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보기
-
-
'한복' 민주 vs '상복' 국힘…국회 개회식 복장까지 대치양상
-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1일 열린 정기국회 개회식에 각각 한복과 상복을 입고 참석해 극명하게 갈린 정국 인식을 복장으로도 드러냈다. 민주당·조국혁신당 의원들은 우원식 국회의장의 제안에 따라 한복을 입었지만, 국민의힘 의원들은 검은색 정장에 '근조(謹弔) 의회 민주주의' 리본을 달고 개회식에 참석했다. 본회의장은 형형색색의 한복을 입은 민주당 의원들과 검은 상복을 입은 국민의힘 의원들로 양분됐다. 협치의 공간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양극화한 여야의 대치 구도를 고스란히 보여준다는 평이 나왔다. 민주당과 대조적으로 검은 상복을 착용한 국민의힘 의원들은 무거운 표정으로 본회의장에 나왔다. 최근 자당이 추천한 인권위원 선출안 부결, '방송 3법'과 노란봉투법 처리 등에 항의하는 뜻을 내보이고자 상복을 입기로 했다. 우 의장의 개회사 이후 대정부질문 관련 국무총리·국무위원 및 정부위원 출석요구 안건 등이 상정된 후 본회의가 종료됐다.
-
- 정치경제
- 정치
-
'한복' 민주 vs '상복' 국힘…국회 개회식 복장까지 대치양상
-
-
'차이리(彩礼)', 중국 청년들을 결혼 앞에서 울리는 '하늘 높은' 신붓값
- "차와 집은 기본이고, 차이리(彩礼) 18만 8천 위안(약 3,500만 원), 그리고 '삼금(三金)'까지… 아들 장가보내려다 집안 기둥뿌리가 뽑히게 생겼습니다." 최근 중국의 한 농촌 지역에 사는 50대 부모가 언론에 토로한 한탄이다. 아들의 결혼을 위해 평생 모은 돈을 털고도 모자라 '차이리 대출'까지 알아보고 있다는 이들의 이야기는, 비단 이 가족만의 특별한 사연이 아니다. 지금 중국 대륙에서는 '차이리'라 불리는 결혼 지참금 관습이 수많은 청년과 그 부모들을 깊은 고민에 빠뜨리고 있다. 본래 신부를 키워준 처가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던 아름다운 전통이, 이제는 결혼을 가로막는 거대한 장벽이자 사회적 문제로 변질된 것이다. 오늘일보에서는 중국 청년들의 가장 큰 현실적 고민이 된 차이리 현상을 통해, 급변하는 중국 사회의 명암을 들여다본다. 차이리의 역사는 수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중국에서는 신랑 측이 신부 측에 비단, 가축, 예물 등을 보내 정혼의 신표로 삼고, 귀한 딸을 내어주는 것에 대한 감사를 표했다. 이는 신랑의 경제적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딸이 시집가서 고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중요한 의식이었다. 즉, 그 시작은 '거래'가 아닌 '정성과 예의'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중국에서 차이리의 의미는 완전히 변질되었다. 특히 일부 농촌 지역과 중소 도시를 중심으로 차이리 액수가 천정부지로 치솟으며, '하늘 높은 가격의 차이리'라는 뜻의 '톈자차이리(天价彩礼)'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지역에 따라 편차는 크지만, 허난성, 장시성 등 일부 지역에서는 우리 돈으로 1억 원에 달하는 차이리를 요구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평균적으로 작게는 3천만원부터 많겠는 4억원까지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도시의 아파트, 자동차, 그리고 '삼금(三金)'이라 불리는 금목걸이, 금팔찌, 금반지 세트는 별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결혼 한 번에 30년 가난이 시작된다(婚一次, 穷三十年)"는 자조 섞인 말이 유행할 정도다. 아름다운 전통이 어떻게 젊은 세대를 짓누르는 괴물이 되었을까? 전문가들은 크게 두 가지 구조적 원인을 지목한다. 첫 번째는 심각한 성비 불균형이다. 1979년부터 30년 넘게 이어진 '한 자녀 정책'과 남아선호사상이 결합하면서, 중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남초 현상이 심각한 나라가 되었다. 현재 중국의 미혼 남성은 미혼 여성보다 약 3,000만 명 이상 많은 것으로 추산된다. 신붓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가, 신부 측의 협상력을 극단적으로 높여 차이리 액수를 끌어올리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된 것이다. 두 번째는 중국 특유의 '체면(面子, 몐쯔) 문화'와 과시적 소비 풍조다. "내 딸이 남의 딸보다 못한 대우를 받을 수 없다"는 신부 측 부모의 체면과, "이 정도는 해줄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신랑 측의 체면이 맞물리면서 차이리 경쟁에 불이 붙었다. 여기에 SNS의 발달로 남들의 결혼 준비 과정을 속속들이 알게 되면서, '상대적 박탈감'과 '비교 심리'가 더해져 차이리의 인플레이션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사랑보다 돈? 결혼을 막는 사회 문제로 과도한 차이리는 수많은 사회적 부작용을 낳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청년들이 결혼 자체를 기피하거나 포기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천문학적인 차이리를 감당할 수 없어 결혼을 미루거나 결국 헤어지는 커플들이 속출하고 있다. 결혼 과정이 신랑 측과 신부 측의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경우도 다반사다. 차이리 액수를 흥정하는 과정에서 양가의 자존심 대결로 비화되어 결국 파혼에 이르고, 결혼 후에도 시댁이 무리해서 마련한 차이리 때문에 부부 관계가 삐걱거리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는 '결혼은 사랑이 아닌 조건과 돈의 결합'이라는 냉소적인 인식을 사회 전반에 확산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 정부도 팔을 걷어붙였다. 중앙정부는 수년 전부터 '결혼 풍속 개혁'을 외치며 과도한 차이리와 사치스러운 결혼 문화를 '사회적 병폐'로 규정하고, 각 지방 정부에 이를 개선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일부 지방에서는 '차이리 상한액'을 권고하거나, 간소한 결혼식을 올리는 커플에게 보조금을 주는 등의 정책을 펴기도 했다. 하지만 수천 년간 이어진 관습이자, 지극히 사적인 가족 간의 약속을 정부가 통제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 실효성은 미미하다는 비판이 많다. 중국의 차이리 문제는 비단 강 건너 불구경만은 아니다. 한국 사회 역시 예물과 예단, 집 장만 문제 등 결혼을 둘러싼 경제적 부담과 갈등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결혼이 당사자들의 사랑만으로는 완성되기 어려운 현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부모 세대의 경제력과 체면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모습은 놀라울 정도로 닮아있다. 차이리 현상은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룬 사회가 전통적 가치와 현대적 욕망 사이에서 어떤 혼란을 겪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가족을 중시하는 전통이, 체면과 과시욕이라는 현대적 욕망과 만나 기형적으로 변질된 것이다. '얼마짜리' 차이리가 오갔는지가 한 사람의 가치를 대변하는 척도가 되어버린 현실. 이는 우리에게 '결혼의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한번 던지고 있다.
