줄 수는 있지만, 학생의 좌절에 공감하고 다시 도전할 용기를 불어넣는 것은 결국 인간 교사의 몫이다. 따라서 교사의 역할은 과거의 '지식 전달자(Sage on the stage)'에서, 학생이 AI를 올바로 사용하도록 이끄는 '학습 촉진자(Guide on the side)'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를 위한 교사 재교육과 자율성 보장은 정책의 최우선 과제다.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다. 기술 도입의 속도전에 매몰되어 방향을 잃어서는 안 된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역설적으로 공감 능력, 공동체 의식 같은 인간 고유의 가치는 더욱 중요해진다. 이제 선택의 시간이다. AI를 따라 정답을 외우는 아이들을 길러낼 것인가, 아니면 AI에게 당당히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미래를 상상하는 아이들을 키울 것인가. 기술의 화려함에 현혹되지 않고, 교육의 본질을 굳건히 지키는 지혜가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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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8-26
  • 한반도 비핵화를 향한 동상이몽..한중의 엇갈린 30년
    2025년 8월, 북한이 동해상으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했다. 서울과 워싱턴은 즉각 이를 ‘유엔 안보리 결의에 대한 명백한 위반’으로 규정하고 강력 규탄하며 추가 제재를 예고했다. 며칠 뒤 열린 유엔 안보리 회의, 미국과 일본은 강력한 대북 제재 결의안 초안을 내밀었지만, 중국은 어김없이 ‘모든 당사자의 자제와 대화를 통한 해결’을 촉구하며 사실상 거부권을 행사했다. 지난 30년간 북한의 핵 개발 역사에서 수없이 반복되어 온 이 데자뷔(déjà vu) 같은 풍경이야말로, 한반도 문제를 둘러싼 한국과 중국의 근본적인 시각차, 즉 '동상이몽(同床異夢)'의 실체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그리고 비핵화’라는 공식적인 목표는 공유하지만, 그 목표에 도달하는 방법론과 우선순위에서 양국은 결코 만날 수 없는 강을 사이에 두고 있다. 북한의 핵 능력이 고도화를 넘어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굳어진 2025년 현재, 한중 양국의 대북 정책이 왜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는지 그 구조적 원인을 심층 분석했다. 이것은 단순한 외교적 이견에 대한 보고서가 아니라, 우리의 생존이 걸린 문제에 대한 냉정한 현실 진단이다. 제1부: 목표의 불일치 - '비핵화'가 먼저인가, '안정'이 먼저인가? 모든 이견의 출발점은 양국이 추구하는 최종 목표의 우선순위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에서 시작한다. 1. 한국(과 미국)의 최우선 목표: ‘선(先) 비핵화’ 서울과 워싱턴에게 북한 문제는 곧 ‘핵 문제’다. 북한의 핵무기는 대한민국의 생존을 위협하는 실존적 위협이며, 동북아와 국제 비확산 체제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 따라서 양국의 모든 대북 정책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라는 단 하나의 목표에 수렴한다. 이 과정에서 북한 정권의 불안정성이 일부 초래되더라도, 핵 위협 제거라는 대의가 우선시될 수밖에 없다. ‘안정적이지만 핵을 가진 북한’은 최악의 시나리오다. 2.중국의 최우선 목표: ‘선(先) 안정’ 베이징의 계산법은 전혀 다르다. 중국에게 북한 문제는 ‘핵 문제’ 이전에 **‘지정학적 안보 문제’**다. 중국의 대북 정책 제1원칙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북한 정권의 급작스러운 붕괴를 막고, 한반도의 현상 유지를 통해 ‘안정’을 관리하는 것이다. 비핵화는 물론 달성하면 좋은 ‘부차적 목표’이지만, ‘안정’이라는 대전제를 위협하면서까지 추구할 목표는 결코 아니다. ‘불편하지만 안정적인 핵보유국 북한’은, ‘급변 사태로 붕괴된 북한과 그로 인해 미군과 국경을 맞대는 최악의 상황’보다 훨씬 선호되는 시나리오다. 이처럼 ‘비핵화’와 ‘안정’이라는 결코 양립하기 어려운 목표의 우선순위 차이가, 모든 대북 정책에서 양국이 사사건건 충돌하는 근본 원인이다. 제2부: 순망치한(唇亡齿寒) - 중국의 대북정책을 지배하는 1000년의 관성 중국이 왜 이토록 북한의 ‘안정’에 집착하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순망치한(脣亡齒寒)’, 즉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고사를 알아야 한다. 중국에게 북한은 자국의 핵심 이익을 보호하는 ‘입술’과 같은 ‘전략적 완충지대(Strategic Buffer Zone)’다. 1)역사적 트라우마와 지정학적 숙명 : 중국은 역사적으로 한반도를 통해 외세의 침략을 받아온 경험이 있다. 