-
- 기획특집
- 세상만사
-
'차이리(彩礼)', 중국 청년들을 결혼 앞에서 울리는 '하늘 높은' 신붓값
-
-
'아Q정전', 죽지 않고 우리 곁을 떠도는 망령의 이름
- 한 번도 이겨본 적 없는 자의 '승리' 기록 현실의 문제를 직시하지 않고, 자기합리화를 통해 실패를 정신적으로 포장하려는 태도를 비판 의학을 공부하다 "병든 육체를 고치는 것보다, 병든 정신을 고치는 것이 더 시급하다"며 붓을 든 작가. 중국 현대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루쉰(魯迅). 그의 대표작 '아Q정전(阿Q正傳)'은 1921년 발표된 이래, 지난 100년간 중국인의 자화상이자, 때로는 동아시아인 모두의 부끄러운 내면을 비추는 거울로 기능해왔다. 주인공 '아Q'는 성(姓)도, 이름도, 심지어 고향조차 불분명한 최하층 날품팔이꾼이다. 하지만 그는 중국 역사상 그 어떤 황제나 영웅보다도 유명한 인물이 되었다. 그가 창시한 '정신승리법(精神勝利法)'이라는 기이한 자기 위안 방식 때문이다. 이 소설은 아Q라는 한 인물의 우스꽝스럽고도 비참한 일생을 통해, 봉건 왕조가 무너지고 혁명의 열기가 들끓던 시대의 한복판에서조차 변하지 않았던 중국 민중의 노예근성과 자기기만을 통렬하게 고발한다. 1부: 웨이주앙의 천덕꾸러기, 아Q 아Q는 웨이주앙(未庄)이라는 가상의 농촌 마을에 사는 막노동꾼이다. 그는 집도 절도 없이 사당에 얹혀살며, 마을의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하지만 누구에게도 존중받지 못한다. 동네 건달들에게 얻어맞는 것은 그의 일상이다. 하지만 아Q에게는 자신만의 비범한 대처법이 있다. 바로 '정신승리법'이다. 건달에게 실컷 두들겨 맞고 난 뒤, 그는 침을 뱉으며 속으로 생각한다. '나는 아들놈에게 맞은 셈이다. 요즘 세상은 정말 막돼먹었어...' 이렇게 생각하면, 맞은 것은 그이지만 정신적으로는 그가 승리자가 된다. 도박판에서 돈을 잃으면 자신의 뺨을 때리며, '때린 놈'이 된 자신을 '맞은 놈'보다 우월하다고 여긴다. 그는 현실의 모든 패배와 굴욕을 이 기상천외한 정신승리법을 통해 심리적 승리로 둔갑시키며 살아간다. 2부: 추락하는 자의 헛된 욕망 자신보다 약한 자에게는 한없이 강하고, 강한 자에게는 비굴한 아Q의 삶은 연이은 굴욕으로 점철된다. 그는 마을의 젊은 비구니를 희롱하며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다 오히려 웃음거리가 되고, 마을의 지주인 자오 나리의 집 하녀에게 수작을 걸다가 '불륜을 저지르려 했다'는 누명을 쓰고 마을에서 쫓겨나다시피 한다. 갈 곳이 없어진 그는 성안으로 들어가 도둑질을 배워서 돌아온다. 갑자기 돈과 옷이 생긴 그를 보고, 마을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하며 잠시나마 대우해준다. 생애 처음으로 받아보는 존중에 아Q는 의기양양해지지만, 그의 허세는 오래가지 못한다. 3부: 혁명, 그리고 너무나 허무한 죽음 1911년, 청나라를 무너뜨린 신해혁명의 바람이 웨이주앙 마을까지 불어온다. 아Q에게 '혁명'은 어려운 사상이 아니었다. 그저 '내 맘에 드는 것은 다 내 것'이 되는, 모든 것을 뒤엎을 수 있는 신나는 기회일 뿐이었다. 그는 자신이 혁명당원이 된 것처럼 행세하며, 평소 자신을 무시했던 자오 나리의 집을 약탈할 꿈에 부푼다. 하지만 혁명은 아Q의 편이 아니었다. 마을의 지주와 유학자들은 하루아침에 감투를 바꿔 쓰고 '혁명 정부'를 자처하며, 기존의 기득권을 그대로 유지한다. 그들은 아Q 같은 부랑자는 혁명에 참여할 자격이 없다며 그를 철저히 배제한다. 혁명의 주인이 되고 싶었던 아Q는, 혁명 이후에도 여전히 이방인이자 구경꾼일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자오 나리의 집이 진짜 도적떼에게 습격당한다. 혁명당원이 되겠다며 설쳤던 아Q는 완벽한 희생양이 된다. 그는 졸지에 강도죄의 주범으로 몰려 관아로 끌려간다. 글을 모르는 그는 자신이 무엇에 서명하는지도 모른 채, 붓을 잡고 동그라미를 그리라는 말에 열심히 원을 그린다. 수박씨처럼 삐뚤어진 원을 보며, '내 인생에 오점을 남겼다'고 한탄하는 그의 모습은 비극적이면서도 우스꽝스럽다. 결국 그는 총살형을 선고받는다. 형장으로 끌려가는 수레 위에서, 그는 자신을 구경하는 마을 사람들의 무심한 눈빛을 본다. 그의 머릿속에 마지막으로 스친 생각은 '총살은 참수보다 구경거리가 못 될 텐데'라는 실없는 걱정뿐이었다. 그는 그렇게 자신이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한 시대의 희생양이 되어 허무하게 죽는다. 마을 사람들은 싱거운 구경거리였다며 불평하며 흩어진다. 루쉰이 던진 세 가지 날카로운 질문 하나, '정신승리법'은 누구의 것인가? 아Q의 정신승리법은 단순히 한 개인의 어리석은 성격이 아니다. 루쉰은 이를 통해 아편전쟁 이후 서구 열강에 연이어 패배하면서도, '중화사상'이라는 허울 속에 갇혀 자신들의 패배를 직시하지 못했던 당시 중국 전체의 정신 상태를 비판했다. 현실의 패배를 인정하고 변화를 모색하는 대신, 과거의 영광에 기대어 정신적인 자위를 하는 것으로는 결코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는 통렬한 경고였다. 둘째, 혁명은 무엇을 바꾸었는가? '아Q정전'은 신해혁명에 대한 가장 날카로운 문학적 비판이다. 루쉰이 보기에, 신해혁명은 황제의 성을 바꾸고 깃발의 색깔을 바꿨을 뿐, 민중의 삶과 의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한 '미완의 혁명'이었다. 지배층은 이름만 바꿔 기득권을 유지했고, 아Q와 같은 민중은 혁명에서 철저히 소외된 채 구경꾼으로 남거나 희생양이 될 뿐이었다. 셋째, 구경꾼은 죄가 없는가? 아Q를 괴롭히고, 그의 허세에 잠시 빌붙었다가, 그의 죽음을 무심하게 구경하는 웨이주앙의 마을 사람들은 이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루쉰이 의학을 포기한 결정적인 이유도, 처형당하는 중국인을 동포들이 무감각하게 구경하는 모습을 담은 슬라이드를 보고 나서였다. 그는 병든 개인을 치료하는 것보다, 이처럼 우매하고 냉담한 '군중'의 영혼을 깨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었다. 아Q의 비극은 그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방관하고 즐긴 군중 모두의 비극인 셈이다. 100년이 지나도 살아있는 '아Q 정신' '아Q 정신'이라는 말은 오늘날에도 한국과 중국에서 공공연히 쓰인다. 현실의 문제를 직시하지 않고, 자기합리화를 통해 실패를 정신적으로 포장하려는 태도를 비판할 때 사용되는 관용구가 된 것이다. 100년 전 소설 속 인물이 이토록 생생한 현재성을 갖는다는 사실은 놀랍다. 이는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는 때로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기보다는, "우리가 원래 더 우월하다"는 식의 정신적 자부심에 기대어 현실의 어려움을 외면하려 하지는 않는가? '아Q정전'은 민족주의나 국가주의가 자기기만으로 흐를 때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경고하는, 우리 모두를 향한 예방주사와도 같다. 우리 안의 '아Q'를 돌아보게 하는 거울 '아Q정전'은 유쾌한 소설이 아니다. 오히려 읽는 내내 불편하고, 때로는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들키는 듯한 부끄러움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위대한 고전은 우리에게 편안함이 아닌, 성찰의 계기를 제공한다. 루쉰은 100년 전 아Q라는 인물을 통해 낡은 중국에 사망 선고를 내렸다. 아Q는 총살당했지만, 현실을 외면하고 허상 속으로 도피하려는 그의 '정신'은 여전히 우리 주변을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
- 엔터테인
- 책
-
'아Q정전', 죽지 않고 우리 곁을 떠도는 망령의 이름
-
-
'호우시절', 좋은 비처럼 스며드는 잊었던 첫사랑의 기억
- 사랑에도 '알맞은 때'가 있다 당신의 '호우시절'은 언제였나요? 사랑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어쩌면, 가장 필요한 순간에 가장 알맞게 내려주는 '좋은 비(好雨)'와 같은 것이 아니겠냐고.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의 유명한 시 '춘야희우(春夜喜雨)'의 첫 구절인 '好雨知時節(좋은 비는 시절을 안다)'에서 따왔다. 두보의 시라는 문학적 감성과 청두라는 역사적 공간을 통해 두 남녀의 인연과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낸, 한 폭의 수묵화 같은 수작이다. 영화 속에서 두 주인공이 두보초당(두보가 머물던 초가집을 복원한 기념관)에서 재회하고, 비 내리는 청두의 서정적인 풍경이 우리를 설레게 한다. 한국의 정우성 배우와 중국의 고원원 배우가 주연을 맡아, 중국 쓰촨성의 성도인 청두(成都)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잔잔한 멜로드라마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 등을 통해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미세한 감정의 결을 스크린에 아로새겨 온 허진호 감독. 그가 중국의 대문호 두보의 시를 품고, 배우 정우성, 고원원과 함께 만들어낸 '호우시절'은 한 편의 서정시와 같은 영화다. 이 영화에는 극적인 사건이나 폭발하는 갈등이 없다. 대신, 잊었던 감정이 서서히 되살아나는 과정의 어색한 설렘과, 상대의 아픔을 조심스럽게 보듬는 어른스러운 배려가 짙은 안개와 비의 도시, 청두의 풍경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영화는 묻는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어쩌면, 가장 필요한 순간에 가장 알맞게 내려주는 '좋은 비(好雨)'와 같은 것이 아니겠냐고. 시절을 알아챈 좋은 비처럼, 다시 만난 우리 ... 1부: 낯선 도시 익숙한 얼굴 건축가인 박동하(정우성 분)는 2008년 쓰촨성 대지진 피해 복구 지원을 위한 출장으로 중국 청두를 찾는다. 프로젝트의 책임자로서 바쁜 일정을 보내던 중, 그는 잠시 시간을 내어 청두의 명소인 '두보초당'을 찾는다. 바로 그곳에서, 그는 믿을 수 없는 사람과 마주친다. 미국 유학 시절, 가장 친한 친구였지만 미처 마음을 전하지 못했던 메이(고원원 분). 그녀는 이곳 두보초당에서 유창한 한국어로 관광객들을 안내하는 가이드로 일하고 있었다. 몇 년 만의 재회는 반가움과 동시에 어색함이 감돈다. 그들은 저녁 식사를 약속하고, 청두의 명물인 매운 사천요리를 먹으며 조심스럽게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동하는 아직 미혼이고, 메이는 "결혼했다"고 짧게 답한다. 2부: 어긋났던 기억의 조각들 메이는 동하를 위해 기꺼이 청두의 가이드가 되어준다. 그들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시내를 누비고, 찻집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유학 시절의 추억을 꺼내놓는다. 그 과정에서 과거 두 사람의 어긋난 기억이 드러난다. 동하는 당시 메이에게 여자친구가 있다고 오해했고, 메이는 동하가 자신에게 고백해주기만을 기다렸었다. 사랑했지만, 용기가 없었고 때가 맞지 않아 스쳐 지나가야만 했던 풋사랑의 기억이 두 사람 사이에 아련하게 되살아난다. 동하는 메이를 향한 자신의 감정이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깨닫는다. 하지만 '결혼한' 그녀에게 더 이상 다가설 수 없음을 알기에, 그는 친구라는 이름 뒤에 자신의 마음을 숨긴다. 3부: 그녀의 비밀 그리고 그의 위로와 함께 시간을 보낼수록, 동하는 메이가 어딘가 깊은 슬픔에 잠겨 있음을 느낀다. 어느 날 저녁, 동하는 메이의 집을 방문하게 되고, 그곳에서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메이의 남편은 2년 전, 쓰촨성 대지진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것. 그녀는 남편을 잃은 깊은 슬픔에서 아직 헤어나오지 못한 채, 과거의 시간에 갇혀 살고 있었다. "결혼했다"는 그녀의 말은, 새로운 인연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막이었던 것이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동하는 혼란에 빠진다. 그녀가 유부녀가 아니라는 안도감도 잠시, 그가 감당해야 할 것은 남편의 빈자리가 아니라, 그녀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거대한 슬픔의 무게임을 깨닫는다. 그는 섣불리 다가서거나 그녀를 위로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묵묵히 그녀의 곁을 지키며 그녀가 스스로 슬픔을 마주하고 걸어 나올 수 있도록 기다려준다. 4부: 좋은 비는 시절을 안다 (好雨知時節) 동하의 출장 기간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날이 다가온다. 떠나기 전날 밤, 두 사람은 함께 술을 마신다. 동하는 메이에게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진심을 전하고, 메이는 처음으로 동하의 어깨에 기대어 참았던 눈물을 흘린다. 다음 날 아침, 공항으로 향하던 동하는 차를 돌린다. 그는 메이에게 돌아가 "조금 더 있다 가겠다"고 말한다. 그의 갑작스러운 결정에 메이는 놀라지만, 이내 옅은 미소를 짓는다. 영화는 두 사람이 다시 만나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어떤 확실한 결말도 보여주지 않은 채 막을 내린다. 마치 두보의 시처럼, 좋은 비는 만물을 소리 없이 적시지만, 그 비가 어떤 꽃을 피워낼지는 오직 시간만이 알 수 있다는 여운을 남기면서. 동하의 귀환은 메이의 얼어붙었던 마음에 내리는 '호우(好雨)', 즉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단비였던 것이다. 허진호표 멜로드라마의 정수 허진호 감독은 인물들의 감정을 대사가 아닌, 분위기와 눈빛, 그리고 작은 몸짓으로 쌓아 올리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닌 연출가다. '호우시절' 역시 마찬가지다. 두 주인공은 "사랑한다"거나 "그립다"는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대신, 함께 자전거를 타는 모습, 말없이 밥을 먹는 모습, 비를 피해 처마 밑에 함께 서 있는 모습 등을 통해 그들의 감정적 교류를 섬세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절제된 연출은 관객들이 인물들의 감정선을 조용히 따라가며 더 깊이 몰입하게 만든다. 도시 '청두'가 주는 서정성 이 영화에서 '청두'는 단순한 배경이 아닌, 제3의 주인공이다. 늘 안개가 낀 듯 흐리고, 예고 없이 비가 내리는 청두의 날씨는 두 주인공의 내면 풍경과 완벽하게 조응한다. 짙은 녹음의 대나무 숲이 우거진 두보초당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시민들의 여유로운 일상이 엿보이는 찻집 등은 낯선 도시에서의 만남이 주는 설렘과 아련함을 배가시킨다. 영화는 청두라는 도시의 매력을 담아낸 가장 아름다운 여행 엽서이기도 하다. 두보의 시, 영화의 영혼이 되다 "좋은 비는 시절을 알아, 봄이 오면 내려주네(好雨知時節, 當春乃發生)." 영화의 제목이자 주제인 두보의 시 '춘야희우'는 '타이밍'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유학 시절,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했지만 그 시절은 '좋은 때'가 아니었다. 하지만 몇 년이 흘러, 남편의 죽음이라는 깊은 상처를 가진 메이에게 동하가 다시 나타난 지금이, 어쩌면 그녀의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할 '알맞은 때'일지도 모른다. 영화는 두보의 시를 통해, 사랑이란 격정이 아니라 '시절인연(時節因緣)'임을 이야기한다. '호우시절'은 한국 감독이 중국의 도시와 문화를 얼마나 깊이 있고 존중하는 태도로 담아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이상적인 한중 합작 영화의 사례다. 영화는 중국을 신비롭거나 이국적인 시선으로 대상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두보의 시와 쓰촨성 대지진이라는 역사적 상처를 자연스럽게 녹여내며,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을 이야기하는 무대로 활용한다. 특히, 대지진 복구 지원을 위해 청두를 찾은 동하의 설정은 의미심장하다. 이는 국가적 재난 앞에서 서로를 돕는 연대의식을 상징하며, 두 주인공의 만남에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선 '치유'와 '회복'의 의미를 부여한다.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를 떠나, 문화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한 진정한 교류가 어떤 모습일 수 있는지를 이 영화는 조용히 증명한다. 당신의 '호우시절'은 언제였나요? '호우시절'은 화려하지 않지만 은은한 향기가 오래 남는 차(茶)와 같은 영화다. 성급한 결론 대신, 인물들의 감정이 익어가는 과정을 묵묵히 지켜보며 기다림의 미학을 보여준다. 영화를 보고 나면, 누구나 마음속에 간직한 풋풋했던 첫사랑의 기억과 아쉽게 스쳐 지나간 인연들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
- 엔터테인
- 영화
-
'호우시절', 좋은 비처럼 스며드는 잊었던 첫사랑의 기억
-
-
'나는 약신이 아니다', 돈 없는 게 죄가 되는 세상을 향한 통쾌한 외침
- "그가 유죄라는 건 압니다. 하지만 법이 꼭 정답은 아니지 않습니까?" 중국 대륙을 뒤흔든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상업 영화의 문법을 따르면서도 날카로운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냈다. 2018년 여름, 중국 영화계는 '나는 약신이 아니다(我不是药神)'라는 영화 한 편으로 발칵 뒤집혔다. 이 영화는 단순히 박스오피스를 점령하는 데 그치지 않고, 중국 전역에 '의료 개혁'이라는 거대한 사회적 담론을 촉발시켰다.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관객들은 극장 안에서 함께 웃고 울었으며, 극장 밖에서는 웨이보 등 SNS를 통해 영화가 제기한 문제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급기야 리커창 총리가 직접 나서서 "영화가 지적한 의약품 가격 문제를 해결하라"고 지시하기에 이르렀다. 어떻게 영화 한 편이 이토록 거대한 파장을 일으킬 수 있었을까? '나는 약신이 아니다'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돈 없고 힘없는 환자들의 절박한 생존 투쟁과, 그들을 돕기 위해 나선 한 소시민의 위대한 변화를 코미디와 드라마의 절묘한 결합으로 그려낸 기적 같은 영화다. 돈에 눈먼 밀수꾼, 환자들의 영웅이 되다 돈이 절실했던 한 남자 주인공 청융은 상하이에서 인도산 정력제를 파는, 별 볼 일 없는 중년 남성이다. 이혼한 아내는 아들을 데리고 이민을 가려 하고, 가게 월세는 밀려 있으며, 요양원에 계신 아버지는 수술비가 급하다. 한마디로 돈이 절실한 인생이다. 어느 날, 두꺼운 마스크를 쓴 한 남자가 그를 찾아온다. 만성 골수성 백혈병 환자인 뤼서우이다. 그는 스위스에서 수입하는 정품 치료제 '글리벡'이 한 달에 4만 위안(약 700만 원)에 달해, 자신과 같은 환자들은 약을 먹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다고 호소한다. 그는 청융에게 효과는 동일하지만 가격은 20분의 1에 불과한 인도산 복제약(제네릭)을 밀수해달라고 간청한다. 처음에는 감옥에 갈까 두려워 거절했던 청융. 하지만 아버지의 수술비를 마련할 길이 막막해지자, 결국 돈을 벌기 위해 위험한 제안을 받아들인다. 인도에서 복제약을 구해 온 청융은 환자들에게 약을 유통하기 위해 어설픈 팀을 꾸린다. 그를 찾아왔던 뤼서우이, 딸의 약값을 벌기 위해 폴댄서로 일하는 강인한 싱글맘 류쓰후이, 시골 출신의 순박하지만 힘센 청년 '황마오(노란 머리)', 그리고 영어를 할 줄 아는 류 목사까지. 각자의 절박한 사연을 가진 이들은 함께 약을 팔기 시작한다. 청융의 사업은 대성공을 거둔다. 그는 막대한 돈을 벌어 번듯한 사업가로 변신하고, 환자들은 값싼 약 덕분에 생명을 연장한다. 환자들은 청융을 '약의 신(药神)'이라 부르며 떠받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짝퉁 약'을 유통하는 그의 행위는 명백한 불법이었다. 정품 약을 만드는 스위스 제약회사의 압력과 가짜 약 사기꾼까지 등장하면서 경찰의 수사망은 점점 좁혀온다. 겁이 난 청융은 마침 더 비싼 값에 합법적인 중국 총판권을 제안한 제약사 대표에게 유통권을 넘기고, 팀을 해체한 뒤 손을 털어버린다. 그는 환자들의 배신감 어린 눈빛을 외면한 채, 그동안 번 돈으로 섬유 공장을 차려 합법적인 사업가로 변신한다. 1년 뒤, 청융은 뤼서우이를 다시 만난다. 약값이 다시 오르자 그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뤼서우이는 병세 악화와 생활고를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의 장례식장에서, 청융은 절규하는 환자들의 원망과 마주한다. 친구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은 청융은 병원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그는 약을 구하지 못해 죽어가는 환자들의 절망적인 모습을, 그리고 위독해진 류쓰후이의 어린 딸을 보며 깊은 죄책감에 휩싸인다. 