특히 70여 년 전 한국전쟁에서 수십만 명의 인민해방군을 희생시키며 북한 정권을 지켜낸 것은, 한반도에 친미(親美) 통일 국가가 들어서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주한미군과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직접 국경을 맞대는 상황은 중국이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안보 시나리오다. 2)급변 사태의 공포 : 북한 정권이 붕괴할 경우, 중국은 두 가지 악몽과 마주하게 된다. 첫째는 수백만 명에 달하는 북한 난민이 국경을 넘어 동북 3성으로 밀려 들어오는 대혼란이다. 둘째는 북한 내 핵무기와 핵물질이 통제 불능 상태에 빠져 외부로 유출될 수 있는 위험이다. 중국은 이러한 혼란을 감수하느니, 차라리 김정은 정권이 현상 유지를 하는 편이 훨씬 비용이 적게 든다고 판단한다. 이러한 ‘순망치한’의 전략적 관성은 중국 대북 정책의 유전자(DNA)와도 같아서, 북한이 아무리 말썽을 피우고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아도 중국이 결코 북한을 포기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된다. 제3부: 제재와 뒷문 - 반복되는 ‘중국 역할론’의 허와 실 북한이 핵실험이나 ICBM 발사와 같은 대형 도발을 감행할 때마다, 국제사회는 중국을 향해 ‘역할을 하라’고 촉구한다. 북한의 생명줄(원유, 식량)을 쥐고 있는 중국이 마음만 먹으면 북한을 굴복시킬 수 있다는 ‘중국 역할론’이다. 그러나 지난 30년의 역사는 이 기대가 얼마나 허상에 가까운지를 보여준다. 중국의 대북 제재 패턴은 늘 일정했다. 1)동참 : 국제사회의 압박에 못 이겨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진다. (역할을 하는 듯한 모습) 2)이완 : 그러나 제재가 북한 정권의 안정 자체를 위협할 수준에 이르면, 비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원유와 식량을 공급하는 등 ‘뒷문’을 열어준다. (숨통을 틔워줌) 3)명분 : ‘제재의 목적은 처벌이 아니라 대화 복귀’이며, ‘북한의 인도주의적 위기는 막아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운다. 이는 중국이 북한을 통제할 ‘의지’도 부족하지만, 때로는 ‘능력’에도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북한은 중국의 압박이 거세지면 러시아에 밀착하는 등, 강대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자율성을 확보해 온 오랜 경험이 있다. ‘중국 역할론’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번번이 실망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제4부: 2025년의 신(新) 변수들 - 미중 경쟁과 북·러 밀착 설상가상으로, 2020년대 들어 격화된 국제 정세는 한중의 ‘동상이몽’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1)신냉전 구도 속 북한의 전략적 가치 상승 : 미중 전략 경쟁이 격화되면서,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한 양국의 협력 공간은 사실상 사라졌다. 오히려 중국에게 북한은 미국의 신경을 긁고 한미일 동맹을 이완시키는 데 유용한 ‘전략적 자산’으로서의 가치가 더욱 커졌다. 중국은 이제 북한 비핵화 문제 해결을 돕는 ‘책임 있는 강대국’이 아니라, 미중 경쟁이라는 더 큰 체스판에서 북한을 ‘말(駒)’로 활용하는 ‘플레이어’가 되었다. 2)북·러 밀착이라는 새로운 변수 :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본격화된 북한과 러시아의 밀착은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북한은 중국 외에 러시아라는 또 다른 ‘뒷배’를 확보함으로써 대중(對中) 의존도를 낮추고 외교적 자율성을 높였다. 이는 북한의 생명줄을 쥐고 있다던 중국의 대북 레버리지를 상당 부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3)한미일 안보 협력 강화의 역설 :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한미일 3각 안보 협력의 강화는, 중국에게는 자신을 겨냥한 ‘아시아판 나토(NATO)’의 등장으로 인식된다. 이러한 안보 딜레마는 중국으로 하여금 북한이라는 ‘완충지대’의 필요성을 더욱 절감하게 만드는 역설적인 효과를 낳고 있다. 제5부. 결론 한반도 비핵화를 향한 한중의 ‘동상이몽’은 단순한 오해나 외교적 기싸움의 결과가 아니다. 이는 ‘생존(한국)’과 ‘패권(중국)’이라는 양국의 결코 타협할 수 없는 국가 핵심 이익이 정면으로 충돌한 결과물이다. 북한이 사실상의 핵보유국이 된 2025년 현재, 중국이 자국의 전략적 이익을 희생하면서까지 우리의 비핵화 목표에 동참해 줄 것이라는 기대는 환상에 가깝다. ‘중국을 설득하여 북한을 변화시킨다’는 지난 30년간의 접근법은 이제 그 유효기간이 끝났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중국의 협조’라는 변수가 아닌, ‘중국의 계산’이라는 상수 위에서 새로운 대북 전략을 짜야 하는 냉엄한 현실과 마주하고 있다. 같은 침대에서 다른 꿈을 꾸는 이웃과 함께, 어떻게 우리의 생존과 평화를 지켜나갈 것인가.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던져진 가장 무거운 질문이다.