그는 다시 인도로 날아간다. 그리고 예전보다 더 오른 가격에 약을 사 와, 자신이 샀던 가격 그대로 환자들에게 팔기 시작한다. 심지어 약값이 더 오르자, 자신의 섬유 공장 돈까지 쏟아부으며 손해를 보면서 약을 공급한다. 돈을 벌기 위해 밀수를 시작했던 이기적인 소시민이, 이제는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며 환자들을 구하는 진정한 '약신'으로 거듭난 것이다. 하지만 그의 선행은 오래가지 못한다. 경찰의 추적이 계속되고, 그를 돕던 '황마오'는 청융을 탈출시키기 위해 차를 몰고 경찰을 유인하다가 교통사고로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다. 결국 청융은 체포된다. 재판정에는 그가 구해낸 수백 명의 백혈병 환자들이 몰려와 그의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제출한다. 그를 쫓던 형사마저 그의 편에 서서 변론한다. "그가 유죄라는 건 압니다. 하지만 법이 꼭 정답은 아니지 않습니까?" 청융은 징역형을 선고받고 교도소로 이송된다. 그가 탄 호송 버스가 도로를 지날 때, 길가에는 수많은 백혈병 환자들이 그를 배웅하기 위해 늘어서 있다. 그들은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감염의 위험을 막아주던 마스크를 벗고, 자신들의 영웅에게 경의를 표하며 조용히 고개를 숙인다. 사회를 움직인 영화의 힘 코미디와 드라마의 절묘한 균형 '나는 약신이 아니다'의 가장 큰 미덕은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관객을 끌어들이는 대중적 재미를 놓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영화의 전반부는 어설픈 인물들이 모여 밀수를 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소동을 그리며 케이퍼 무비(caper movie)의 유쾌함을 선사한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인물들의 비극적인 사연이 드러나면서, 영화는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최루성 드라마로 전환된다. 이 영리한 장르의 변주는 관객들이 영화의 사회적 메시지를 거부감 없이, 그리고 더욱 깊이 받아들이게 만든다. 이기적 소시민, 영웅이 되다 주인공 청융은 처음부터 정의로운 인물이 아니다. 오히려 돈을 밝히고 책임감도 없는, 지극히 속물적인 인물에 가깝다. 그렇기에 그의 변화는 더욱 설득력 있고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그는 위대한 이념 때문이 아니라, 바로 곁에서 고통받는 이웃의 죽음과 눈물을 목격하면서 조금씩 변해간다. 그의 영웅성은 평범한 사람의 마음속에 잠재된 '측은지심(惻隱之心)'이 행동으로 발현된 결과다. 영화, 현실의 벽을 넘다 이 영화의 가장 놀라운 지점은 스크린 밖 현실에 미친 영향력이다. 이 영화는 중국 사회에 "생존권과 특허권 중 무엇이 우선하는가?", "법은 가난한 사람들을 보호하고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수억 명의 관객이 이 질문에 공감했고, 이는 거대한 사회적 여론으로 형성되었다. 결국 중국 정부는 영화 개봉 직후 항암제에 대한 관세를 철폐하고, 수십 종의 비싼 항암제를 의료보험 적용 대상에 포함시키는 등 신속한 정책 변화를 보여주었다. 예술이 현실을 바꾸는 기적을 실현한 것이다. 한중 양국의 '사회고발 영화' 계보 '나는 약신이 아니다'를 본 한국 관객이라면 자연스럽게 '변호인', '택시운전사', '1987'과 같은 영화들을 떠올릴 것이다. 평범했던 소시민이 시대적 사건을 겪으며 각성하고, 불의한 시스템에 저항하는 인물로 거듭나는 서사는 한국 영화의 성공 공식 중 하나이기도 하다. 과거 장이머우, 천카이거 등 '5세대 감독'들이 과거의 역사를 은유적으로 비판했던 것과 달리, '나는 약신이 아니다'는 동시대 중국 사회의 가장 민감한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이는 중국 영화계에도 대중의 공감을 얻는 '사회고발 영화'가 중요한 장르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부조리한 현실을 바꾸고 싶어 하는 대중의 열망이 한국과 중국, 두 나라에서 각기 다른 소재를 통해 스크린 위에서 발현되고 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로운 현상이다. 재미와 감동, 그리고 세상을 바꾼 용기 '나는 약신이 아니다'는 잘 만든 상업 영화가 가질 수 있는 모든 미덕을 갖춘 작품이다. 관객을 웃고 울게 만드는 탄탄한 스토리, 생생하게 살아있는 캐릭터, 그리고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사회적 메시지까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다. 이 영화는 돈이 생명보다 우선시되는 비정한 자본주의의 현실 속에서, 평범한 한 사람이 시작한 선한 의지가 얼마나 큰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감동적인 증거다. 재미와 감동, 사회적 메시지를 모두 잡은 웰메이드 영화를 보고 싶은 분. 돈보다 생명이 중요하다는 당연한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은 분. 그리고 영화 한 편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기적을 믿고 싶은 모든 분께 이 영화를 강력히 추천한다.
-
- 엔터테인
- 영화
-
'나는 약신이 아니다', 돈 없는 게 죄가 되는 세상을 향한 통쾌한 외침
-
-
'화양연화(花樣年華)',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의 스쳐 가는 엇갈림
- 침묵과 여백의 미학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없이, '화양연화'는 가장 깊은 사랑의 감정을 전달한다. 왕자웨이 감독의 2000년 작 '화양연화'는 친절한 영화가 아니다. 흔한 사랑 영화처럼 기승전결이 명확하지도, 주인공들의 감정을 속 시원히 터뜨리지도 않는다. 이 영화는 하나의 '이야기'라기보다는 하나의 '분위기'이자 '감정' 그 자체에 가깝다. 1960년대 홍콩의 비좁은 아파트, 눅눅한 공기, 흔들리는 카메라, 그리고 스쳐 가는 두 남녀의 눈빛. 왕자웨이 감독은 이 모든 것을 정교하게 조율하여, 시작조차 못 하고 끝나버린 한 사랑의 가장 애틋하고 아름다운 순간을 스크린에 영원히 박제했다. 영화의 제목 '화양연화'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시절'을 뜻하지만, 영화는 그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 얼마나 쓸쓸하고 아픈 기억으로 남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고혹적인 역설이다. 시작도 끝도 없었던 그들의 이야기 1부: 우연, 혹은 필연 (1962년 홍콩) 1962년 홍콩의 한 상하이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공동주택. 같은 날, 두 가구가 이웃하여 이사를 온다. 무역회사 비서로 일하는 아내 소려진(장만옥 분)과 그녀의 남편, 그리고 신문사 편집기자인 차우(양조위 분)와 그의 아내. 이삿짐이 뒤섞이고, 서로의 하인들이 인사를 나누는 어수선함 속에서 두 사람, 소려진과 차우의 인연이 시작된다. 그들의 배우자들은 출장이 잦다. 영화는 소려진의 남편과 차우의 아내의 얼굴을 단 한 번도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그들은 목소리와 뒷모습으로만 존재하는 유령 같은 존재다. 홀로 남겨진 소려진과 차우는 좁은 복도와 계단, 국수를 사러 가는 길목에서 끊임없이 마주치지만, 나누는 것은 예의 바른 목례와 짧은 인사뿐이다. 2부: 조심스러운 확신, 슬픈 비밀의 공유 어느 날, 차우는 자신의 아내가 소려진의 남편과 똑같은 넥타이를 가지고 있음을 발견한다. 비슷한 시기, 소려진은 차우의 아내가 자신과 똑같은 핸드백을 일본에서 사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의심은 곧 확신으로 변한다. 그들은 조심스러운 만남을 통해, 각자의 배우자가 서로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잔인한 진실을 확인한다. 이 배신감은 역설적으로 두 사람을 묶어주는 끈이 된다. "그들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서로의 상처를 위로하며, 그들은 자신들의 배우자가 어떻게 사랑에 빠졌을지를 상상하고 '연습'하는 비밀스러운 만남을 시작한다. 3부: 우리들은 그들과 다르다 두 사람의 비밀스러운 만남은 점점 깊어진다. 함께 저녁을 먹고, 차우는 무협소설을 쓰는 소려진의 작업을 도와주며 호텔 방에서 함께 밤을 새우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선을 넘지 않는다. "우리들은 그들과 다르다"는 이 한마디는, 그들의 관계를 규정하는 도덕률이자 넘을 수 없는 벽이 된다. 사랑의 감정은 싹트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한 발짝도 다가서지 못한다. 대신 그들은 이별을 연습하고, 떠나보내는 것을 연습한다. 이웃들의 눈을 피해 좁은 뒷골목을 걷고, 택시 뒷자리에 나란히 앉아 서로의 어깨에 기대는 것이 그들이 나눌 수 있는 가장 큰 위로이자 애정 표현이다. 그들의 사랑은 행동이 아닌 망설임으로, 고백이 아닌 침묵으로 깊어진다. 4-1부: 엇갈린 시간, 영원한 비밀 결국 차우는 이 위태로운 관계를 끝내기 위해 싱가포르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는 떠나기 전, 소려진에게 "만약 배표가 한 장 더 있다면, 나와 같이 가겠소?"라고 묻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못한다. 뒤늦게 용기를 내어 그가 머무는 호텔 방을 찾아갔을 때, 그는 이미 떠나고 난 뒤였다. 시간은 흐른다. 싱가포르에 있는 차우의 집에 소려진이 찾아오지만, 그는 부재중이다. 그녀는 그의 방에서 담배 한 대를 피우고, 립스틱이 묻은 꽁초만 남긴 채 조용히 떠난다. 다시 세월이 흘러 홍콩의 옛집을 찾은 차우는, 이제 그 집에 아들과 함께 사는 소려진과 바로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스쳐 지나간다. 4-2부: 앙코르와트의 속삭임 1966년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기자가 된 차우는 취재차 이곳을 찾는다. 그는 폐허가 된 사원의 한 기둥에 난 작은 구멍을 찾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자신의 비밀스러운 사랑을 조용히 속삭인다. 그리고 흙으로 그 구멍을 막아버린다. 그의 사랑은 그렇게 영원히 그곳에 묻혔다. 영화는 다음과 같은 자막으로 끝을 맺는다. "그 시절은 지나갔고, 이제 거기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스타일이 곧 내용이 되는 영화 미장센: 갇힌 욕망의 시각화 '화양연화'는 왕자웨이 감독의 미학이 정점에 달한 작품이다. 인물들은 늘 좁은 복도, 계단, 창살, 문틈 사이에 갇힌 모습으로 프레임 안에 담긴다. 이는 그들의 억압된 욕망과 사회적 통념이라는 보이지 않는 감옥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특히, 매 장면마다 바뀌는 장만옥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치파오는, 그녀의 말 못 할 감정의 변화를 대변하는 또 다른 언어다. 촬영과 음악: 꿈결 같은 멜랑콜리 영화는 시종일관 슬로우 모션과 흔들리는 카메라 워크를 통해, 인물들의 불안한 심리와 과거를 회상하는 듯한 아련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특히, 우메바야시 시게루의 '유메지의 테마'는 이 영화의 상징과도 같다. 애절한 첼로와 바이올린 선율은 두 사람이 마주치는 순간마다 반복해서 흘러나오며, 그들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의 테마를 관객의 가슴에 아프게 각인시킨다. 침묵과 여백의 미학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없이, '화양연화'는 가장 깊은 사랑의 감정을 전달한다. 두 주인공의 감정은 대사가 아닌, 스쳐 가는 눈빛, 망설이는 손짓, 함께 나누는 침묵 속에서 더욱 애틋하게 쌓여간다. "그들과는 다르다"는 다짐 아래 육체적 관계를 거부하는 그들의 선택은, 단순한 도덕적 결벽이 아니라 자신들의 사랑을 더럽히지 않으려는 마지막 자존심이자 가장 고결한 사랑의 방식이다. 홍콩의 노스탤지어, 그 정체성 '화양연화'는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직후인 2000년에 개봉했다. 영화의 배경인 1960년대는, 수많은 중국 본토인들이 공산 혁명을 피해 홍콩으로 이주하여, 중국 전통과 서구 문화가 기묘하게 뒤섞인 홍콩만의 독특한 정체성을 만들어가던 시기였다. 영화는 바로 그 '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 대한 짙은 노스탤지어를 담고 있다. 이는 정치적 격변기를 겪으며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과거에 대한 그리움을 동시에 안고 있던 당시 홍콩 사회의 정서를 반영한다. 한국 관객에게 '화양연화'의 절제된 감정 표현은 '한(恨)'의 정서와도 맞닿아 있지만, 그 표현 방식은 사뭇 다르다. 격정적으로 터뜨리기보다는 안으로 삭이며, 그리움을 '스타일'로 승화시키는 왕자웨이의 미학은 한국의 관객에게도 독특하고 깊은 영화적 체험을 선사한다. 만질 수 없는 과거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헌사 '화양연화'는 머리로 이해하는 영화가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고 온몸으로 스며드는 영화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며칠 동안 진한 여운과 함께 '유메지의 테마'가 귓가에 맴돌게 될 것이다. 왕자웨이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이룰 수 없었기에 더욱 완벽하고 아름답게 기억되는 사랑이 있음을, 그리고 인생에서 가장 찬란한 순간은 때로 가장 아픈 순간과 맞닿아 있음을 증명한다. 자극적인 사건 대신, 인물들의 미세한 감정선과 분위기에 흠뻑 취하고 싶은 분. '사랑'이라는 감정이 행동이 아닌 망설임 속에서 얼마나 깊어질 수 있는지 목격하고 싶은 분. 그리고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미장센과 스타일의 정점을 경험하고 싶은 모든 분께 이 영화를 추천한다.
-
- 엔터테인
- 영화
-
'화양연화(花樣年華)',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의 스쳐 가는 엇갈림
-
-
'홍등(紅燈)', 붉은 등불 아래 갇힌 여인들의 비극적 아리아
- 장이머우 감독의 '인생'이 광활한 대륙을 배경으로 수십 년의 역사를 관통하는 서사시라면, 1991년 작 '홍등'은 거대한 저택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무대로, 단 일 년의 시간 동안 벌어지는 밀도 높은 심리 비극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인물들을 거대한 진씨 가문의 저택 안에 가두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여성들의 암투를 현미경처럼 들여다본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주인공은 어쩌면 등장인물이 아니라, 매일 밤 켜지고 꺼지는 '붉은 등(紅燈)'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흔히 경사와 환희의 상징으로 쓰이는 홍등은 이 영화에서만큼은 가장 잔인하고 폭력적인 권력의 상징이자, 여성들의 욕망과 질투, 그리고 마침내 파멸에 이르는 과정을 비추는 지옥의 불빛으로 기능한다. 네 번째 부인, 새로운 비극의 시작 1부: 닫힌 문으로 들어간 대학생 1920년대 중국. 대학까지 다닌 신여성 송련(공리 분)은 아버지가 죽고 집안이 몰락하자, 계모의 강권에 의해 부유한 진 대감의 네 번째 첩으로 들어가기로 결심한다. "첩이 되는 것은 운명이라면, 부잣집 첩이 되는 것은 나의 선택"이라며 스스로 가마에 오르는 그녀의 모습에는 지식인으로서의 자존심과 현실에 대한 체념이 뒤섞여 있다. 그녀가 도착한 진씨 가문의 저택은 끝이 보이지 않는 회색 벽으로 둘러싸인, 감옥처럼 거대하고 폐쇄적인 공간이다. 그녀는 도착과 동시에 이 가문이 수십 년간 이어온 엄격하고 기이한 규칙에 복종해야 함을 배운다. 그중 가장 중요한 규칙은 바로 '홍등'이다. 매일 저녁, 진 대감은 네 명의 부인 중 그날 밤을 함께 보낼 한 명을 선택하고, 선택된 부인의 처소 앞에는 거대한 붉은 등불이 내걸린다. 등불이 켜진 부인은 하인들의 극진한 시중과 발 마사지 서비스를 받으며, 다음 날 아침 식사 메뉴까지 정할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누린다. 홍등은 곧 한 여인의 운명 그 자체였다. 2부: 웃음 뒤에 숨겨진 칼날 여인들의 전쟁 송련은 곧 보이지 않는 전쟁터의 한복판에 던져진다. 그녀의 경쟁자는 이미 이 집의 규칙에 완벽하게 적응한 세 명의 부인들이다. 첫째 부인 유루는 이미 늙어 총애를 잃었지만, 아들을 낳은 덕에 집안의 큰어른으로 군림한다. 그녀는 이 비정한 시스템의 수호자다. 둘째 부인 탁운은 겉으로는 부처님처럼 인자한 미소를 띠고 있지만, 뒤로는 온갖 계략을 꾸미는 전갈 같은 여인이다. 셋째 부인 미산은 전직 경극 배우 출신으로, 아름답고 교만하며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그녀는 송련과 가장 날카롭게 대립하는 인물이다. 대학 교육을 받은 젊고 아름다운 송련은 처음에는 진 대감의 총애를 독차지한다. 매일 밤 그녀의 처소에 홍등이 걸리자, 다른 부인들의 시기와 질투는 극에 달한다. 둘째 부인은 거짓 친절로 송련의 머리카락을 잘라주겠다며 귀에 상처를 내고, 셋째 부인은 경극을 부르며 그녀의 신경을 긁는다. 송련의 시녀인 연아마저 몰래 자신의 방에 홍등을 걸어놓고 부인이 되기를 꿈꾸며 그녀를 저주한다. 3부: 거짓 임신 파국으로 치닫는 욕망 송련은 이 지옥 같은 암투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위험한 거짓말을 계획한다. 바로 '거짓 임신'이다. 임신한 부인의 처소에는 밤낮으로 홍등이 꺼지지 않는다는 규칙을 이용한 것이다. 그녀의 계략은 성공하고, 송련은 최고의 권력을 맛본다. 하지만 거짓말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녀의 거짓을 눈치챈 시녀 연아의 밀고로 모든 것이 들통나고 만다. 분노한 진 대감은 그녀의 처소에 걸렸던 홍등을 검은 천으로 덮어버리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는 이 집안에서 여인에게 내릴 수 있는 가장 큰 치욕이자, 영원한 냉궁(冷宮)으로의 추방 선고였다. 시녀 연아 또한 하극상의 죄를 물어 눈밭에 꿇어앉는 벌을 받다가 결국 병을 얻어 죽는다. 4부: 광기 그리고 새로운 희생자 모든 것을 잃고 유폐된 송련은 점차 이성을 잃어간다. 어느 날 술에 취한 그녀는, 자신이 셋째 부인 미산과 집안의 주치의인 고 대감이 밀회를 나누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무심코 내뱉는다. 이 말은 둘째 부인의 귀에 들어가고, 곧바로 진 대감에게 보고된다. 가문의 명예를 더럽힌 부인을 처리하는 집안의 비밀스러운 규칙에 따라, 미산은 하인들에게 끌려가 지붕 위 외딴방, '죽음의 방'이라 불리는 곳에서 교살당한다. 멀리서 그 끔찍한 광경을 목격한 송련은 결국 완전히 미쳐버린다. 시간이 흘러 다시 여름이 찾아오고, 진씨 가문에는 앳된 얼굴의 '다섯째 부인'이 새로운 가마를 타고 들어온다. 하인의 안내를 받던 그녀는, 텅 빈 넷째 부인의 처소에서 미친 여자가 홀로 돌아다니는 것을 본다. 대학생 시절 입었던 낡은 교복 차림으로, "홍등을 밝혀라"라고 중얼거리는 여자. 바로 송련이었다. 잔혹한 역사는 새로운 희생자를 맞이하며 다시 시작될 참이었다. 완벽한 형식미, 잔혹한 알레고리 숨 막히는 미장센과 색채의 미학 '홍등'은 장이머우 감독이 왜 '색채의 마술사'라 불리는지를 증명하는 영화다. 대칭과 반복으로 이루어진 저택의 구조는 인물들을 옭아매는 거대한 감옥이자 거미줄처럼 보인다. 회색빛 담벼락과 지붕의 삭막한 무채색은, 그 안에서 타오르는 여인들의 욕망을 상징하는 '홍등'의 핏빛 같은 붉은색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시각적 긴장감을 극대화한다. 카메라는 종종 멀리서 인물들을 관조하며, 그들이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발버둥 치는 미약한 존재임을 강조한다. 권력에 대한 냉정한 알레고리 영화의 배경은 1920년대 군벌 시대지만, '홍등'은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인 '권력 시스템'에 대한 잔혹한 알레고리다. 얼굴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 '진 대감'은 절대적이고 비인격적인 권력 그 자체(국가, 당, 혹은 특정 이데올로기)를 상징한다. 네 명의 부인들은 그 권력의 인정을 받기 위해 경쟁하는 피지배자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억압하는 진 대감에게 저항하는 대신, 서로를 헐뜯고 음해하며 더 큰 비극을 자초한다. 이는 억압적인 체제 하에서 피지배자들이 어떻게 서로를 감시하고 통제하며 스스로 체제의 노예가 되어가는지를 보여주는 소름 끼치는 통찰이다. 억압의 도구로서의 '의식(Ritual)' 매일 저녁 반복되는 홍등 점등식, 발 마사지, 식사 메뉴 결정권 등은 단순한 가풍이 아니다. 