    • 기획특집
    • 한중이슈
    2025-08-24
  • '늙어가는 중국'의 인구 절벽의 현실화
    2022년 1월 17일, 중국 국가통계국이 발표한 수치는 세계사에 기록될 하나의 변곡점이었다. 중국의 인구가 61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세로 돌아선 것이다. 마오쩌둥 시대의 대기근 이후 처음으로 14억 인구 대국의 신화가 무너져 내린 순간이었다. 1978년 개혁개방으로 세계를 향해 문을 연 사건만큼이나, 2022년의 인구 감소는 '중국의 시대'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조용한 총성이었다. 전문가들은 이 현상을 **'미부선로(未富先老)'**라는 네 글자로 요약한다. 선진국처럼 ‘부유해지기도 전에 먼저 늙어버리는’ 국가가 되었다는 뜻이다. 이는 인류 역사상 그 어떤 나라도 경험하지 못한 거대한 도전이다. 풍부하고 젊은 노동력을 바탕으로 '세계의 공장'이 되었던 ‘인구 보너스(Demographic Dividend)’ 시대는 이제 막을 내렸다. 2025년 8월 현재, 인구 감소는 일시적 현상이 아닌 돌이킬 수 없는 추세가 되었다. 중국이 왜 이처럼 가파른 인구 절벽에 직면하게 되었는지, 그 역사적 원죄와 현재의 사회·경제적 모순을 추적하고, '늙어가는 용'이 마주할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심층 진단한다. 제1부: 예고된 재앙 - '한 자녀 정책'이라는 이름의 원죄(原罪) 중국의 인구 문제를 논할 때, 1979년부터 2015년까지 무려 36년간 이어진 **‘한 자녀 정책(计划生育)’**을 빼놓을 수 없다. 이는 인구 폭발이 국가 발전을 저해할 것이라는 공포에서 시작된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하고 급진적인 인구 통제 실험이었다. 1. 정책의 명분과 잔혹한 현실 당시 덩샤오핑 지도부는 개혁개방의 성공을 위해 인구 증가를 억제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했다. ‘한 부부, 한 자녀’를 강제하는 이 정책은 강력한 국가 권력을 통해 집행되었다. 목표를 초과한 임신에 대해서는 강제 낙태와 불임 시술이 자행되었고, 이를 어길 시에는 막대한 벌금과 사회적 불이익이 가해졌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비극과 인권 유린이 발생했지만, ‘국가의 발전’이라는 대의 아래 묵인되었다. 2. 돌이킬 수 없는 유산: 비뚤어진 인구 구조 ‘한 자녀 정책’은 단기적으로 인구 증가를 억제하는 데는 성공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대가로 중국 사회에 깊은 상처와 기형적인 인구 구조를 남겼다. 1)'4-2-1' 가족 구조의 비극 : 한 명의 자녀가 부모 두 명과 조부모 네 명, 총 여섯 명을 부양해야 하는 압도적인 부담을 지게 되었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기형적인 부양비 구조다. 2)사라진 딸들, '성비 불균형' : 남아 선호 사상과 맞물려 여아에 대한 선택적 낙태가 만연했다. 그 결과, 현재 중국에는 결혼 적령기 남성이 여성보다 수천만 명 더 많은 심각한 성비 불균형이 초래되었다. 이는 결혼 자체를 어렵게 만드는 사회적 문제로 이어졌다. 3)'소황제(小皇帝)' 세대의 등장 : 과보호 속에서 자란 외동아들, 외동딸 세대는 이전 세대와는 다른 가치관을 갖게 되었고, 이는 현재 중국 사회의 특징을 규정하는 중요한 변수가 되었다. 결론적으로 ‘한 자녀 정책’은 미래 세대의 인구를 ‘빌려와’ 현재의 경제 성장을 이룩한 것과 같다. 이제 그 빚을 갚아야 할 청구서가 날아들기 시작한 것이다. 제2부: Z세대의 '출산 파업' - 왜 아이를 낳지 않는가? 2016년, 중국 정부는 뒤늦게 ‘한 자녀 정책’을 폐기하고 ‘전면적 두 자녀 정책’으로 전환했으며, 2021년에는 ‘세 자녀 정책’까지 허용했다. 그러나 출산율은 반등하지 않고 오히려 더 가파르게 추락했다. 이제 문제는 ‘낳지 못하게 하는’ 국가의 통제가 아니라, ‘낳을 수 없고, 낳고 싶지 않은’ 청년 세대의 자발적인 ‘출산 파업’으로 바뀌었다. 1. 감당할 수 없는 3대 압력: 집, 교육, 의료 오늘날 중국의 젊은이들은 결혼과 출산을 가로막는 **‘3개의 거대한 산(三座大山)’**에 짓눌려 있다. 1)주택 : 천정부지로 치솟은 대도시의 집값은 평범한 월급으로는 감당 불가능한 수준이다. ‘결혼하려면 집이 있어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 속에서, 집 문제는 결혼의 첫 번째 관문이자 가장 높은 장벽이 되었다. 2)교육 :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한 경쟁은 한국 이상으로 살인적이다. 조기 교육부터 시작해 각종 사교육에 들어가는 비용은 중산층 가정의 허리를 휘게 만든다. 2021년 정부가 사교육 시장을 초토화시킨 ‘솽젠(双减)’ 정책은 역설적으로 교육 불안감만 키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3)의료 : 사회 안전망이 부족한 상황에서, 자녀나 부모가 아플 경우 막대한 의료비 부담을 가계가 고스란히 져야 한다는 공포가 크다. 2. ‘996’와 ‘내권(内卷)’, 그리고 ‘탕핑(躺平)’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주 6일 일한다’는 의미의 ‘996’ 문화는 중국 청년들의 삶을 소진시키고 있다. 의미 없는 소모적 경쟁을 뜻하는 ‘내권(内卷)’ 속에서 이들은 번아웃에 내몰린다. 이러한 절망감 속에서 청년들은 차라리 모든 것을 포기하고 최소한의 생존만 추구하는 ‘탕핑(드러눕기)’을 택하거나, 더 나아가 **“우리가 마지막 세대(我们是最后一代)”**라며 출산을 통한 고통의 대물림을 거부하고 있다. 3. 깨어난 여성들의 선택 과거 세대와 달리,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고 경제적 자립을 이룬 현대 중국 여성들에게 결혼과 출산은 더 이상 필수가 아닌 ‘선택’의 문제가 되었다. 이들은 가부장적인 결혼 문화와 독박 육아의 현실 속에서 자신의 경력과 삶을 희생하기를 거부하며, 비혼과 비출산을 삶의 방식으로 적극적으로 선택하고 있다. 제3부: '인구 보너스'의 소멸 - 경제에 드리운 그림자 인구 구조의 역전은 ‘세계의 공장’이자 ‘세계의 시장’이었던 중국 경제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 1)노동력 부족과 제조업의 위기 : 값싸고 풍부한 노동력은 ‘메이드 인 차이나’의 핵심 경쟁력이었다. 그러나 노동 인구(15~59세)는 2012년을 정점으로 이미 10년 넘게 감소 중이다. 공장에서는 사람을 구하기 어려워지고 인건비는 급등하고 있다. 이는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의 입지를 약화시키는 요인이다. 2)소비 시장의 붕괴 : 젊은 인구는 소비의 주체다. 인구가 감소하고 고령화가 진행된다는 것은 아기용품부터 자동차, 아파트에 이르기까지 모든 내수 시장이 구조적으로 위축됨을 의미한다. 이는 ‘내수 중심 성장’을 외치는 중국 정부의 계획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3)연금 시한폭탄 : 현재 중국의 연금 제도는 ‘두 명의 노동자가 한 명의 퇴직자를 부양’하는 구조지만, 수년 내에 ‘한 명의 노동자가 한 명의 퇴직자를 부양’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연금 고갈은 피할 수 없는 미래이며, 이는 거대한 사회 불안의 뇌관이 될 수 있다. 제4부. 결론 및 제언 중국의 인구 위기는 부동산 부채나 미중 갈등보다 훨씬 더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도전이다. 다른 문제들은 정책적 노력으로 해결하거나 완화할 여지가 있지만, 인구라는 거대한 흐름은 한번 방향이 바뀌면 되돌리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뒤늦게 출산 장려를 위해 현금 보조금, 육아 휴직 확대 등 각종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청년들이 겪는 구조적인 압력을 해결하지 못하는 정책은 공허한 메아리가 될 뿐이다. 시진핑 주석이 최근 ‘새로운 시대의 결혼·출산 문화’를 강조하며 국가주의적 해법을 모색하는 듯한 움직임도 보이지만, 이는 오히려 젊은 세대의 더 큰 반발을 살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인구 보너스'에 기반한 중국의 기적적인 성장 시대는 끝났다는 사실이다. 앞으로의 중국은 줄어드는 노동력과 늘어나는 부양 부담 속에서 성장의 한계에 부딪힐 것이다. ‘중국의 꿈’은 '늙어가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현실의 벽 앞에서 그 빛이 바래고 있다. 인구는 운명이다. 그리고 중국은 지금, 그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의 내리막길에 들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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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이슈
    2025-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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