이것은 권력자가 피지배자를 통제하고 서열을 매기는 정교한 '의식'이다. 이 의식을 통해 여성들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오직 '주인의 선택'에만 두게 되고, 그 선택을 받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게 된다. 체제 비판의 우화, 그 너머 '홍등'이 발표된 1991년은 1989년 천안문 사태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시점이었다. 때문에 많은 서구 비평가들은 이 영화를 중국의 억압적인 정치 체제에 대한 직접적인 은유로 해석했다. 실제로 보이지 않는 절대 권력과, 그 안에서 서로를 감시하며 파멸해가는 개인들의 모습은 문화대혁명을 비롯한 중국 현대사의 비극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한국의 관객에게 이 영화의 가부장제 비판은 조선시대 여성들의 삶과 겹쳐 보이며 깊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하지만 '홍등'의 위대함은 그것을 넘어선다. 영화는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가?'라는 이분법적인 질문을 하지 않는다. 송련 역시 순수한 피해자가 아니며, 살아남기 위해 거짓말과 기만을 서슴지 않는다. 결국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비인간적인 시스템이 어떻게 모든 구성원을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로 만들어 버리는가의 비극적 메커니즘이다. 가장 아름다운 화면에 담긴 가장 잔혹한 이야기 '홍등'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 때문에 더욱 서늘하고 잔혹하게 다가오는 영화다. 화려한 색채와 완벽한 구도 속에 갇힌 인물들의 절망적인 몸부림은 한 편의 잘 짜인 비극 오페라를 보는 듯하다. 장이머우 감독은 이 정교한 비극을 통해, 인간의 욕망이 억압적인 체제와 만났을 때 어떻게 스스로를 파멸시키는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준다. 화려한 색채와 완벽한 구도 속에 담긴 숨 막히는 비극을 체험하고 싶은 분, 봉건적 체제가 한 개인의 영혼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보고 싶은 분, 그리고 한 편의 영화가 얼마나 깊이 있는 정치적, 사회적 은유가 될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모든 분께 이 영화를 추천한다.
-
- 엔터테인
- 영화
-
'홍등(紅燈)', 붉은 등불 아래 갇힌 여인들의 비극적 아리아
-
-
'패왕별희', 경극 무대 위에서 스러져간 시대와 사랑의 대서사시
- 천카이거 감독의 1993년 작 '패왕별희'는 중국 영화 역사상 최초이자 현재까지 유일하게 칸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단순한 시대극이나 퀴어 멜로드라마가 아니다. 1920년대 군벌 시대부터 중일전쟁, 공산 혁명과 문화대혁명에 이르기까지, 20세기 중국의 모든 비극을 두 경극 배우의 삶을 통해 압축적으로 증언하는 한 편의 거대한 역사서다. 경극 '패왕별희' 속 초패왕과 그의 연인 우희의 관계처럼, 무대와 현실의 경계가 무너진 삶을 살아야 했던 두 남자의 이야기는, 예술과 사랑, 그리고 이데올로기라는 거대한 폭력 앞에 인간의 존엄성이 어떻게 스러져가는지를 처절하고 아름답게 그려낸다. 무대에서 시작되어 무대에서 끝난 삶 1부: 운명의 시작, 두 소년의 만남 (1920년대) 1924년 베이징, 홍등가의 창녀인 어머니는 아들 두지를 경극 학교에 맡기려 한다. 하지만 손가락이 여섯 개인 기형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하자,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아들의 손가락 하나를 잘라내고 아들을 버려둔 채 떠난다. 그렇게 끔찍한 배신과 함께 두지의 경극 인생이 시작된다. 혹독하고 비인간적인 훈련 속에서 연약한 두지는 늘 고통받지만, 그때마다 형처럼 듬직한 시투가 그를 감싸준다. 두지는 여자 역할인 '우희'를 맡게 되지만, "나는 본래 계집아이로, 사내아이와는 달라"라는 대사를 끝끝내 외우지 못하고 "나는 본래 사내아이"라고 외치며 저항한다. 그의 정체성을 뒤바꾼 것은 또 한 번의 폭력이었다. 시투가 담뱃대로 그의 입 안이 피투성이가 되도록 쑤셔 넣자, 비로소 두지는 피를 삼키며 "나는 본래 계집아이"라고 읊조린다. 이 순간, 소년 두지는 죽고 무대 위의 우희, 청데이가 탄생한다. 2부: 사랑과 질투, 세 사람의 엇갈린 운명 (1930~40년대) 세월이 흘러 시투는 초패왕 역의 단샬로로, 두지는 우희 역의 청데이로 최고의 경극 스타가 된다. 데이는 무대 위의 역할처럼 샬로를 향한 사랑을 현실에서도 이어가지만, 샬로는 무대와 현실을 구분하는 호탕한 사내다. 그는 베이징 최고의 홍등가 화만루의 일등 기녀인 주샨과 사랑에 빠져 결혼을 선언한다. 데이는 주샨이 자신과 샬로 사이의 완벽한 세계를 파괴한 침입자라 여기며 극도의 증오와 질투심을 드러낸다. 그렇게 데이와 샬로, 그리고 주샨 세 사람의 위태로운 애증 관계가 시작된다. 중일전쟁 시기, 샬로가 일본군에게 끌려가자 데이는 그를 구하기 위해 일본군 장교 앞에서 경극 공연을 한다. 이 일은 훗날 그의 발목을 잡는 '부역'의 꼬리표가 된다. 이 시기 데이는 아편에 중독되고, 주샨은 샬로를 헌신적으로 보살피며 가정을 지키려 애쓴다. 3부: 혁명의 광기, 파멸의 무대 (1950~70년대) 공산당이 집권하자 세상은 또 한 번 뒤바뀐다. 경극은 '봉건적 예술'이라 비판받고, 데이와 샬로는 변화된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애쓴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것을 파멸로 이끄는 '문화대혁명'의 광풍이 몰아친다. 붉은 완장을 찬 홍위병들은 데이와 샬로를 '반동분자'로 지목하고, 인민재판의 무대 위로 끌어올린다. 군중의 광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자기부정과 상호 비방이 시작된다. 평생의 버팀목이었던 샬로는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데이가 일본군에게 공연한 사실과 동성애 관계를 폭로하며 "그를 사랑한 적 없다"고 외친다. 믿었던 왕에게 버림받은 데이는 이성을 잃고 샬로의 아내 주샨이 창녀였음을 폭로한다. 궁지에 몰린 샬로는 "저 여자를 사랑한 적 없다, 저 창녀와 절연하겠다"고 맹세한다. 남편의 마지막 배신에 모든 희망을 잃은 주샨은, 과거 결혼식 때 입었던 붉은 혼례복을 입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수십 년간 이어진 세 사람의 질긴 인연은 그렇게 가장 끔찍한 방식으로 끝을 맺는다. 마지막 패왕별희 11년의 세월이 흐른 1977년,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텅 빈 실내체육관에서 늙고 지친 데이와 샬로가 재회한다. 그들은 마지막으로 '패왕별희'를 연습한다. 초패왕이 우희에게 검을 건네며 탈출을 권유하는 마지막 장면. "나는 본래 사내아이로..." 데이가 소년 시절의 그 대사를 무심코 내뱉자 샬로가 "계집아이지"라고 정정해준다. 그 순간 데이는 초패왕의 검을 뽑아, 무대 위의 우희처럼 자신의 목을 긋는다. 현실의 청데이는 죽고, 그는 영원히 무대 위의 우희로 남는 것을 택한다. 예술과 인생, 그 비극적 합일 무대와 현실의 경계 이 영화의 가장 핵심적인 주제는 예술과 현실의 비극적 관계다. 청데이는 무대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혹은 구분하길 거부하는 인물이다. 그에게 경극 '패왕별희'는 연기가 아닌 자신의 삶 그 자체다. 반면 단샬로는 무대에서는 천하를 호령하는 패왕이지만, 무대 아래에서는 시대의 흐름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현실적인 인간이다. 영화는 예술이 때로는 잔혹한 현실로부터의 도피처가 되지만, 동시에 현실을 살아갈 능력을 파괴하는 감옥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정체성과 배신의 연쇄 두지의 정체성은 어머니의 칼끝에서, 그리고 시투의 담뱃대 끝에서 폭력적으로 만들어진다. 그렇게 주입된 정체성을 데이는 평생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영화는 배신의 연쇄로 점철되어 있다. 어머니는 아들을 버리고, 샬로는 데이의 사랑을 배신하며, 결국 문화대혁명이라는 거대한 광기 속에서는 모두가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배신한다. 역사의 폭력은 가장 내밀한 인간관계마저 갈가리 찢어놓는다. 불멸의 연기와 미장센 '패왕별희'는 천카이거 감독의 압도적인 연출력과 배우들의 신들린 연기가 결합된 cinematic한 성취다. 화려하고 관능적인 경극 무대와, 중일전쟁의 폐허, 그리고 문화대혁명의 획일적이고 푸른 인민복이 이루는 시각적 대비는 그 자체로 시대의 변화를 웅변한다. 무엇보다, 청데이 역을 맡은 고(故) 장국영의 연기는 영화사상 가장 위대한 연기 중 하나로 꼽힌다. 그는 남성과 여성, 예술과 현실, 사랑과 집착의 경계에 선 인물의 위태롭고 아름다운 영혼을 온몸으로 체화했다. '5세대 감독'의 시대적 증언 장이머우, 천카이거 등은 문화대혁명 이후 전문적인 영화 교육을 받은 '5세대 감독'으로 불린다. 이들은 자신들이 직접 겪은 중국 현대사의 상처와 트라우마를 영화의 중심 소재로 가져왔다. '패왕별희'는 그중에서도 문화대혁명의 비인간성을 가장 정면으로, 그리고 가장 예술적으로 고발한 작품이다. 한국의 관객들에게 이 영화가 더욱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예술가 수난사'라는 공감대 때문이다. 일제강점기나 군부독재 시절, 수많은 한국의 예술가들 역시 시대의 검열과 이데올로기의 잣대 앞에서 창작의 자유를 억압받고 고통을 겪어야 했다. 정치적 격변기 속에서 예술과 예술가의 운명이 어떻게 시대에 의해 규정되고 파괴되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패왕별희'는 국경을 넘어선 보편적인 울림을 준다. 한 편의 영화, 한 시대의 역사 '패왕별희'는 단지 한 편의 잘 만든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중국의 20세기를 담아낸 거대한 박물관이자, 역사의 폭력 앞에 스러져간 수많은 개인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진혼곡이다. 3시간에 가까운 긴 상영 시간 동안, 관객은 한 시대의 영광과 오욕, 그리고 한 인간의 지고지순했던 사랑이 어떻게 부서져 내리는지를 온몸으로 목격하게 된다. 한 나라의 굴곡진 현대사를 온몸으로 체험하고, 예술과 인생이 하나가 된 한 배우의 처절한 몸부림을 보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랑과 신념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알게 된다.
-
- 엔터테인
- 영화
-
'패왕별희', 경극 무대 위에서 스러져간 시대와 사랑의 대서사시
-
-
'붉은 수수밭', 광활한 대지 위에서 피고 진 생명의 원초적 찬가
- 2012년, 중국 국적 작가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모옌의 이름 앞에는 언제나 '붉은 수수밭'이라는 다섯 글자가 따라붙는다. 이 작품은 그의 문학적 고향이자, 중국 민중의 원초적 생명력이 살아 숨 쉬는 땅 '가오미향'을 배경으로, 한 가족의 3대에 걸친 장대한 서사를 신화적인 상상력으로 빚어낸 그의 대표작이다. '붉은 수수밭'은 점잖은 역사소설이 아니다. 그것은 질서와 논리를 거부하는 거칠고 관능적인 언어의 향연이며, 사랑과 증오, 삶과 죽음, 폭력과 저항이 광활한 수수밭을 무대로 펼쳐지는 한 편의 원초적인 서사시다. 이 소설을 읽는 것은, 잘 닦인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피와 땀과 고량주 냄새가 진동하는 대지 위를 맨몸으로 구르는 것과 같은 강렬한 문학적 체험이다. 신화가 된 가족의 역사 이 소설은 손자인 '나'가 할머니와 할아버지 세대의 이야기를 기억과 전설의 파편들을 그러모아 재구성하는 독특한 비선형적 구조를 띤다. 역사는 명확한 연대기가 아닌, 신화처럼 뒤섞여 독자에게 전달된다. 1부: 나의 할머니, 다이펑롄 수수밭의 여신 이야기의 절대적인 중심은 '나'의 할머니 다이펑롄이다. 빼어난 미모와 누구에게도 굴하지 않는 당찬 성정의 소유자인 그녀는, 아버지의 결정에 따라 나병 환자인 양조장 아들 산볜랑에게 팔려가듯 시집을 간다. 붉은 수수가 끝없이 펼쳐진 길을 따라 그녀가 탄 꽃가마가 흔들릴 때, 비극과 운명이 동시에 시작된다. 한 무리의 강도가 가마를 습격하고, 이때 가마꾼 중 한 명이었던 젊고 건장한 사내 위잔아오가 강도를 때려눕히며 그녀를 구해낸다. 짧은 순간, 두 사람 사이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강렬한 교감이 흐른다. 결혼 후 3일째 되던 날, 친정으로 향하던 다이펑롄은 수수밭 한가운데서 위잔아오와 다시 마주친다. 그는 그녀를 수수밭 깊숙한 곳으로 끌고 가고, 그곳에서 폭력적이면서도 운명적인 사랑을 나눈다. '나'의 아버지 더우관이 잉태되는 순간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 산볜랑이 의문사를 당하고, 젊은 과부가 된 다이펑롄은 양조장의 새로운 주인이 된다. 그녀는 탁월한 수완으로 양조장을 이끌며 모두의 존경을 받는 여장부로 거듭난다. 2부: 나의 할아버지, 위잔아오 대지의 아들 '나'의 할아버지 위잔아오는 문명과 질서를 거부하는, 원초적 에너지 그 자체인 인물이다. 그는 다이펑롄의 연인이자 아들의 아버지이지만, 한곳에 얽매이지 못하고 결국 전설적인 마적 두목이 된다. 그는 살인과 약탈을 일삼는 무법자이지만, 동시에 불의에 저항하는 민중의 영웅이기도 하다. 할머니 다이펑롄이 '정착하는 대지'의 여신이라면, 할아버지 위잔아오는 '떠도는 바람'과 같은 존재로서 아슬아슬한 관계를 이어간다. 3부: 피로 물든 붉은 수수밭 (항일전쟁) 소설의 후반부는 일본군의 침략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폭력 앞에 모든 것이 파괴되는 과정을 처절하게 그린다. 일본군은 양조장의 큰어른이었던 뤄한 아저씨를 산 채로 가죽을 벗겨 죽이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만행을 저지른다. 이 끔찍한 사건을 계기로, 마적 두목이었던 위잔아오는 항일 게릴라 부대의 사령관으로 변모한다. 그는 아들 더우관을 포함한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일본군 수송부대를 상대로 수수밭에서 매복 작전을 펼친다. 생명의 공간이었던 수수밭은 이제 처절한 격전지가 된다. 게릴라 부대원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어 이고 가던 할머니 다이펑롄은 일본군의 기관총 세례에 맞아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그녀의 선혈이 수수밭을 적시면서, 생명과 정열을 상징했던 수수의 붉은빛은 이제 저항과 희생의 피 색깔로 변모한다. 신화의 퇴색 세월이 흘러, '나'의 시대에 이르러 수수밭은 더 이상 과거의 야생성을 간직하지 못한다. 품종 개량된 수수는 키가 작고, 그 안에서 더 이상 신화적인 사랑이나 영웅적인 저항이 일어나지 않는다. 소설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세대가 보여주었던 그 원초적인 생명력이 사라져버린 현대를 쓸쓸하게 관조하며 끝을 맺는다. 신화와 역사, 감각의 서사 모옌 특유의 '환상적 리얼리즘' 모옌의 문체는 흔히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마술적 리얼리즘'에 비견되지만, 그 뿌리는 중국의 민간 설화와 구전 전통에 더 깊이 닿아 있다. 그의 묘사는 지극히 감각적이다. 코를 찌르는 고량주의 냄새, 끈적한 피의 감촉, 살갗을 스치는 수수잎의 소리, 타는 듯한 태양의 열기 등, 독자는 이성과 논리가 아닌 오감으로 이 이야기를 체험하게 된다. 역사는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기억과 상상 속에서 재창조되는 '신화'로 그려진다. 붉은 수수의 다층적 상징 이 소설에서 '붉은 수수'는 단순한 배경을 넘어선 주인공이다. 수수는 ‘①삶과 풍요(고량주의 원료), ②정열과 자유(인습을 벗어난 사랑의 공간), ③저항과 희생(항일 투쟁의 격전지이자 피로 물든 대지), ④그리고 역사 그 자체(모든 것을 지켜보는 증인)’를 상징한다. 수수밭의 흥망성쇠는 곧 가오미향 사람들의 운명과 직결된다. 국가가 아닌, 민중이 써 내려간 저항의 역사 '붉은 수수밭'이 중국 문학사에서 중요한 이유는, 항일전쟁이라는 거대 서사를 공산당이나 국민당 같은 공식적인 주체가 아닌, 마적과 양조장 여주인 같은 민중의 시각에서 그렸다는 점이다. 국가 이데올로기가 거세된 자리에서, 역사를 이끌어가는 힘은 이름 없는 민초들의 끈질기고 야생적인 생명력 자체임을 모옌은 웅변한다. 이는 국가가 독점해 온 역사 해석에 대한 문학의 강력한 대답이다. '한(恨)'의 서사와 '생명력'의 서사 1980년대, 중국 문단에는 문화대혁명의 상처를 딛고 민족의 뿌리를 찾으려는 '심근(寻根) 문학'의 경향이 나타났다. '붉은 수수밭'은 그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는 일제강점기의 상처를 '한(恨)'의 정서로 풀어내고 민족의 비극을 노래했던 동시대 한국 문학의 흐름과 흥미로운 비교점을 제공한다. 한국의 서사가 고난을 '견디고 이겨내는' 수동적 저항의 측면이 강하다면, '붉은 수수밭'은 고난에 맞서 '폭발하고 분출하는' 능동적이고 파괴적인 에너지를 찬미한다. 두 나라가 식민주의와 전쟁이라는 비슷한 역사의 상처를 각기 다른 문학적 방식으로 승화시킨 과정을 비교해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문학이 선사하는 가장 강렬한 체험 '붉은 수수밭'은 아름답거나 편안한 소설이 아니다. 폭력과 죽음, 원초적 욕망이 난무하는 혼돈의 세계다. 하지만 그 혼돈의 중심에는 그 어떤 시련에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생명에 대한 뜨거운 긍정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작품을 읽고 나면,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연약하면서도 동시에 위대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경외감을 느끼게 된다. 정제된 역사 기록이 아닌, 땅과 피 냄새가 진동하는 '날것'의 서사를 통해 중국 민중의 원초적 생명력을 느끼고 싶은 독자, 문학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강렬한 감각의 세계를 경험하고 싶은 분께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한다.
-
- 엔터테인
- 책
-
'붉은 수수밭', 광활한 대지 위에서 피고 진 생명의 원초적 찬가
-
-
'허삼관매혈기', 피를 팔아 시대를 건넌 한 남자의 눈물겨운 해학
- 중국 현대문학의 거장 위화의 소설을 읽는 것은, 거대한 쇄빙선이 얼어붙은 강을 깨며 나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과 같다. 그의 대표작 '인생'이 역사의 거대한 파도에 휩쓸리는 개인의 삶을 담담하게 그려냈다면, 또 다른 걸작 '허삼관매혈기'는 그 파도를 넘기 위해 제 몸의 피를 팔아야 했던 한 가장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의 심장을 서늘하면서도 뜨겁게 만든다. '매혈(賣血)', 즉 피를 파는 행위. 이 섬뜩하고 비천하게 느껴지는 행위가, 한 남편이자 아버지에게는 가족을 구원하는 가장 신성한 의식이자 유일한 수단이 된다. 작가 특유의 냉정한 시선과 예기치 못한 순간에 터져 나오는 유머, 즉 해학(諧謔)을 통해, '허삼관매혈기'는 지독한 비극을 가장 눈부신 가족애로 승화시킨 우리 시대의 고전이다. 열한 번의 매혈, 한 편의 가족사 1부: 청년 허삼관, 피를 팔아 아내를 얻다 1950년대, 갓 스무 살을 넘긴 청년 허삼관이 제사공장에서 누에고치를 실크로 만드는 일을 하면서 시작된다. 그는 마을 어른들로부터 "몸이 튼튼하다는 증거이자, 피를 팔고 난 뒤 볶은 돼지 간 한 접시와 데운 황주 두 냥을 마시는 것이 진짜 사내의 호사"라는 말을 듣는다. 그는 생애 처음으로 피를 팔고, 그 돈으로 호기롭게 돼지 간과 황주를 즐긴다. 이 '매혈 후 의식'은 그의 인생을 관통하는 중요한 상징이 된다. 어느 날 그는 마을 최고의 미녀이자 '꽈배기 서시'라 불리는 허옥란에게 반한다. 이미 약혼자가 있는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허삼관은 다시 한번 피를 판 돈으로 그녀에게 맛있는 음식들을 사주며 끈질기게 구애하고, 마침내 결혼에 성공한다. 그렇게 그는 사랑하는 아내와 일락, 이락, 삼락 세 아들을 둔 가장이 된다. 2부: 피보다 진한 아버지의 이름 가정의 행복은 "큰아들 일락이 허삼관의 아들이 아니라, 허옥란의 옛 애인이었던 하소용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산산조각 난다. 일락의 얼굴이 하소용과 꼭 닮았기 때문이다. 허삼관은 온 동네 사람들의 놀림감이 되었다는 수치심에 분노하며 일락을 모질게 대한다. "남의 자식을 위해 돈을 쓸 수 없다"며 일락만 빼고 다른 두 아들에게만 국수를 사주는 그의 모습은 옹졸하기 짝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일락이 싸움을 하다 상대방의 머리를 깨뜨리는 사고를 친다. 피해자 가족이 막대한 치료비를 요구하며 집에 쳐들어오자, 허삼관은 갈등에 휩싸인다. "내 아들도 아닌 놈을 위해 내 피를 팔 순 없다"고 소리치지만, 결국 그는 피를 팔아 치료비를 마련한다. 이것은 그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가족을 위해' 행한 매혈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비로소 피가 섞이지 않았을지 모르는 아이의 '진짜 아버지'가 되어간다. 3부: 위기의 순간마다 피를 파는 아버지 이후 허삼관의 삶은 거대한 역사의 파도와 일상적인 위기의 연속이다. 그리고 그는 그때마다 어김없이 병원으로 가 피를 판다. 대기근의 시대에는 온 가족이 굶주림에 죽어갈 위기에 처하자, 그는 몰래 피를 팔아 온 가족에게 평생 잊지 못할 국수 한 그릇씩을 사 먹인다. 문화대혁명의 시대에는 하방(下放) 운동으로 큰아들 일락이 시골 농촌으로 떠나고, 그곳에서 간염에 걸려 사경을 헤맨다. 아들을 도시의 큰 병원으로 데려오기 위해, 허삼관은 여러 도시를 전전하며 단기간에 여러 차례 피를 판다. 피를 너무 많이 판 나머지 길바닥에 쓰러지기까지 하는 그의 여정은 처절하고 눈물겹다. 둘째 아들이 속한 생산대의 대장이 사고를 당했을 때도, 아내 허옥란이 병에 걸렸을 때도, 집에 손님을 대접해야 할 때도 그는 어김없이 피를 팔아 위기를 넘긴다. 그의 몸에서 빠져나온 피는, 가족의 생명수이자 위기를 해결하는 만능 열쇠가 된다. 4부: 마지막 매혈, 그리고 눈물 세월이 흘러 시대는 안정을 찾고, 아들들은 모두 장성했으며, 가정 형편도 나아졌다. 어느 날 우연히 길에서 피 파는 사람들을 본 허삼관은 문득 향수에 젖어 자신도 피를 팔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위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젊은 시절의 의식이었던 '볶은 돼지 간과 데운 황주'를 즐기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병원의 새로운 혈두(피를 관리하는 책임자)는 그의 나이 든 얼굴과 남루한 행색을 보더니 "당신 피는 돼지 피나 다름없소. 아무도 사지 않소"라며 그를 모욕하고 쫓아낸다. 그 순간 허삼관은 무너져 내린다. 평생 가족을 구원했던 자신의 유일한 능력과 자부심의 원천이 이제는 쓸모없어졌다는 사실에 그는 길거리 한복판에 주저앉아 서럽게 운다. "이제 집안에 무슨 일이 생겨도 나는 피를 팔 수가 없어. 나는 이제 쓸모없는 인간이야..." 이 소식을 들은 그의 세 아들과 아내 허옥란은 그를 찾아와, 자신들의 돈으로 그가 평생 먹고 싶어 했던 '볶은 돼지 간과 데운 황주'를 사준다. 이제는 아버지가 피를 팔지 않아도 된다고, 아버지는 그 존재만으로도 소중하다고 위로하면서. 허삼관은 가족의 위로 속에서, 자신의 인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비극을 희극으로, 눈물을 웃음으로 위화 작가 특유의 '해학' '허삼관매혈기'의 가장 위대한 성취는 이토록 비극적인 이야기를 놀랍도록 재미있게 읽게 만드는 작가의 힘에 있다. 등장인물들은 지독한 가난과 억압 속에서도 끊임없이 다투고, 허풍을 떨고, 어리석은 행동을 반복한다. 허삼관이 아내 허옥란과 벌이는 유치한 부부싸움, 피를 팔기 위해 물을 잔뜩 마셔 피의 양을 늘리려는 모습 등은 웃음을 자아낸다. 이러한 유머(해학)는 독자들이 비극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삶에 깊이 공감하고 애정을 느끼게 만드는 탁월한 장치다. '피'의 다층적 상징 소설에서 '피'는 단순한 혈액이 아니다. 그것은 ①돈이자 생계 수단, ②남성성의 증명, ③가족을 구원하는 성수(聖水), ④그리고 아버지의 사랑 그 자체다. 특히 일락의 친자 논쟁을 통해, 작가는 '혈연(血緣)'이라는 생물학적 피보다, 가족을 위해 기꺼이 흘리는 '희생의 피'가 더 고귀하고 진실된 것임을 역설한다. 허삼관은 피를 팔아 진정한 아버지가 된다. 음식을 통한 구원과 위로 피를 판 대가는 언제나 '음식'으로 돌아온다. 볶은 돼지 간, 국수, 옥수수죽 등. 소설 속 음식은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라, 고된 삶을 버티게 하는 '위로'이자 '구원'이다. 대기근 속에서 온 가족이 함께 먹는 국수 한 그릇의 장면은, 이 소설에서 가장 아름답고 눈물겨운 장면 중 하나다. 소시민 가장, 허삼관과 우리들의 아버지 한국의 문학이나 영화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종종 과묵하고, 엄격하며, 국가와 민족이라는 거대 담론 속에서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반면, 허삼관은 지극히 평범하고, 심지어 옹졸하고 이기적인 소시민이다. 그는 국가나 이념을 위해 피를 팔지 않는다. 오직 내 가족의 배고픔과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피를 판다. 바로 이 지점이 허삼관이라는 인물에 전 세계 독자들이 공감하는 이유다. 그는 영웅이 아니며,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속물적인 아버지의 모습과 닮았다.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몸을 내던져 가족을 지켜내는 그의 모습은, 그 어떤 영웅보다도 숭고하다. 이념의 시대가 가고 가족의 가치가 중요해진 오늘날, 허삼관의 '가족 이기주의'는 오히려 가장 보편적인 휴머니즘으로 다가온다. 세상 모든 아버지를 위한 찬가 '허삼관매혈기'는 가장 비극적인 시대의 이야기를 가장 희극적인 방식으로 풀어낸 걸작이다. 책을 읽는 내내 독자는 허삼관의 어리석음에 웃다가, 그의 끈질긴 생명력에 감탄하고, 그의 숭고한 부성애에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
- 엔터테인
- 책
-
'허삼관매혈기', 피를 팔아 시대를 건넌 한 남자의 눈물겨운 해학


